[뒤끝작렬]대통령~도백까지 칭송 일색, 생활 체육 '그 민낯'
#1. 2023년 4월 29일. 비 내리는 토요일 오후 구미 시민운동장. 트랙에 부딪힌 비 소리가 스타디움을 가득 채운다. 초대 않은 손님, 스콜성 소나기가 거세다. 트랙 외곽, 오십을 훌쩍 넘긴 중년의 사내가 힘차게 멀리뛰기 도움닫기를 한다. (그에게) 시야를 가리는 비 따위는 안중에 없다.
#2. 같은 날, 같은 시각, 같은 곳 멀리뛰기 경기장 반대편. 이곳선 100m, 200, 400m 달리기가 한창이다. 30~ 80대 선수까지 젖은 트랙 위를 내달린다. (트랙 보다) 이들의 몸은 더 흥건히 젖어 있다. 스콜성 소나기는 이들의 열정을 방해할 수 없다.
전국생활체육대축전. 생활 체육 동호인에게는 올림픽 이상의 의미다. 1인칭 당사자가 경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인생 체육 경기라 그렇다. 동호인 가족도 (축전이) 특별하기는 매한가지다.
'2023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이 지난달 27~ 30일 경북 구미 일원에서 열렸다. 전국에서 2만 명 선수단이 운집했다. 가족, 관람객을 합치면 6만 명에 이른다는 게 주최 측 설명이다. 현장에서 만난 장재근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장은 "(생활 체육) 규모가 이렇게 큰 줄 몰랐다"고 감탄했다.
장 촌장이 감탄할 수밖에 없다. 참가 규모만 따지면 국제 대회급이다. 그에 걸맞게 개회식은 웅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축사가 대독됐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축하 영상이 방영됐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대회사, 이철우 경북도지사의 환영사도 거창했다. 미사여구가 버무려진 메시지들은 동호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생활 체육 지원, 아끼지 않겠다. 생활 체육 시설, 맞춤형으로 설계하겠다. 생활 체육 강국이 복지 강국이다. 생활 체육 사업 정비하겠다. 생애 주기별 맞춤형 스포츠 활동, 지원하겠다." 대통령부터 도백(道伯, 도지사)까지 내놓은 생활 체육 메시지, 개회식 밤 하늘을 수놓은 폭죽에 빛을 더했다. '핫'하다는 가수 여럿의 공연도 빛났다. 실제 경기가 기대되는 아름다운 밤이었다.
거기까지였다. 텅빈 관중석, 선수뿐인 경기장. 그들만의 리그. 개회식 밤의 기대감은 '역시나' 하는 아쉬움으로 변했다. 유력 인사, 정치인의 메시지로 빛났던 스타디움, 2만 명의 열정으로 채워진 스타디움은 밤 사이 신기루가 됐다. 관중 동원 여부는 중요치 않다. 축전이니 화려했으면 됐다.
하지만 화려했던 시점이 잘못됐다. 주객이 전도됐다. 축전의 주인은 본(本) 경기다. 텅빈 관중석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파이팅 외침은 처량할 정도였다. 반면 선수들의 열정만큼은 '국대급'이었다. 그나마 위안 거리다. 이번 축전에 나선 일본 배드민턴 감독의 "개회식 규모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전언, 정확했다. 개회식 '규모'만 놀라운 대회였다.
처량 모드(mode)는 스타디움뿐만이 아니다. 기자실(중앙)도 텅 비었다. 기자실내 빼곡히 들어선 책걸상이 무색하다. 냉방기만 힘차게 제 일을 한다. 스타디움에 설치된 주최 측인 대한체육회 홍보실. 이곳의 불도 일찌감치 꺼졌다. 개회식이 그대로 '폐회식'이 된 축전, 그들만의 리그는 이렇게 마감됐다.
멈춰선 대한체육회, 대한장애인체육회
생활 체육은 국민들의 삶에 큰 축을 차지한다. '더 나은 삶을 위함'이 목적이다. 국민의 삶과 직결되는 만큼 정권의 관심사인 것은 당연하다. 윤석열 정부도 국정 과제에 생활 체육 진흥 정책을 담았다. '모두를 위한 스포츠, 촘촘한 스포츠 복지 실현'이 과제의 목표다. 코로나19 엔데믹과 맞물려 전국은 각종 생활 체육 대회로 들썩이고 있다.
이런 분위기 덕일까. 윤 대통령도 최근 유소년 야구·축구 대회장을 찾아 생활 체육에 힘을 실어줬다. 언론의 조명도 집중됐다. 거기까지였다. 모든 대회는 구미의 축전과 다르지 않게 진행 중이다. 판박이다. 유력 인사가 참여한 개회식만 빛이 난다. 텅빈 관중석과 무관심, 생활 체육 대회는 그들만의 리그로 자리잡았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기, 체육 이념은 우선시됐다. 군사 정권은 체육을 앞세워 국민을 통치했다. '체력은 국력' 이란 말이 대표적이다. 이 시기 '생활 체육'은 '엘리트 체육'의 그림자에 불과했다. 정치 도구로 사용된 체육은 '엘리트 체육 우월주의'를 낳았다. 올림픽 금메달만이 체육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생활 체육 참여 비중이 60%를 넘어선 시대에 살고 있다. 양적 증가에 걸맞는 정책은 필수다. 그럼에도 생활 체육의 갈 길은 멀다.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 기관의 무관심 행정에 답이 있다.
대한체육회가 운영하는 '체육 포털' 사이트. 생활 체육 정보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대회 정보는 2019년에 멈춰 있다. 학교 스포츠 클럽 대회 정보는 지난해 10월이 마지막이다. 담당 부서는 멈춰선 상황조차 모르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인수 인계가 안됐다"는 게 해명의 전부다. 대한민국 스포츠 사무를 총괄하는 기구의 해명 치고는 궁색하다. "생활 체육 사업 정비하겠다"는 이기흥 회장의 축전 개회식 발언이 무색하다. 최근 대한체육회는 사무총장, 이사 등 고위직을 교체했다. 생활 체육 정책의 물갈이, 지금이 적기인 이유다.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운영하는 생활 체육 정보 센터 사이트. (대한체육회 체육 포털과) 판박이다. 공지는 지난해 8월 글이 최종이다. 뉴스·웰빙 라이프 콘텐츠는 2018년 6월 이후 멈춰섰다. 사진·영상 갤러리는 2021년 1월, 비대면 게시판은 2020년 12월 이후 업데이트가 중단됐다. "업무를 놓쳤다. 앞으로 더 신경 쓰겠다"고 한다. 역시 궁색한 변명이다. 취재 이후 급히 1개의 공지만이 업데이트됐다. 면피용으로 보인다. '문체부, 국민체육진흥공단 후원 사이트'란 홈피의 안내문이 무색하다.
정치권의 무관심도 매한가지다. 생활 체육 현장에 얼굴 도장 찍기가 한창인 국회의원들. 생활 체육 정책은 관심 밖이다. 1년여 남은 21대 국회의 생활 체육 진흥 관련 법률안 발의는 3건이 전부다. 모두 계류 중이다. 생활 체육인들은 유권자다. 이만한 표밭이 있는가. 얼굴 도장만으로는 안 된다. 유명 엘리트 선수와 찍은 사진 1장에 표를 던지던 시대는 끝났다. 보여주기식, 더 이상 안 된다. 그들이 지켜 보고 있다. 총선, 1년이 채 안 남았다.
CBS노컷뉴스 동규 기자 dk7fly@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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