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 좌승사자’ 꿈꾸는 베어스 최후의 1차 지명 “저도 29번 멋지게 물려주려고요.” [MK인터뷰]
KBO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제도는 2021년을 끝으로 다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자연스럽게 두산 베어스 역사에서 ‘현재까지’ 최후의 1차 지명 주인공으로 남은 이는 바로 입단 2년 차 좌완 이병헌이다.
이병헌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신인 지명을 앞두고 팔꿈치 수술 뒤 재활에 나섰다. 하지만, 두산 구단은 잠재력을 믿고 1차 지명자로 이병헌을 선택했다. 이병헌은 믿고 기다려준 두산 구단의 은혜에 보답하듯이 올 시즌 불펜진에서 없어선 안 될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병헌은 올 시즌 16경기(9이닝)에 등판해 4홀드 평균자책 4.00 9탈삼진 WHIP 1.56을 기록했다. 주로 좌완 원 포인트 역할이지만, 이병헌은 140km/h 후반대 강력한 패스트볼과 날카로운 궤적의 슬라이더로 ‘불펜 씬 스틸러’로 활약 중이다. 이병헌 자신도 ‘잠실 좌승사자’를 꿈꾼다. 더 나아가 향후 자신의 등번호인 29번을 팀 선배였던 유희관처럼 멋있게 물려줄 날도 그린다.
올 시즌 초반 두산 불펜진에서 없어선 안 될 좌완이 됐다. 이제 ‘1차 지명’의 재능을 보여주는 그림인데.
요새 마운드 위에 올라갔을 때 느낌이 좋다. 사사구나 제구가 크게 벗어난 공이 적어지면서 무조건 빠르게 승부하려고 들어간다. 그렇게 자신감을 점점 얻어가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긴장이나 부담감을 덜 느끼게 된다. 날씨가 앞으로 더 풀리면 구위와 구속이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한다.
최고 구속 149km/h가 찍혔는데 조만간 구속 150km/h도 충분히 가능해보인다.
솔직히 구속에 크게 욕심이 없다. 150km/h는 원래 던졌던 구속 숫자라 다시 던지면 기분이 은 것보단 원래 던졌던 구속을 다시 던지는 거라 구속이 잘 돌아왔구나 정도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우타자를 상대로 자신감 있는 투구를 보여준다면 좌완 원 포인트를 넘어 1이닝을 책임질 필승조가 될 수 있을 듯싶다.
어렵게 가는 상황과 빠르게 승부해야 하는 상황이 따로 있는데 투구수를 고려하면서도 좋은 결과를 얻는 방향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 지금 분위기로는 좌·우 타자 상관없이 다 이길 자신이 있다. 단순히 구위가 좋다는 것보단 내 자신을 믿는 법을 2군에 내려갔을 때 많이 배운 까닭이다. 앞으로 좌·우 타자 상관없이 많은 타자를 계속 상대하고 싶다.
변화구를 주로 슬라이더를 구사하는데 어떤 방향으로 고민하고 있나.
슬라이더의 경우 좌타자 몸 쪽으로 밀려들어가는 공이 많더라. 그래서 신경을 많이 쓰면서 더 반대 방향으로 던지는 걸 의식한다. 슬라이더를 몸 쪽과 바깥 쪽 모두 조절하면서 던진다면 더 위력적이지 않을까 싶다.
감독님이 2군으로 내려오면 1군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경기에 내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내놓으셨다(웃음). 그래서 어떻게든 1군에서 버티려고 노력 중이다. 개인적으로도 내 야구에 대해서 인정받고 좋은 성적을 내고 싶은 욕심이 강하다. 무엇보다 좌완 원 포인트 역할이란 것도 정말 마음에 든다.
어떤 매력인가.
처음엔 길게 던지고 싶은데 원 포인트 역할로 나가면 별로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좌타자를 상대로 좋은 결과가 나오니까 욕심이 점점 막 생기더라. 성적도 그렇고 홀드 타이틀도 그렇고 이런 게 원 포인트의 매력이라는 걸 점점 느낀다.
이제 좌완 원 포인트로 확실히 자리잡은 건 사실이다.
그래도 더 잘해야 한다. 개막 초반 때 과정이나 결과가 너무 안 좋았다. 내 이미지가 그렇게 긍정적인 쪽으로 흘러가는 건 아닌 듯싶다. 5월 중순이 됐으니까 내가 직접 내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
어떤 이미지로?
‘잠실 좌승사자’라는 이미지가 나에게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 단어 어감이 되게 좋다. 좌타자에게 그만큼 강점이 있다는 얘기고, 비교적 적은 이닝을 소화하는데도 그런 역할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줄 수 있단 선수라는 얘기니까 내가 그 이미지를 가져가고 싶다.
그 이미지에 어울리는 세리모니도 준비할 계획인가. 최근 소크라테스를 상대로 삼진을 잡았을 때 저절로 액션이 나오던데.
솔직히 준비한 게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그런 액션이 나왔다(웃음). (김)동주 형 승리를 어떻게든 지키고 싶었기에 무조건 막는단 생각으로 올라갔는데 범타보다 삼진으로 잡으니까 더 기뻐서 그러지 않았을까 싶다. (정)철원이 형, (곽) 빈이 형, 동주 형 다 세리모니를 잘하는데 나도 결정적인 상황에서 잘 따라 배워서 해보려고 노력해보겠다(웃음).
(자기가 먼저) 형들이 김남희 배우님과 나와 닮았다고 많이 말하더라(웃음). 미스터 션샤인이란 드라마에 나오셨는데 그때 이병헌 배우님과 같이 출연하셨지 않나. 그래서 ‘다른 이병헌이 왔다’라는 말도 한 번 하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내 팔도 만져보셨는데 (양)의지 선배님과 포옹하셨을 때도 표정이 정말 행복해보이셨다(웃음).
듣고 보니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면 닮아보일 듯싶기도 하다(웃음). 다시 야구 얘기로 돌아가서 계속 불펜에서 공을 던지고 싶은 마음이 큰 지 궁금하다.
오히려 연투를 했을 때 팔이 더 가볍게 잘 움직인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지만, 약간 불펜이 체질이 아닌가 싶다. 선발 자리가 얼마나 재밌는지 느껴보고 싶지만, 불펜도 개인적으로 되게 좋다고 생각한다. 마음 같아선 144경기 다 연투하면서 144홀드를 기록하고 싶다(웃음).
등번호 29번은 마음에 드나. 달고 싶었던 번호로 알고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달았던 번호에다 우리 팀 대표 좌완이셨던 유희관 선배님 번호라 더 애착이 가고 너무 마음에 든다. 마운드 위에 올라갈 때마다 자신감이 생긴다. 29번 등번호에 먹칠을 하지 않고 먼 훗날에 좋은 그림으로 다른 팀 후배에게 멋지게 물려주고 싶다. 만약 내가 못하면 이 번호를 달지 말라고 할 텐데 그런 일이 없도록 평생 두산 마운드를 잘 지켜보고 싶다.
최근 두산 팬들에게 인기도 실감하나.
솔직히 내가 인기가 있는 편인지 모르겠다. 다른 형들이 원체 인기가 많으셔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웃음). 그래도 나를 응원해주시는 팬들을 위해 더 힘을 내고 있다. 삼진을 잡거나 아웃카운트를 잡을 때마다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올 시즌 다시는 2군에 내려가는 일없이 이병헌다운 야구를 잠실 마운드 위에서 계속 보여드리겠다.
[잠실(서울)=김근한 MK스포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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