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예술엔 노래를 담아야겠소”… 거장 김환기의 사색 속으로
1년여 간 리노베이션 후 재개관
달항아리부터 점화 시리즈까지
40년 작품 세계 순서대로 펼쳐
편지·일기까지 벽면에 전시도
"파리에 와서 정말 바쁘기만 하오. 하루 10시간에서 15시간 일을 하고 있소…여기 와서 느낀 것은 시정신(詩精神)이오. 예술에는 노래가 담겨야 할 것 같소. 거장들의 작품에는 모두가 강력한 노래가 있구려."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가 1957년 프랑스에서 한국의 벗에게 쓴 편지 일부다. 18일 개막하는 호암미술관의 전시 ‘한 점 하늘_김환기’는 수화의 편지와 일기 속 구절들을 벽면에 소개한다. 미술 거장인 그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한 문사(文士)이자 철학자이기도 했음을 알려준다.
이번 전시를 여는 경기 용인의 호암미술관은 새로운 변화를 꾀하며 그 첫 번째 작가로 김환기를 초대했다. 미술관 측은 "지난 40여 년 동안 고미술·근대미술 전문으로만 인식돼왔는데, 앞으로는 현대미술도 적극적으로 보여줄 예정"이라고 했다. 삼성문화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과 똑같은 개념으로 전시 기획을 한다는 것이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하나의 미술관으로서 두 개의 장소에서 차등 없이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꾸릴 것"이라고 했다. 미술관은 변화를 위해 지난 1년 반 동안 리노베이션 작업을 했다. 외관과 로비 등은 건축유산 보존 차원에서 그대로 두되, 전시 공간의 층고를 높이며 구조와 조명 등을 바꿨다.
이번 전시 기획자인 태현선 리움 학예연구실장은 "호암미술관이 변화를 모색하며 첫 전시 작가로 김환기를 택한 것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공간 특성과 맞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1982년 이 미술관을 개관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우리 전통문화에 애정이 깊었던 것처럼 수화도 그런 바탕에서 당대와 소통하고 미래로의 발전을 꾀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수화의 예술 전모를 톺아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추상미술 거장’ ‘경매 최고가 작가’ 등으로 알려지며 이름이 높지만, 정작 그의 작품 실체를 전반적으로 살펴보는 전시는 드물었다.
1, 2층 전관에서 12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는 수화의 40년 화업 여정을 순서대로 펼쳐 보인다. 작품을 둘러보고 나면, 그가 말년의 걸작 점화(點畵)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조형 언어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시정(詩情)이다. 수화는 그림 속에 압축, 상징, 여백의 미학을 담아냈다. 그가 파리에서 보낸 편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그것이 세계 미술과 호흡하는 통로가 될 것을 직감했다. 사실 이 시정은 그가 서울에서 살 때(1937∼1956) 당대 거장 문인들과 교우하면서 체득했던 것이었다.
전시 1부는 그가 사랑했던 달(자연)과 항아리(전통문화)가 ‘달항아리’가 돼서 그만의 추상 스타일로 정착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건희 컬렉션 기증 때 화제가 됐던 벽화대작 ‘여인들과 항아리’도 있는데, 이번 전시 준비 과정에서 발견한 작가 수첩을 통해 작품 제작연도가 1960년으로 확인됐다.
태 실장은 "수화의 따님이자 윤형근 화백의 부인인 김영숙 여사 등 유족이 수십 년간 간직해 온 자료를 이번에 일반에게 처음 공개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1937년 도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기 열흘 전의 청년 김환기 사진, 그가 애장했던 도자기와 선반, 삽화와 기고문이 정리된 스크랩북, 파리 개인전의 방명록, 문화예술인 160명이 이름을 올린 추도식 팸플릿 등이다. 태 실장은 "1950년대 스케치북과 1974년 작 점화(‘26-V-71 #204’) 등도 소장가들의 협조로 선보일 수 있었다"며 "이번 전시는 김환기에 대한 정리가 아니라 새로운 연구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전시 2부는 수화가 미국 뉴욕 거주 시기(1963∼1974)에 국제무대에서 통할 새로운 추상 세계를 열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가 수많은 시도 끝에 점화에 확신을 얻고 그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1970)을 만날 수 있다. ‘우주’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5-IV-71 #200’(1971)도 있다. 그의 점화가 평면서 곡선으로 나아가며 화면이 색을 얻어 율동의 활기를 띠는 것이 매우 흥미롭다. 그림이 노래가 되는 경지라고나 할까. 병환이 깊어진 그가 죽음을 예감한 듯 도가(道家)의 자연 사상에 침잠하며 남긴 검은 색조의 점화가 전시 마지막에 자리했다. 유료 관람(1만4000원)으로 오는 9월 10일까지.
장재선 선임기자 jeijei@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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