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못지않은 ‘출판사 팬덤’… ‘북클럽 오픈런’에 홈피 마비도
정원 1만명인 민음사 북클럽
가입 첫날에만 5000여명 몰려
5만원에 책 3권·회원전용 굿즈
마음산책, SNS심사로 소수 선발
‘한정판’ 구매하는듯 특별한 기분
문학동네는 기부 시스템 연계도
중소업체, 강의결합 기획력 승부
‘오픈런’에 ‘삼수’까지 감행한다. 문 열자마자 달려가서 구매한다는 ‘명품’이 아니다. 대학 입학 사례도 아니고, 아이돌 콘서트 표 구하기도 아니다. 출판사들이 독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유료 커뮤니티 ‘북클럽’이다. 책 읽는 사람은 줄고, 종이 값 인상 등으로 출판시장 불황은 더 악화했다는데, 독자가 알아서 찾아오는 북클럽이 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답은 ‘진화’였다. 평균 4만∼8만 원, 1년 동안 회원 자격이 유지되는 북클럽은 저렴한 가격에 책과 굿즈를 받는 ‘가성비’ 좋은 소비였으나, 점차 사회 참여로 연결되는 ‘가치소비’로 나아갔고, 최근엔 취향과 결이 같은 이들을 모으는 ‘팬덤’ 마케팅도 흡수했다. 회원들이 독자를 넘어 팬이 되고 있는 것. 그러면서 독자와 독자, 독자와 출판사 사이의 거리는 점차 좁혀지고 있다. 즉, 진화의 핵심은 ‘연결’이다.
2011년부터 북클럽을 운영해 온 민음사는 이 분야 리더 격이다. 얼마 전 ‘북클럽 대란’을 겪은 민음사는 ‘오픈런’의 대표 사례. 1만 명 정원인 북클럽 가입 첫날, 한꺼번에 5000명이 몰리면서 서버가 한때 다운됐다. ‘민음북클럽’은 평균 재가입률 40%를 넘길 만큼 검증된 상품이지만, 이번에 유독 폭발적이었던 이유는 뭘까. 7000명이 두 달 만에 매진된 지난해와 비교해도, 3000명이 더 늘었는데 마감은 단 2주가 걸렸다. 이시윤 민음사 홍보팀장은 “늘 상시모집을 하다가 지난해 처음 마감 기한을 설정했더니 가입하지 못한 독자가 많았다”면서 “그 경험 때문인지 올해는 ‘선착순’처럼 된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습 효과’로만 볼 수는 없다. 가입비 5만 원의 민음북클럽은 책 3권을 고를 수 있고, 회원만을 위해 제작된 비매품 굿즈를 받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 올해는 ‘잡동산이’라는 소책자가 히트의 주역이다. “‘읽을거리’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독자들의 요구에 맞춰 특별히 제작한 책으로 고전, 소설, 에세이, 인문 등 다양한 글을 매일 조금씩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 팀장은 “직원들로부터 한 땀 한 땀 모은 50여 편의 글이 실렸는데, 워낙 인기가 좋아 회사 직원들도 구하기 힘들 정도”라고 했다.
독자에겐 ‘가성비’ 최고지만 굿즈 제작과 포장, 발송 비용 등을 생각하면 출판사는 남는 게 있을까 의문이다. 이 팀장은 “솔직히 큰 수익은 안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잠재 독자 확보와 독자와의 연결, 소통 등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대형출판사로서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2018년 시작된 문학동네 북클럽도 ‘오픈런’을 부를 정도로 인기다. SNS 등에는 ‘알림설정’을 해두고 오픈하자마자 가입했다는 후기와 웰컴키트 등 책 꾸러미를 뜯어 소개하는 ‘언박싱’ 영상도 적지 않다. 좀처럼 미디어에 나서지 않는 작가 등 문학동네이기에 기획할 수 있는 프리미엄 강연회, 완독 챌린지, 가제본 서평 등 최근 독자의 성향이나 트렌드를 민감하게 파악한 ‘활동’들이 눈에 띈다. 특히, 올해는 북클럽에 가입하면 자동으로 문화소외지역에 책 한 권이 ‘기부’되도록 연결해 독자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하다. 독자에게 사회 참여 효용을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가치 소비’라고 볼 수 있다.
알림 설정하고 오픈런 잘하면 될까. 어떤 북클럽은 돈 주고도 못 들어간다. 마음산책처럼 출판사가 회원을 심사해서 뽑는 곳도 있어서다. 북클럽을 재수, 삼수까지 해서 가입해야 하냐는 ‘볼멘소리’도 있지만, 만족도가 높아 해마다 평균 5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한다. ‘팬덤’시장화하는 출판계를 읽어낸 안목이 돋보인다. 독자를 ‘고르는’ 이유는 두 가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책을 함께 읽으면 ‘사회적 독서’의 기쁨을 더 높일 수 있고 대면 모임도 부담스럽지 않게 참여할 수 있다. 본래 마음 잘 맞는 친구끼리 잘 뭉치지 않나. 가능하면 ‘결’이 비슷한 ‘독서 친구’와 교류할 수 있도록 출판사가 나서서 도와주는 셈. 신청자의 SNS 등을 미리 확인, 책에 대한 진심이 보이는 100명을 엄선한다. 출판사는 독자의 충성도를 관리할 수 있고, 독자는 마치 ‘한정판’ 명품을 구매한 듯한 ‘특별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궁극적인 목적은 ‘출판’에 있다는 게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의 말이다. 정 대표는 “어떤 책이라도 초판 1000권 정도는 항상 소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한 해 100명이지만, 10년이면 1000명이다. 출판인으로서 내고 싶고, 내야 하는 책을 안정적으로 출간하는 일을 그 독자들과 만들어가고 싶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 출판사들은 자체 제작 책이나 유명 저자 강연회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따라가긴 버겁다. 대신, 차별화된 기획력으로 승부한다. 일례로 ‘천년의상상’이 선보인 북클럽은 저자와 콘텐츠를 책과 강의 형태로 제작해 사전에 비용을 확보하고 독자를 한곳에 모은 후 주제별 북클럽을 다시 책으로 내는 방식을 썼다. 그래서 출간한 것이 ‘북클럽 은유’ ‘북클럽 자본’ 등. 책 동네에 신선한 돌풍을 일으킨 이 시리즈는 오는 6월 다음 편을 준비 중이다. 또, B컷 디자인 표지로 특별판을 제작해서 회원들에게 제공하는 출판사 ‘유유’의 북클럽 ‘유유당’도 인기다. 신간을 가장 먼저 회원들에게 제공하며, 좀처럼 들을 기회가 없는 책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기사화해 보내준다. 지난해 ‘책봄클럽’이라는 이름의 북클럽을 시작한 이봄 출판사는 회원들만 입장 가능한 채팅방을 개설, 그 안에서 독자들이 저자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특권’을 부여한다.
출판계 트렌드 뉴스레터를 발행하는 퍼블리랜서의 김세나 대표는 “과거에는 그저 책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였다면, 이제는 ‘특정’ 출판사의 책을 중심으로 모이는 추세다”면서 “취향이 세분화하고 있고, 독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분석했다. 독자들의 변화에 맞춰 진화하는 북클럽에 대해 김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출판사들의 불황 타개 노력이 보다 단단하고 밀접한 ‘독자와의 관계 설정’에 집중되고 있다”면서 “코어 독자층, 즉 ‘팬덤 관리’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출판사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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