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kWh당 8원 인상은 언 발에 오줌 누기 [핫이슈]
하지만 근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한전 적자는 에너지 가격 급등 탓이다. 최근 석유와 가스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다소 안정됐다고 하지만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20년 비하면 여전이 높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전력 구입단가가 판매단가보다 높은 역마진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1분기에도 전력 구입단가와 판매단가가 각각 174.0원과 146.6원으로 kWh당 27.4원 역마진을 봤다.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 한전은 1분기에도 6조원대 손실을 기록했다. 2021년 5조8000억원, 2022년 32조6000억원의 적자로 지난해 말 기준 부채는 192조8000억원에 달했다.
미국과 일본, 유럽 각국은 연료가격 급등에 맞춰 전기요금을 2배 이상 올렸다. 한국만 이런 흐름에 역행했다. 시장 원리에 따르지 않고 전기요금을 정치적으로 결정했다. 그 부작용은 한둘이 아니다. 한전이 적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당장 채권시장을 교란시킬 수 있다. 경영 자금 확보를 위해선 한전채를 대규모로 발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전은 올 들어서도 한전채 발행을 계속 늘려왔다. 이번 전기요금 인상으로 발행 규모가 다소 축소될 수 있겠지만 적자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 발행을 중단할 상황은 아니다. 한전채는 다른 회사채 수요를 빨아들이는 이른바 ‘블랙홀’이 될 수 있다. 회사채 양극화를 부추기는 결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전채가 은행채와 공사채 발행과 합쳐지면 기업들의 자금 조달 부담은 더 커진다. 한전채 발생 물량이 많아지면 한전법이 정한 한도가 차는 시기도 빨라진다. 이렇게 되면 국내 전력산업이 붕되될 우려가 커진다.
한전은 발전사들로부터 전력을 구매해 공급한다. 발전사들은 한전에서 전력판매 대금을 받아 연료를 사온다. 한전은 또 많은 협력사를 두고 있다. 한전이 자금난에 봉착하면 대금 지급이 힘들 수 있다. 한전채 발행과 대출로 자금을 충당해야 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결국 전기요금을 충분히 올려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전기요금을 찔끔 올리거나 동결하면 전력산업이 마비되는 최악의 사태가 올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국내 전력 공급 기반이 흔들릴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 전력망에 대한 투자가 지연되고 기후변화에 대응한 신재생 에너지 전략에도 차질이 빚어진다.
한국이 제조업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던 저력 중 하나는 양질의 전기였다. 반도체와 철강, 석유화학,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서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려면 전기의 품질이 좋아야 한다. 한전 적자를 방치하면 제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도 있다. 지나치게 싼 전기요금은 통상 문제로 확산될 소지도 다분하다.
전기요금의 과도한 인상은 물가를 자극하고 국민의 삶과 기업을 힘들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전기요금을 억지로 묶어두면 언젠가는 더 큰 고통에 직면할 것이다. 경제와 산업이 망가지는 피해를 입기 전에 고통을 분산하고 분담하는 것이 현명한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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