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경 창간둥이 이해인 “보는 사람들에게 행복 안기는 스케이터 되고 싶어요”[창간특집]
한국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간판’ 이해인(18·세화여고)은 최근 자신의 달라진 유명세를 느끼고 있다.
이해인은 최근 스포츠경향 창간 18주년을 맞아 가진 인터뷰에서 “영화를 보러 갔는데 어떤 분들이 ‘이해인 선수 아니세요?’라고 해서 저도 모르게 당황해서 ‘아니요’라고 할 뻔했어요”라며 까르르 웃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석촌 호수에 벚꽃 구경을 하러 갔는데 몇몇 팬들이 알아보고 ‘사진을 찍어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이해인은 “어떻게 알아보시는지 신기하다”고 말했다.
본인이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이해인의 이름은 널리 알려졌다. 지난 시즌을 통해 세계 피겨계에 확실히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키며 국내 팬들도 크게 늘었다.
2022~2023시즌은 이해인의 피겨 인생에서 잊지 못할 시즌이었다. 이해인은 지난 2월 중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4대륙 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 이후 14년 만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3월말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걸며 2013년 김연아(당시 여자 싱글 금메달) 이후 10년 만에 포디움에 올랐다. 4월 중순 열린 피겨 국가대항전인 팀 트로피에서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힘을 합쳐 준우승을 이끌어냈다. 이 대회에서 이해인은 여자 싱글에서 전체 1위를 거머쥐었다. 김연아 이후 나온 많은 피겨 유망주들 사이에 이제 이해인의 이름이 우뚝 자리잡았다.
지난달 17일 입국한 이해인은 18일 단 하루만 쉰 뒤 태릉 선수촌에 바로 스케이트를 타러 갔다. 그는 “쉬면 좋긴 한데 다시 타게 될 때 너무 힘들고, 그냥 스케이트를 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해인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취미로 피겨를 시작한 뒤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처음에는 걷는 것보다 조금 빨리 나아가는 느낌이 좋아 스케이트 날에 몸을 맡겼던 그는 이제 스케이팅 자체를 즐긴다.
스포츠경향과 같은 2005년생인 이해인은 곧 스무 살을 앞두고 있다. “이제 늙었다”라며 귀여운 투정을 부린 이해인은 주니어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보다 많이 발전했다. 특히 멘털적으로 굉장한 발전이 있는 것 같아서 너무 기쁘다. 건강한 멘털로 나 자신을 너무 옭아매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사실 이해인이 지난 시즌 이런 결과를 얻기 전까지 많은 시련이 있었다.
가장 큰 목표였던 2020 베이징 동계올림픽 선발전에서 탈락해 올림픽 무대에 오르지 못한 아픔이 컸다. 지난 시즌도 초반까지만 해도 기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지난해 10월 초 열린 챌린저 시리즈에서는 세 차례 엉덩방아를 찧어 동메달에 머물렀다. ISU 그랑프리 시리즈에서는 두 차례 출전했으나 모두 4위에 그치면서 메달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이해인은 “챌린저 대회에서는 ‘그럴 수 있다. 첫 대회니까 만들어가면 된다’라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에도 잘하지 못했다. 세 번째 대회에서는 독감에 걸렸다. 줄넘기 한 번 하고 코 풀고 하다 보니 대회를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랑프리 때에는 눈물을 왈칵 쏟았다. 이해인은 “마지막 그랑프리 대회를 앞두고는 점프 구성도 바꿔보고 너무 잘하고 싶어서 스텝도 수정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해서 끝나고 호텔 들어와서 엄청 울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부진이 계속 겹치자 긍정적인 멘털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제 안 바뀔 것이다’, ‘다시 올라갈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지만 이해인은 “그래도 후회하기 싫으니까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 보자”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덕분에 이해인은 시즌 막판 상승세를 타며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 이겨낸 모든 과정을 소중하게 여겼다. 이해인은 “포기하지 않은 덕분에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그랑프리 끝나고 다 놔버렸으면 후회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행복’보다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 자신을 사랑하게 되어서 기쁘다”라며 미소지었다.
이해인은 항상 삶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려 노력한다. 부모님의 영향도 있다. 그는 “아버지가 항상 ‘삶의 감사함을 느끼고 재미있게 살아라’고 말씀하시곤 한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이해인은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간다. 또래 친구들처럼 아이돌 노래를 즐겨듣는 이해인은 뉴진스, 아이브 등 또래 걸그룹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자신감을 북돋곤 한다. 이해인은 “K팝 노래를 들으면 신나지 않나”라며 눈을 반짝였다. 피겨 선수들은 대회에 참가할 때 메이크업을 직접 한다. 이해인은 “아이돌 무대를 보면서 ‘글리터가 예쁘다, 참고해야겠다’ 이런 생각도 한다”고 수줍게 말했다.
독서도 틈 날 때마다 한다.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라는 책을 즐겨 본다. 매일 행복을 찾아다니는 이해인의 가치관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떻게 하면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20년에 방영한 ‘구미호뎐’ 드라마를 보면서 배우 김범에게 푹 빠졌다는 이해인은 “그 해에는 사실 부상도 안 낫고 좀 힘들었다. 그래서 최악의 한 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는데 드라마에서 김범 배우님을 봤다. 영상 몇 개를 찾아보면서 저분도 열심히 저렇게 사는데 나도 희망을 잃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한층 신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자신의 이런 소소한 즐거움을 은반 위에서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4대륙 선수권을 마치자마자 ‘엄마가 좋아하겠다’라고 생각했다. 어머니가 평소 차분한 성격인데 귀국했을 때 행복해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렇게까지 행복해하는 모습을 처음 봐서 나도 정말 행복했다”라고 떠올렸다.
앞으로 이해인이 행복한 스케이팅을 펼쳐보일 곳은 많다. 찰나의 휴식을 취한 이해인은 바로 다음 시즌을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새 안무도 짜야하고 훈련도 돌입한다. 3회전 점프 장착 과제도 해결할 계획이다.
이해인은 “내가 목표를 뚜렷하게 말한 적이 한 번도 없다”라며 “시니어 데뷔를 한 뒤에 그랑프리 대회 메달이 없다. 이번만큼은 (예정한 대회)두 번 다 메달을 당당하게 따서 파이널에도 출전해보고 싶다. 4대륙 세계선수권에 나가서 즐겁게 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2026년 열리는 이탈리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도 정조준하고 있다. 이해인은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그 누구보다 행복해 보일 수 있게 하겠다”라며 “피겨 선수로서의 즐거운 생활을 이어가고 싶다”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김하진 기자 h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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