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의 뜨거운 감자인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취소법'의 생사가 오늘 윤석열 대통령의 결정에 갈리게 됐다. 경우의 수에 따른 의료계의 파장도 달라질 전망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오늘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13보건복지의료연대는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관 앞에서 각각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향후 대응 전략을 발표할 예정이다. 다양한 경우의 수에 따른 의료계 파장을 점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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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안 통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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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안이 통과하면 13보건복지의료연대는 대한의사협회의 주도로 내일(17일) 종일 총파업에 돌입하기로 예고한 상태다. 대한의사협회는 개원의 위주의 단체인 만큼, 전국 개원가에선 병원 문을 닫는 '셧다운'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 경우 감기·독감 같은 경증질환, 소아 응급질환 등의 진료 시 차질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1차 의료기관(개원가)을 거쳐 상급종합병원에 가야 하는 중증 질환의 진료 연계에도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 종합병원과 상급종합병원에선 개원가보다는 참여율이 낮을 것으로 보이지만, 의사가 총파업에 동참할 경우 의사의 지시를 받는 임상병리사·방사선사·간호조무사 등 약소직역은 덩달아 총파업에 동참할 가능성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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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법 제정안 거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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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로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오늘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2호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경우 대한간호협회는 사상 초유의 '초강력 단체행동'에 나서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간호협회는 지난 8~14일, 협회에 등록한 전 회원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참여 인원 10만5191명(14일 자정 기준) 중 10만3743명(98.6%)이 '적극적인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이번 의견조사에는 전체 대상 회원(19만2963명) 가운데 54.5%가 참여했다.
또 간호협회는 적극적 단체행동 여부와 함께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 참여와 간호사가 원하는 정당에 가입하는 1인 1정당 가입하기 '클린정치 캠페인' 참여에 대한 의견도 조사했다. 조사 결과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의견은 64.1%(6만7408명)였다. 또 1인 1정당 가입하기 '클린정치 캠페인'에는 79.6%(8만3772명)가 참여하겠다고 응답했다. 이것이 현실화하면 면허증 반납으로 인한 간호사 업무 공백은 불가피해 보인다. 또 1인 1정당에 가입하자는 클린정치 캠페인에 참여하는 간호사는 상당수가 간호법을 지지해온 더불어민주당에 가입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내년 총선으로 여당을 심판해 '간호법의 부활'을 시도하려는 셈법으로 읽힌다. 간호협회는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경우를 대비해 현재 단체행동 수위를 논의 중이다. 단 간호협회는 "대통령의 재의요구권이 행사돼도 의사협회와 일부 보건의료 단체들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파업은 하지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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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면허 취소법 통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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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면허 취소 기준을 강화하자는 의료법 개정안(일명 '의료인 면허 취소법')에 대한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으면 '의료인' 중에서도 의사와 치과의사의 공동 대응이 강력해질 전망이다. 의료인 가운데 한의사·간호사와는 등을 진지 오래됐고, 조산사는 인원 자체가 드물기 때문이다. 13보건복지의료연대는 지난 15일 '22대 총선기획단'을 출범하며, 각 직역의 이슈에 대해 공동 대응키로 선언했다. 이에 따라 의료인 면허 취소법이 통과할 경우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가 주도는 하되 이 연대에 소속된 13개 단체가 연합 전선을 형성할 전망이다. 서울특별시치과의사회 고위 관계자는 "두 단체만 연합하기보다 13개 단체가 하나 돼 일종의 세(勢)를 불리겠다는 셈법"이라고 귀띔했다. 실제로 15일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간호법 제정안이 거부되고 의료인 면허 취소법이 통과되면 연대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구체적인 로드맵은 단체장이 모여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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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인 면허 취소법 거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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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법무사 등 전문 직종 가운데 의사를 제외한 나머지 전문 직종은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면허가 무조건 취소된다. 이는 면허 취소법에 근거해서인데, 변호사·회계사·세무사 등 전문직 대다수가 면허 취소법에 저촉받는다. 그중 변호사는 변호사법에 따라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변호사는 면허가 취소될 뿐 아니라, 금고 미만의 형(벌금형, 과태료, 견책, 정직 처분 등) 죄가 경미한 수준이어도 대한변호사협회 사이트에 실명이 공개된다.
반면 의사·치과의사 단체는 의료인 면허 취소 기준을 강화한 의료법 개정안이 '과잉 입법'이라며 반발해왔다. 의료인 면허 취소법을 줄곧 반대해온 대한의사협회는 그 대안으로 협회의 '자정 시스템'을 운영하겠단 방침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료인 면허 관리에 대한 의료인 단체의 자율정화 기회를 부여하고, 충분한 계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김경태 부대변인은 "협회 자체적으로 징계위원회를 갖춰 죄를 지은 의사에게 자율정화 기회를 부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의료인 면허 취소법이 거부되면 대한변호사협회 등 타 전문 직종의 반발은 거세질 전망이다. 고(故) 신해철 씨 유족을 변호한 박호균 변호사는 의사 면허 취소법을 반대하는 의사 단체에 대한 실망감을 표했다. 박호균(법학박사, 전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위원, 법무법인 히포크라테스 대표) 변호사는 의사 출신으로, 현재도 대한의사협회 회원이기도 하다. 앞서 박 변호사는 "의료인 면허 취소법에 대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민이 윤 대통령을 거부할 것"이라며 강한 어조로 말한 바 있다. 김민호(VIP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변호사는 "변호사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죄의 종류와 관계없이 결격 사유에 해당한다"며 "의료인 면허 취소법에 대해 의사 단체가 이익단체로서의 모습을 보인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힘들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