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열의 생생건강S펜] "환자중심 '암 다학제통합진료', 낯설었지만 '환자·보호자·의료진' 소통에 큰 역할"
[헤럴드경제=김태열 건강의학 선임기자] 암 치료법이 지속적으로 발달하며 다양한 치료법이 존재하고, 치료 전후 다학제 진료의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다학제 진료는 다양한 분야의 의료전문가가 모여 가능한 모든 치료방법을 논의해 개별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방법을 제시할 수 있다. 이에 지난해부터 환자를 대면진료하는 암 다학제통합진료가 각종 병원 평가항목에 포함됐다. 3인 이상 전문의의 대면진료가 의무화됨에 따라 시행 초기에는 어려움도 컸지만, 현재는 환자 중심의 병원 문화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김정현 교수는 목요일 오전 외래진료 마지막 환자의 진료가 끝나자마자 서둘러 2층 호흡기내과 외래에서 지하 2층 다학제진료실로 뛰어갔다. 12시 30분부터 다학제진료가 잡혀 있었는데 시간은 벌써 12시 4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오전 외래진료에서 X-ray 촬영 후 확인해야 하는 환자가 많아서 진료시간이 길어진 것이다.
다학제진료실에는 벌써 폐암 다학제팀 교수들과 지난주에 폐암 3기 판정을 받은 박종수(남·75, 가명)씨와 그의 가족들이 도착해 있었다. 사전에 다학제팀 교수들이 논의한 결과 수술과 항암방사선치료 모두 가능했고 최종적으로 환자가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다학제통합진료가 마련된 것이다. 김 교수는 숨을 고를 시간도 없이 마이크를 잡고 간단한 인사와 함께 다학제진료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미리 설명을 드렸지만 박종수 환자분의 병을 같이 진단하고 계획을 하기 위해서 오늘은 흉부외과 이희성 교수님, 핵의학과 한유미 교수님, 방사선종양학과 하보람 교수님이 와주셨어요.”
호흡기내과 김정현 교수는 환자의 전반적인 상태와 치료법의 종류에 대해 설명했고, 이어 핵의학과 한유미 교수가 PET검사 결과를 토대로 영상의학적 결과에 대해, 흉부외과 이희성 교수가 수술적 치료에 대해, 방사선종양학과 하보람 교수가 방사선치료에 대해 설명했다.
다학제팀의 사전 논의에서는 박종수 씨와 같은 경우에 수술적 치료가 생존율이 좀더 높기 때문에 수술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다, 그러나 다학제진료가 끝난 후 박종수 씨는 나이가 많고 수술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며 최종적으로 항암방사선치료를 선택했다.
김 교수는 “환자분께서 최종적으로 의료진이 1번으로 권유한 치료법과 다른 치료법을 선택했지만 이것이 다학제진료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며 “다학제진료에 참여한 환자들은 여러 진료과 교수들이 제공하는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들을 비교해 최종적으로 자신이 어떤 치료를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부터 암 다학제통합진료 급여화=건강정보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은 지난해 7월부터 모든 암에 대한 다학제통합진료를 건강보험 급여기준에 포함시켰다. 또한 위암·대장암·폐암 적정성평가에 다학제 진료비율이 포함됐고, 올해는 간암과 유방암도 포함됐다. 심평원에서 인정하는 다학제통합진료는 3인 이상의 서로 다른 전문과목 전문의가 동시에 환자 대면진료에 참여해야 한다.
암으로 진단받은 환자 중 담당교수가 다학제통합진료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는 환자에게 시행되는데, 주로 암 진단 후 처음 치료계획을 수립하거나 치료 중 새로운 치료계획을 수립해야 하는 경우 시행하게 된다. 이전부터 많은 병원들이 다학제통합진료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급여기준과 적정성평가 기준에 포함됨에 따라 이제는 의무적으로 환자가 참여하는 다학제통합진료를 일정 비율 이상으로 시행해야 한다.
▶환자 참여 다학제통합진료가 불러온 변화=이러한 정책변화는 병원에도 큰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환자와 함께 하는 다학통합진료를 시행해야 하기 때문에 진행방식이 환자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
먼저 점심시간 다학제진료실을 예약하기 위한 예약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러 교수들이 한자리에 모여야 하지만 외래진료, 시술, 수술 등으로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 또 환자와 보호자의 시간도 맞춰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점심시간을 선호한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에는 2개의 다학제진료실이 있지만 점심시간에는 이용이 힘들 때가 많다.
고령이 많은 암 환자의 경우 치료법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가족들의 의견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 다학제통합진료의 또다른 장점은 환자의 보호자 누구라도 인원 제한 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자의 직계가족은 물론 사위, 며느리, 심지어 대학생 조가까지 일가친척들이 참여해 대여섯 명의 인원이 다학제진료실을 가득 채우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많은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진료가 이뤄지기 때문에 진행방식에 대한 어려움도 컸다. 여러 명의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마이크를 들고 돌아가면서 설명하는 방식이 초창기에는 낯설고 어색했다. 교수들끼리 얘기할 때와 달리 암 진단을 받은 환자에게 정제된 언어로 설명을 해야 해서 말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러웠다.
김정현 교수는 “처음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다학제통합진료를 할 때 마치 내가 방송프로그램의 사회자가 된 것처럼 진행을 해야 해서 어색했고 사소한 말실수라도 하지 않기 위해서 신경이 곤두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환자와 보호자의 만족도가 높아지며 교수들의 생각도 변하기 시작했다. 다학제통합진료는 보통 30분 내외로 이뤄진다. 환자들은 여러 명의 교수가 자신의 질환에 대해서 심도 깊고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과정에서 치료에 대한 이해도와 의료진에 대한 신뢰도가 쌓인다. 교수들 또한 이러한 자리를 통해서 환자들의 치료 순응도가 높아지기 때문에 점차 다학제통합진료를 선호하며 실시건수도 늘고 있다.
이전의 여러 연구들에서도 다학제통합진료가 의료진과 환자에게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권고안을 제시하여 치료 결정에 영향을 주고, 의료진 간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고 빠르게 하며, 암환자들이 느끼는 진료의 만족도를 향상시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림대학교동탄성심병원의 지난해 하반기 다학제통합진료 건수는 상반기 대비 58% 증가했다. 9개 진료과가 8개 암종에 대해서 다학제통합진료를 시행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올해 4월까지 다학제통합진료 대상인 환자에 대한 진료 실시비율은 위암 92%, 대장암 63%, 폐암 53%이다. 이는 적정성평가 만점 기준인 위암 7.6%, 대장암 12.2%, 폐암 12.6%를 훨씬 상회하는 비율로 많은 교수들이 다학제통합진료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박일석 암센터장(이비인후과 교수)은 “암 다학제통합진료의 활성화로 환자 중심의 병원문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며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던 교수들도 환자들을 위한 긍정적인 변화라는 점에 공감하며 다학제통합진료에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kty@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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