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불쑥 찾아오는 외교부‥강제동원 피해자측 "그 자체로 압박"

신수아 newsua@mbc.co.kr 2023. 5. 16.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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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의 쪽지메모: 좌/이춘식 할아버지, 우/양금덕 할머니
"최근에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되는 마음에 자택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외교부가 남긴 2개의 쪽지 메모들은 똑같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일요일인 14일 오후, 외교부는 광주시 서구 양금덕 할머니 댁을 사전 약속 없이 방문했고, 같은날 비슷한 시각 광주에 있는 이춘식 할아버지 댁도 찾았습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두 분 모두 사전에 외교부 면담 요청을 "거절한다"고 밝힌 상태였습니다.

■ 이춘식 할아버지 측 "최근 병원에 입원도 안 해..그 자체로 압박"

이춘식 할아버지의 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14일 밤 페이스북을 통해 일방적인 외교부의 방문 사실을 알리면서 "외교부는 메모에서 입원 이야기를 하는데 최근에 입원한 사실 자체가 없고, 방문 그 자체가 압박"이라고 말했습니다. 임 변호사는 "103세의 노인에게는 당연히 가족 등 신뢰관계인의 동석이 필요한데, 가족이 분명히 면담이 어렵다고 회신했음에도 부득불 거절한 날짜에 통지없이 불쑥 와서 문을 두드리나"고 비판했습니다.

임 변호사에 따르면 외교부는 지난 12일 정오쯤 "14일에 이춘식 할아버지를 만나고 싶다"고 피해자 대리인단에 요청했고, 이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거절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고 합니다. 외교부도 이를 "잘 알겠다"며 거절 의사를 확인한 것으로 보이는데도 원래 계획대로 이춘식 할아버지 자택을 찾은 겁니다.

■ 양금덕 할머니 측 "사정 무시한 채 피해자 집 찾는건 행패"

양금덕 할머니의 대리인인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도 15일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외교부의 결례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면서 "사전 통지 없는 일방적이고 기습적인 방문은 정부의 행패"라고 반발했습니다.

양금덕 할머니에게도 외교부는 지난 12일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대리인이 가족들에게 면담 의사를 확인했더니 "정작 소통이 필요할 때는 대화를 단절하더니, 정부가 이미 밥상을 더 엎어 놓은 상태에서 도장 받아가는 일 말고 나눌 얘기가 있겠느냐"면서 거절했다는 게 이국언 이사장의 설명입니다. 피해자 측은 정부의 제3자 배상안에 거부 의사를 밝힌 바 있고 "여기서 변한 입장은 없다"고 입장을 재확인한 걸 외교부도 분명히 확인한 겁니다.

그러나 두 피해자 측으로부터 모두 거절 의사를 확인하고도, 외교부는 처음 밝힌 계획대로 14일 광주를 찾았습니다. 외교부는 양금덕 할머니가 입원해있는 병원 1층 접수실에, 이춘식 할아버지 자택 앞에 동일한 쪽지 메모와 홍삼 선물세트를 남기고 떠났습니다.

■ 외교부는 "정부의 진정성 알리기 위해서"라는데..방일 전 명분쌓기?

외교부 관계자는 두 피해자 측 반발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정부의 해법 발표 이후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뵙고 진정성을 구하는 노력을 계속 하고 있다"고만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왜 피해자 측에게는 정부의 이런 진정성이 전해지지 않고 "행패로 느껴진다, 피해자 괴롭히기, 상식 밖의 무례함"이라는 강한 비판만 나오고 있을까요? 지난 12일, 외교부가 보낸 문자에 답이 있습니다.

외교부 아태1국 문자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 국장과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이 할머님 직접 뵙고, 이번주 한일 정상회담 내용과 다음주 있을 G7 히로시마 정상회의에 대해 상세히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외교부 담당 과에서 투명하게 밝혔듯, 이번 면담 시도가 이뤄져야 하는 시간이 타임라인 상 너무나 뚜렷이 정해져있었기 때문은 아닐까요. 또 최근 입원한 적 없는 이춘식 할아버지 댁에 "최근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에 걱정되어 찾아왔다"는 틀린 사실관계를 적는 '복붙' 쪽지로 피해자 측의 마음을 사지 못한 건 아닐지요.

임재성 변호사는 페이스북 글을 마무리하며 "정부로서는 제3자 변제안에 반대한 분들을 설득해야 한다. 이걸 목표로 삼을 수는 있다"면서 "위에서 빨리 못하냐고 쪼임을 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고 적었습니다. "일본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사안일 것"이라고도 짚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 하지 않나, 말로만 존중존중. 지긋지긋하다"고 밝혔습니다.

방일 전 명분쌓기가 아니라면 "진정성 있는 태도로 다가가겠다"는 정부가 생각해봐야 할 목소리입니다.

신수아 기자(newsua@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3/politics/article/6484067_3611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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