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도 버터, 치즈 만들어 드셨다는거 아시나요?”

박경은 기자 2023. 5. 16. 10: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미쉐린 2스타 스와니예 이준 셰프와 나눈 한식 이야기
이준 셰프는 “많은 셰프들의 노력 덕분에 미쉐린 가이드가 도입된 지 6년 만에 국내 다이닝 문화가 세계에서 주목받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종종, 혹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벌어지는 논쟁, 한식은 무엇인가. 한식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K컬처로 촉발된 K푸드 열풍이 지속되면서 다시 이 같은 질문이 불쑥 제기된다. 한식은, K푸드는 무엇인가. 둘은 다른 건가, 같은 건가.

한식을 기반으로 한 창의적 요리를 선보여 온 셰프들은 종종 이런 논쟁의 중심에서 비판과 지지로 엇갈리는 시선을 받아왔다. 굳이 분류하고 구분 짓자면 모던 한식, 혹은 퓨전 한식 등의 장르로 묶인다. 한국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세계 음식에서 받은 영감을 요리로 선보이는 스와니예는 미쉐린 2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미쉐린의 장르 분류상 ‘이노베이티브’, 즉 혁신 분야에서 5년째 미쉐린 스타를 유지해 온 이준 셰프를 서울 성수동의 문화공간 오프컬리에서 만났다. 한식의 정의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그는 눈빛을 반짝이며 조금은 들뜬 표정으로 말했다.

“수백 년 전 우리 조상들도 버터나 치즈, 요거트를 만들어 드셨다는 사실 아셨나요? 고기를 훈연해서 먹기도 했고요. 이 이야기하면 대부분 안 믿어요. 그런데 조선시대에 쓰인 조리서를 보면 실제로 나와 있지요.”

수운잡방, 규합총서, 음식디미방 같은 고조리서를 그는 한동안 탐독했다고 했다. 메뉴 개발을 위해 보기 시작한 것이었는데 보는 내내 굉장한 충격과 얼얼함 같은 감정을 느꼈다. 버터, 치즈 같은 용어만 사용하지 않았을 뿐 레시피를 해석해 보면 다를 바 없더라는 것. 그는 “‘막걸리 침전물을 우유랑 섞어서 부뚜막에 올려두면 딱딱하게 굳는데···’ 이런 식으로 설명이 나와 있다”면서 “이런 부분을 지금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하고 물었다. 조상들이 당시 나름의 방식대로 만들었던 유제품은 한식의 범주에 들어가는 걸까.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이준 셰프의 스와니예는 한국적인 특징을 바탕으로 세계 음식에서 받은 영감을 요리로 미쉐린 2스타를 받은 레스토랑이다. 스와니예 홈페이지

-한식을 틀에 박힌 의미로만 정의하고 있다는 이야기인가요.

“우리 머릿속에 정형화된, 한국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잖아요. 그런 것만 전통이고 한식이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거죠.”

-이 시대에 우리가 보편적으로 먹는 것. 이걸 한식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합리적일 수 있겠네요

“같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비슷하게 소비하고 자연스럽게 먹고 받아들이면서 오랜 시간에 걸쳐 고착된다면 그게 문화이고 전통음식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즐겨온 치킨은 이미 그 논쟁을 뛰어넘은 레벨이 됐고요. 우스갯소리 같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앞으로 더 오랜 시간이 흐르고 지금처럼 소비된다면 우리 전통 음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캐주얼한 한식은 아직 글로벌 시장에서 존재감을 다지지 못한 것 같아요. 반면 파인 다이닝 스타일의 한식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당장 길에 나가서 살펴보세요. 카페, 피자집은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찌개나 탕을 파는 ‘밥집’은 잘 눈에 띄지 않아요. 일본만 해도 길거리에 있는 음식점 대부분이 우동이나 소바, 스시 등 전형적인 일본 음식이라고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어디서든 편하게 접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의 경우 외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가정해 볼까요. 그럼 한옥 마을이나 광장시장 등 특별한 곳을 가야 할 것 같잖아요. 일상적으로 내가 먹는 한식 하면 어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존재감도, 다양성도, 전반적인 수준도 떨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봅니다.”

-왜 그런 걸까요.

“가장 큰 이유는 ‘한식은 싸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인 것 같아요. 스시만 해도 아주 싼 것부터 초고급 스시가 있고 북경오리도 클래스가 천차만별인데 된장찌개나 비빔밥은 무조건 싸야한다고 생각하잖아요. 같은 밀가루로 사람이 직접 반죽한 면인데 칼국수는 몇천 원을 넘기지 못해요. 반면 파스타는 3만 원을 지불하죠. 칼국수나 된장찌개가 무조건 비싸져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고정관념이 일상적인 한식 수준의 발전을 막고 있다고 봅니다.”

-한식을 해서는 돈을 벌기 힘든 구조인 셈인데요.

“요리사를 지망하는 사람 중에서도 선호도가 떨어지는 것이 한식이라는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죠. 경제 논리와 연결되니 한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입맛도 하향평준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죠. 결국은 요리하시는 분들이 노력이 뒷받침되어야겠죠. 뭔가 다른 맛,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면 소비자들도 그 가치를 인정하게 되지 않을까요.”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