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커플 ‘은초비’ 덜덜 떨며 부모님 보던 날…“이번 생은 성공”
⑤동성커플 유튜버 박초현·김은하씨
‘미워해도 소용없어.’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지난해 5월17일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아이다호 데이)을 맞아 내 건 문구다. 해당 문구는 같은 해 퀴어퍼레이드에서도 사용되며 성소수자와 앨라이(ally·성소수자 인권 지지자) 공감과 반응을 끌어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올해 ‘미워해도 소용없어 2023’ 캠페인을 시작한다. 지난해 캠페인이 혐오와 차별에 대항하는 성소수자·앨라이의 모습을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자신을 긍정하며 현재를 살고 있는 모습에 주목한다. 〈한겨레〉도 이 캠페인에 동행했다. 시리즈는 17일까지 총 6차례 계속된다.
지난 1월, 박초현(27)씨는 진주행 버스 안에서 손을 덜덜 떨었다. 설을 맞아 동성 연인 김은하(33)씨의 부모님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는 길이었다. 김씨도 커밍아웃한 이후 부모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버스를 타고 김씨의 본가로 가는 내내 박씨는 긴장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김씨도 먹은 게 체했다.
걱정은 기우였다. 김씨의 부모님은 각종 해산물과 고기로 한 상을 차려놓고 이들을 반겼다. 박씨 커플은 이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자신들이 운영하는 유튜브 ‘EUN and CHO 은초비’에 업로드했다. ‘레즈커플 커밍아웃 후 부모님 첫 만남’ 편이다. 영상에서 박씨는 말했다. “나를 예뻐해 주시고 환대해 주시니까 그냥 너무 안심되고… 이번 생은 성공적이야.”
박씨의 부모님 세대로 보이는 한 구독자가 영상에 댓글을 남겼다. 그는 “50‧60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지만, 시대가 많이 변했으니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새 문화가 온 것 같다”며 “용기 잃지 말고 행복하라”고 썼다. 지난 5일 앰네스티와 함께 서울 서초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한겨레>와 만난 ‘은초비’ 커플은 “그 댓글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고 했다.
5만여명이 구독하고 있는 ‘은초비’ 채널의 영상에는 약 25개 언어로 번역된 자막이 붙는다. 전세계 각지에서 은초비 커플을 응원하는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다. 은초비 채널에는 미국·스페인·일본·필리핀 등 각 나라의 언어로 된 댓글이 달린다. 박씨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모든 응원 댓글을 챙겨본다”고 말했다.
은초비 채널은 성소수자들의 공감과 위로의 장이다. “십대 후반, 이십대 초반 구독자들이 많아요. ‘제가 동성을 좋아하는데 이상한 걸까요?’ 누군가 댓글을 달면 다른 누군가가 ‘괜찮아요. 저도 그래요’라고 답을 달아줘요”라고 김씨가 말했다. 친구나 부모님께 커밍아웃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용기를 주고받는 구독자들도 있다. 김씨는 “우리 영상을 보고 자신도 ‘언젠가 부모님께 말하고 싶다’는 댓글이 달릴 때 뿌듯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성소수자임을 밝히고 유튜브를 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퀴어의 삶을 보여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는 더 많은 동성 커플이 당당하게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씨는 부모님께 커밍아웃하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처음에는 그저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고만 했다. “남자친구 언제 데려오니”라는 어머니의 말에, 김씨는 “남자친구가 아니라 여자친구”라고 커밍아웃해버렸다고 한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김씨의 어머니는 이내 ‘둘이 어떻게 만났느냐’, ‘서로 좋으냐’고 질문했다. 김씨의 긴장이 녹는 순간이었다. “(정식으로 인사를 하던 날) 엄마가 초현이에게 ‘얼굴을 보니까 마음이 놓인다, 딸과 만나줘서 고맙다’고 했어요.” 당시를 떠올리며 김씨의 눈이 촉촉해졌다.
두 사람은 현재 박씨의 어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 박씨는 주변 사람들이 커밍아웃을 쉽게 받아들인 편이라고 했다. 그는 재미있었던 커밍아웃 경험을 소개했다. “삼총사로 같이 다니는 여자친구,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했더니 남자친구도 사실 동성애자라고 고백하더라고요. 나머지 이성애자 여자친구에게 ‘여기선 네가 소수자야’라고 놀리기도 했어요.”
이들은 이른바 ‘갓생’(신을 의미하는 ‘God’과 인생을 뜻하는 ‘생’의 합성어로, 부지런하고 타의 모범이 되는 삶을 뜻하는 신조어) 커플이다. 김씨는 쇼핑몰을 운영하고, 걸그룹 출신인 박씨는 현재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작곡‧보컬레슨 등을 한다. 커밍아웃 관련 영상 몇 개를 제외하면 이들의 영상은 여느 커플과 다르지 않은 일상 브이로그가 주를 이룬다. 요리 먹방, 놀이공원 소풍, 캠핑, 랜선 집들이, 셀프 인테리어 등이다. 이들 영상은 퀴어(성소수자)뿐 아니라 이성애자들도 많이 챙겨본다고 한다. “열심히 사는 게 느껴지고 나중에 사업가로 성공할 것도 느껴지네요”, “애인이랑 초반 때 생각도 나고 우리도 열심히 살 수 있게 동기부여가 돼요” 같은 댓글들이 달리곤 한다.
두 사람은 다양한 매체에서 동성커플을 다루는 콘텐츠가 늘어나면서 성소수자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달라지고 있다고 여긴다. 지난해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웨이브는 스스로를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양성애자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는 프로그램 〈메리퀴어〉를 시작으로 성소수자 리얼리티 〈남의 연애〉 등을 방송했다. 올해 초 방송된 〈좋아하면 울리는 짝!짝!짝!〉에서는 여성 출연자 ‘자스민’이 다른 여성 출연자 ‘백장미’에 대한 호감을 드러내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김씨는 “(다양한 성 정체성·성적 지향을) 못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구시대적이라고 여기는 시대가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2025년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행복한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지만, 평범한 일상에서도 문득 남들과 ‘다름’을 느낄 때가 있다. 김씨는 인터뷰에서 “초현이가 아픈 게 가장 무서워요. 종종 초현이가 잘 때 코 밑에 손을 대 보기도 해요. 혹시 숨을 안 쉬지는 않을지 걱정돼서요”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서 동성 배우자는 병원에서 보호자로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는 유튜브 영상 ‘셀프 인테리어 이사 브이로그’에서 “(동성부부는) 사회적 보호의 울타리가 없잖아요. 결혼한 사람들은 신혼부부 제도 혜택이 있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받을 수 없으니까 열심히 살아야죠”라고 했다. 박씨도 “우리가 동성커플이니까 더더욱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그래서 더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라고 했다.
김씨는 아직도 동성커플을 어색해하는 이들에게 말했다. “저희의 일상, 한번 보러 오세요. 다르지 않습니다.” 박씨가 덧붙였다. “미워해도 소용없어. 우리를 사랑해주는 분들이 더 많으니까.”
이주빈 기자 ye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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