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대해부] 전해질·분리막… 日과 2위 경쟁
대한민국의 반도체 신화를 이을 산업으로 2차전지가 꼽히고 있다. 지난해 글로벌 시장(중국 제외)에서 국내 2차전지 빅3 업체의 점유율은 53%로 절반을 넘었다. K배터리의 위상은 배터리셀을 넘어 소재와 장비 등 2차전지 생태계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다. 2030년 전기차 생산이 5400만대로 폭증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2차전지를 놓고 ‘배터리 패권경쟁’을 펼치는 대한민국 배터리 산업의 현황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전해질과 분리막은 양극재, 음극재와 함께 리튬이온배터리의 4대 구성 요소로 꼽힌다. 리튬 이온은 양극재와 음극재 사이를 이동하며 화학적 반응을 통해 전기를 만든다. 이때 전해질은 배터리 내부의 양·음극 사이에서 리튬 이온이 원활하게 이동하도록 돕는 일종의 ‘이동 수단’ 역할을 한다. 분리막은 양·음극의 접촉을 차단하면서 리튬 이온만 통과하게 하는 검문소와 비슷하다. 분리막의 결함으로 양극과 음극이 만나면 화재가 발생한다.
현재 전해액과 분리막 시장은 중국이 약 70%를 점유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이 나머지를 나눠 가지는 구조다. 국내 전해질 및 분리막 생산 기업은 공격적으로 생산 규모를 늘리고, 북미로도 진출하고 있다. 전해질과 분리막은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세부 지침에서 ‘배터리 부품’으로 분류됐다. 세액공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배터리 부품 비율이 50%를 넘어야 한다. 이 비율은 매년 10%포인트(p)씩 높아져 2028년에는 100%가 된다.
엔켐, 동화일렉트로라이트 등 전해질 생산 업체는 이미 공격적으로 북미 지역 투자에 나섰고 SK아이이테크놀로지, 더블유씨피 등 분리막 업체도 북미 진출 의사를 밝힌 상황이다.
◇ 유통 기한 짧은 전해액… 업체들, 해외 공장 확대
현재 대부분의 배터리에 쓰이는 전해질은 전해질염을 녹인 액체 상태로, 일반적으로 ‘전해액’이라고 부른다. 전해액은 리튬염(Lithium Salt), 유기용매(organic solvent), 첨가제(additive)를 적절히 배합해 만들어진다.
배터리 양극에서 방출된 리튬 이온은 주변의 다른 리튬 이온을 밀어내고, 음극 근처 전해액에 있던 리튬 이온은 음극으로 흡수되며 전기가 만들어진다. 리튬 이온 자체는 질량이 커서 쉽게 이동하지 않지만, 전해액이 이온의 이동 속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때문에 어떤 전해액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배터리의 효율이 달라진다. 전해액은 배터리 전체 생산 비용에서 15% 내외를 차지한다.
전해액 시장은 신규 진입이 어렵다는 특징을 가진다. 배터리 개발 단계부터 셀 업체와 전해액 업체가 배터리에 사용될 양극재와 음극재에 특화된 전해액을 공동 개발하기 때문에 기존에 실력이 검증된 전해액 업체가 선호된다. 또 전해액은 화재와 폭발 위험성이 높아 기술력이 필요하고, 유통기한도 생산 후 3~4개월 정도로 짧다. 다른 배터리 소재와 달리 25℃ 이하를 유지해야 해 이동할 때도 특수 용기에 담은 뒤 냉장 기능이 있는 컨테이너를 이용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전해액 납품 업체들은 배터리 제조사 공장 근처에 생산 설비를 갖추고 해외 생산능력을 늘리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와 발맞춰 외국에 진출해 전해액을 차질 없이 공급하기 위해서다.
국내 전해액 전문 제조 업체로는 엔캠, 동화일렉트로라이트가 꼽힌다. 지난 2020년 기준 엔켐과 동화일렉트로라이드는 전해액 시장에서 각각 4%, 3%를 차지해 9·10위에 이름을 올렸다.
엔켐의 경우 현재 국내에서 연산 2만5000톤(천안 2만톤, 제천 5000톤), 중국 3만톤(조장 2만톤, 후저우 1만톤), 미국 2만톤(조지아), 폴란드 2만톤 등 총 9만5000톤의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전해액 9만5000톤은 전기차 약 142만5000대(대당 약 67㎏)에 들어가는 양이다.
올해 엔켐은 미국 조지아 공장의 생산량을 4만톤까지 늘릴 예정이다. 또 2024년까지 조지아(14만톤), 미시건(4만톤), 테네시(4만톤), 켄터키(4만톤), 오하이오(2만톤)에서 증설을 앞두고 있어 내년 말 북미 지역 내 전해액 생산 능력은 연산 28만톤에 달할 전망이다. 유럽 지역의 경우 올해 폴란드 공장의 생산량을 4만톤 늘리고 헝가리 공장(4만톤)을 신설한다. 내년에는 튀르키예에도 4만톤 규모의 공장이 들어설 예정이며, 중국과 인도네시아에도 대규모 증설을 앞두고 있다.
동화일렉트로라이트는 논산(1만톤), 중국 톈진(1만3000톤), 말레이시아(1만톤), 헝가리(2만톤)에 전해액 공장을 두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내년 3분기까지 미국 테네시주 클락스빌에 연산 8만톤 규모의 전해액 공장을 짓는다고 밝혔다. 테네시 공장 완공 이후 국내외 생산 거점에서 전해액 생산능력은 연간 총 15만톤에 달할 전망이다.
◇ 배터리 안전 책임지는 분리막… 시장 급성장
전해액이 리튬 이온의 이동 수단이라면, 분리막은 일종의 검문소다. 분리막은 양극과 음극의 직접적인 접촉을 막으면서 포어(pore)라는 미세한 기공 사이로 리튬 이온만 통과시킨다. 또 배터리 내부 온도가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면 분리막 표면의 기공이 막혀 리튬 이온의 이동을 차단해 단락(합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분리막은 배터리의 용량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분리막이 얇을수록 동일한 부피의 셀에 양·음극재를 더 넣을 수 있어 에너지의 밀도가 높아진다. 현재 리튬이온배터리에서 사용하는 분리막의 두께는 5~30마이크로미터(㎛·백만분의 1미터)로 얇고, 기공의 크기도 10~500나노미터(㎚·10억분의 1미터) 정도로 매우 좁다.
분리막은 대부분 폴리에틸렌(PE)과 폴리프로필렌(PP) 소재로 만들어지며, 기공을 어떻게 만드는지에 따라 건식과 습식으로 나뉜다. 건식 분리막은 PP·PE 필름을 잡아당기고 늘리면서 기공을 만드는데, 공정이 간단하지만 크기를 균일하게 만드는 것과 막을 얇게 펴는 것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때문에 전기차 등 고출력·고용량 배터리에는 습식 분리막이 사용된다. 습식은 고온에서 PE·PP에 파라핀 오일을 섞은 뒤 고온, 고압으로 압출해 납작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제조 단가가 비싸지만 두께가 얇고 기공도 균일하게 만들 수 있다.
국내에서는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더블유씨피(WCP)가 습식 분리막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발표된 IRA 세부 항목에서 분리막이 ‘배터리 부품’에 포함되면서 이들 업체는 북미 진출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IRA 보조금을 받기 위해서는 북미에서 제조·조립된 배터리 부품 비율이 50%를 넘어야 하며, 이 비율은 매년 10%p씩 높아진다.
SNE리서치는 2차전지 분리막 시장 수요가 오는 2025년까지 연평균 38%에 달할 것으로 봤다. 2030년에는 수요가 379억㎡까지 커지면서 연 219억달러(한화 약 29조원) 규모의 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SKIET는 지난 2020년 기준 글로벌 고급 습식 분리막 시장에서 점유율 26.5%로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기준 한국(5억2000만㎡), 중국 창저우(6억7000만㎡), 폴란드 실롱스크(3억4000만㎡) 등 총 15억3000만㎡의 연간 생산 능력을 보유했다. 전기차 한 대에는 약 750㎡의 분리막이 들어간다. 15억3000만㎡는 전기차 약 204만대 분량이다.
SKIET는 폴란드 공장 증설을 통해 올해 3억4000만㎡, 내년 8억6000만㎡의 생산 능력을 추가로 갖출 예정이다. 북미 분리막 공장 신설도 검토하고 있다. SKIET는 올해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내년까지 북미 진출에 대한 검토와 의사결정을 진행할 예정이며, 분리막 사업의 북미 현지화가 필요한 시점은 2028년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2위 분리막 업체인 WCP는 한국 충주 공장에서 연산 8억2000만㎡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 증설을 통해 3억1400만㎡의 추가 생산 능력을 갖출 예정이다.
WCP는 오는 2025년까지 헝가리에 7억유로(한화 약 1조130억원)를 투자해 연산 12억㎡ 규모의 분리막 공장을 세울 계획이며, 완공 시 23억㎡의 생산 능력을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또 올해 하반기 북미 진출과 관련한 구체적인 계획도 수립한다는 방침이다.
◇ ‘꿈의 배터리’ 고체 전해질, 전해질과 분리막 구분 사라져
지금은 배터리 4대 구성요소로 양극재·음극재·전해질·분리막을 꼽지만,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배터리가 상용화되면 전해질과 분리막의 구분이 사라진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가 아닌 고체 형태의 전해질을 사용하는데, 고체 전해질이 분리막의 역할도 대신하기 때문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온도 변화로 인한 부반응이나 외부 충격에 따른 누액의 위험성이 없고 양·음극 활물질 비중을 높여 에너지 밀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은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힘을 싣고 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제16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2차전지 산업경쟁력 강화 국가전략’을 발표하며, 오는 2030년까지 전고체 배터리 개발 등에 민·관이 2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정부는 차세대 전지 개발을 위한 대규모 연구개발(R&D)을 추진하고, 국내 배터리 3사는 전고체 배터리 시제품을 만드는 ‘마더 팩토리’를 국내에 구축한다. 이를 통해 기업과 정부가 세계 최초로 전기차용 전고체 배터리 양산기지를 확보해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에 나서겠다는 목표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2차전지는 기술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른 만큼 국제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보다 과감한 혁신과 투자가 필요하다”며 “2030년까지 기술과 시장 점유율에 있어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민·관의 힘을 모아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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