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발전을 24시간? ‘우주태양광’이니까!
발사체 재활용 기술로 발사 비용 낮아져 현실화 ‘성큼’
[주간경향] 미국의 SF 소설가 아이작 아시모프는 1941년 단편소설 ‘리즌’(Reason)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우주에서 태양에너지를 수집해 마이크로파 빔으로 지구를 비롯한 여러 행성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우주정거장이 등장한다. 이후 1968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과학자였던 피터 글레이저 박사는 지구 정지궤도(고도 3만6000㎞)에서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에너지를 마이크로파의 형태로 지구상의 수신기지로 무선전송한 후 지상기지에서 이를 다시 전기로 변환해 전력망에 공급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소설 속 내용을 과학적 이론으로 뒷받침해 그는 ‘우주태양광발전의 기원’으로 꼽힌다.
하지만 과거 인공지능이 오랜 암흑기를 거쳤듯이 우주태양광도 수십 년간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이론적으로 가능하지만 우주 공간에 거대한 구조물을 만드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 미국도 NASA를 중심으로 197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초반 크게 3번에 걸쳐 우주태양광 기술을 개발했는데 그때마다 기술이 성숙되지 않았다, 발사 비용이 너무 커서 경제성이 없다 등의 이유로 중단됐다.
최근 상황이 달라졌다. 발사체 재활용 기술이 발전하면서 발사 비용이 크게 낮아졌고, 탄소중립을 위한 재생에너지 확보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우주태양광발전을 구현하기 위한 프로젝트가 미국과 유럽, 일본, 중국과 한국에서 여럿 진행 중이다.
24시간 가동 기저전원으로서의 장점
햇빛은 지표보다 대기권 상단에서 평균적으로 10배 이상 강하다. 대기를 통과하면서 반사되거나 구름과 먼지 등으로 약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정지궤도에서는 도달하는 모든 햇빛을 포착해 365일 24시간 활용할 수 있고, 에너지가 필요한 지구상의 어디든 즉시 전송할 수 있다. 낮과 밤이 바뀌고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변하는 지상의 태양광은 단독으로 24시간 상시 전력을 공급하는 기저전원이 될 수 없다. 배터리나 양수발전 같은 에너지 저장장치가 함께 붙어야 한다. 반면 우주태양광은 원자력발전과 같은 기저전력으로 쓸 수 있고, 그러면서도 원전과 비교해 안전하고 깨끗하다.
우주태양광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지상에 송전할 때 생산한 전기의 10분의 1 정도만 지상에 보낼 수 있어도 원자력발전은 물론 지상의 태양광과 풍력발전에 비해 경제성이 있다고 나온다. 지상 태양광발전에 비해 비싸더라도 안정적이고 연중무휴 24시간 공급된다는 점에서 더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2000년대 중반 한 연구에 따르면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우주태양광의 탄소 투자 회수 기간은 30년 수명 중 6개월~1년이다. 우주로 화물을 나를 때 많은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되지만 짧으면 반년 만에 청정에너지 공급으로 배출량을 상쇄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국형 우주태양광발전 선행 연구를 수행하는 최준민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미래혁신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아직 기술적으로 난관이 있고, 효율도 낮지만 앞으로 기저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재생에너지는 우주태양광발전이다”면서 “위도가 높은 편이고, 국토가 작은 우리나라의 경우 우주태양광발전이 가장 장래성 있는 재생에너지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태양광발전의 개념은 오래전 나왔지만 최근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를 위한 전력 공급원으로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유럽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에너지 위기를 겪었는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해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치를 40%에서 45%로 확대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우주태양광발전도 관심을 받아 유럽우주국(ESA)은 지난해 12월 우주태양광발전의 가능성을 시험할 ‘솔라리스’ 계획을 승인했다. 우주태양광 상용화에 필요한 기술과 비용을 분석하고, 실현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도록 3년의 시간을 부여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25년까지 기초기술을 확보하고, 2035년 시험발전소 운영에 들어간 후 2040년 상용화 단계에 돌입한다. 정지궤도에서 2GW급 전력을 무선전송하는 것이 최종 목표다.
솔라리스 계획을 책임지고 있는 ESA의 과학자인 산제이 비젠드란(Sanjay Vijendran)은 지난 4월 16일 BBC 팟캐스트에서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우주가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데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한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우주기반 태양광발전 개념을 재발견했다”면서 “때론 황당해 보이기도 하지만 개념적으로는 매우 간단하고 직관적이다”고 말했다.
우주태양광발전을 위한 핵심 기술은 무선전력전송과 태양광 전지판과 안테나 등 우주 구조물의 조립과 제어다. 여기에 발사 비용을 줄이기 위한 로켓 재사용 기술과 태양광 패널을 하나의 큰 구조물로 조립할 수 있는 자율로봇 기술도 필수적이다. 기가와트(GW) 규모로 발전하려면 우주 공간에서 1~2㎞ 사이로 태양광 전지판을 키워야 한다. 초대형 위성 몇 개 혹은 작은 위성 여러 개를 분산 배치해 하나의 큰 구조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산제이는 “모든 구조와 로봇 같은 필요 기술을 최대한 표준화해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면 비용은 지상의 태양광과 풍력만큼 저렴하진 않겠지만 원자력발전과는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과거 우주태양광의 실현가능성이 부정적으로 평가되던 때는 1㎏당 발사 비용이 5만달러에 육박했다. 지금은 스페이스X의 팰컨헤비 정도면 1㎏당 1400달러까지 내려간다. 100명의 인원을 태우고 100~150t의 화물을 우주로 보낼 수 있는 스페이스X의 재활용 로켓 스타십이 성공적으로 개발될 경우 이 가격은 더 떨어질 수 있다.
최준민 책임연구원은 “1㎏당 발사 비용이 600달러 밑으로 떨어지고, 무선전력 송신의 ‘앤드 투 앤드’ 효율이 15%(우주태양광발전소에서 만든 에너지 중 지상의 전력망으로 흘러가는 비율)에 도달한다면 원자력발전소와 가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9년 항우연의 자료에 따르면 2GW 규모의 우주태양광을 30년 가동하면 전기요금은 1kWh(킬로와트시)당 34원 수준으로 원전의 전력 구입단가인 1kWh당 72원보다 낮아진다.
공상과학 벗어나 시제품 시험 단계 진입
미국의 경우 나사의 제트추진연구소와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요소 기술을 개발 중이다. 지난해 1월 3일에는 칼텍 연구진이 제작한 무게 50㎏의 ‘우주태양광발전시제품’(SSPD·Space Solar Power Demonstrator)이 성공적으로 발사됐다. 현재 지상 400㎞ 높이의 지구 저궤도에서 우주태양광 기술을 실험하고 있다. 모듈 형태의 발전소 설계 기술과 우주방사선으로 가득한 우주에서도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태양전지 셀 기술, 무선전력 전송에 필요한 정밀 제어 기술 등이 연구되고 있다.
우주태양광 기술은 군사 목적으로도 주목받는다. 연료 보급이 어려운 최전방에 에너지를 전송하는 용도로 우주태양광 기술을 활용할 수 있어서다. 무선전력전송 기술을 연구하는 이상화 한국전기연구원 전력ICT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미군이 과거 아프간 전쟁을 분석해보니 작전 중 전사자보다 전방에 유류를 공급하다 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면서 “그때부터 해군과 공군을 중심으로 위성에서 전방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기초 연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영국과 일본도 우주태양광 개발에 적극적이다. 영국 정부는 우주태양광 기술의 타당성 조사에 자금을 지원한 데 이어 지난해 초 업계와 학계가 협력해 진행하는 우주에너지 이니셔티브(SEI) 등에 300만파운드의 자금을 지원했다. SEI는 카시오페이아(Cassiopeia)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초대형 위성군을 지구 궤도에 배치해 우주태양광발전을 구현할 계획이다. 1970년대 미국을 뒤쫓아 우주태양광 기술개발에 뛰어든 일본은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와 경제산업성 산하의 재팬스페이스시스템즈 등 두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꾸준히 연구를 벌이고 있다. 일본은 무선전력송신을 위한 전파규제를 가장 앞서 완화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는 2050년 GW급 우주태양광 상용화를 목표로 한다. 그러나 국가적 차원에서 2050년 GW 규모의 우주태양광발전소 건설을 선언한 나라는 중국이 유일하다. 중국은 2028년 첫 시연기를 궤도에 올려놓은 후 2035년 ㎾급 혹은 ㎽급 상용화를 예상하고 있다. 최 연구원은 “중국은 달의 뒷면을 최초로 탐사하는 등 우주 분야에서 주도권을 쥐려 한다”면서 “우주태양광도 관심 있게 보고 있어서 최초 상용화 국가라는 타이틀에 욕심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18년 제3차 우주개발진흥계획에 우주태양광발전을 미래 게임체인저 기술로 명시했지만, 아직 기초 연구에만 예산이 책정된 상태다. 전기연구원은 2017년부터 2025년까지 장거리 무선전력전송 기술개발에 약 112억원의 예산을 받아 꾸준히 무선전력전송기술을 연구 중이다. 50m 전방의 움직이는 표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해 전력을 전달할 수 있는 4.8㎾급 무선전력전송 시스템을 개발한 게 주요 성과다. 참고로 솔라리스 연구진은 지난해 9월 에어버스의 연구진과 함께 2㎾의 전력을 36m 거리까지 무선 전송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이상화 책임연구원은 “송수신 시스템은 확장 가능한 모듈 형태라 전송거리와 필요전력에 따라 다양한 규모로 활용이 가능하다. 시스템의 출력과 변환효율, 제어정밀도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해외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주태양광 상용화 단계라면 수십 미터보다 훨씬 더 먼 거리인 정지궤도 3만6000㎞에서 더 큰 전력을 무선으로 보내야 한다. 보내는 쪽과 받는 쪽의 안테나 사이즈를 늘리면 가능한데, GW급의 경우 우주에서 마이크로파 빔을 쏴주는 안테나의 크기는 1㎞, 렉테나(rectenna)라고 불리는 지상안테나의 크기는 직경 5~10㎞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땅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사막이 유력한 지상안테나 위치로 거론된다. 독일에선 렉테나 밑에서 농사를 짓는 모델도 검토 중이다. 국내에선 바다 위나 비무장지대가 적지라는 의견이 나온다.
국가 차원의 우주태양광 예산은 없지만, 항우연과 전기연구원이 자체 예산을 활용해 공동으로 한국형 우주태양광발전 선행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누리호를 활용해 저궤도에서 무선전력전송을 실증하는 사업이다. 전기연구원에서 무선전력전송 기술을 개발하고, 항우연에서 위성시스템 개발을 맡고 있다. 최 연구원은 “2030년이 되기 전 우리가 제안한 위성 간 무선전력전송을 시연하고, 2030년대 중반쯤 저궤도 위성에서 지상으로 전력전송을 시험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2040년이 되기 전 ㎾급 정도의 전력을 무선으로 지상에 보내고 2040년대 중반에는 ㎽급, 2050년대 중반에는 GW급 정도를 보낸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주 기술과 관련해 화학연료를 대신할 수 있는 추진 기술개발도 필요하다. 스페이스X의 재래식 발사체를 사용해 저궤도에서 조립한 후 이온 추진 등을 이용해 정지궤도로 구조물을 올리는 방식이다. 최 연구원은 “제논과 크립톤 등의 연료를 이용해 플라스마를 만들어서 추진하는 데 폭발적 힘은 없지만 효율이 좋다”고 말했다.
달 탐사와 무선전력전송
우주태양광 상용화를 위해서는 발사 비용을 낮추는 것과 함께 무선전송의 효율을 높이는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주태양광발전의 단점은 여러 차례 에너지 변환 과정을 거치면서 효율이 떨어지는 것인데 현재의 ‘앤드 투 앤드’ 효율은 1%로 정도로 매우 낮다. 최준민 연구원은 “무선전력전송의 효율을 높이려면 태양전지 셀의 효율을 높여야 하고, 위성과 지상 안테나를 포인팅하는 것도 정확해야 한다”면서 “무선전력전송이 가장 중요한 병목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예산과 인력이 제한된 상황에서 일차적으로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무선전력전송 기술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금도 휴대전화 무선충전에 쓰는 자기유도 방식과 주차 상태의 전기차를 충전할 수 있는 공진 방식 등이 활용되고 있지만 이런 전자기유도 방식과 달리 우주와 지상 간의 원거리에서 무선으로 충전하려면 마이크로파를 이용한 전파 방사 방식의 무선전력 전송이 필요하다. 이런 원거리 무선전력전송 기술이 상용화되면 일상생활에서도 응용할 수 있는 분야가 많다. 앞서 언급한 군사용만이 아니라 지진이나 화재 등 재난 지역에서 비상전원을 공급할 수 있고,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대형 구조물의 센서 등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각국이 우주태양광에 관심을 갖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달 탐사를 비롯해 우주 자원 개발에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화 연구원은 “달에 가는 이유는 핵융합에 필요한 중수소와 지구에 없는 희소 광물을 캐기 위함인데, 이때 달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우주태양광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모두가 하고 있고 그런 전제 하에 달탐사가 준비되고 있다”면서 “달 궤도에 우주태양광 위성을 띄워, 해가 들지 않는 분화구 안쪽의 기지에 무선 전송하는 그리드 계획도 잡혀 있다”고 설명했다.
GW급 우주태양광의 상용화 시점은 2050년이다. 각국이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밝힌 해와 같다. 아직 천문학적 비용이 들고, 기술도 성숙하지 못한 우주태양광보다 지금 있는 재생에너지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물리적·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 데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우주태양광 개발에 나서는 상황이라 예상보다 빨리 상용화 시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 ESA는 발사체 재활용 기술이나 로봇 기술이 10년 내에 성숙기에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최준민 연구원은 “한국의 상위 4개 기업이 쓰는 전력이 국내 재생에너지 생산량과 맞먹는 상황에서 앞으로 재생에너지 확보가 안 되면 국내 글로벌 기업이 재생에너지 확보가 쉬운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며 “우주태양광을 이용한 재생에너지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주태양광은 워낙 규모가 커서 아직은 국제 협조가 잘되지만, 하드웨어로 구현될 땐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만의 핵심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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