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는 게 편? 구소련 국가들, 제재 중 러시아에 수출 폭증

구 소련연방 중 하나였던 키르기스스탄에서 소련의 제2차 세계대전 승전을 기념하는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EPA=연합뉴스

구(舊) 소비에트연방 소속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금수조치를 회피하는 통로가 된 것으로 드러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 시각) 유엔 통계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아르메니아 ▲조지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의 지난해 러시아 수출은 약 50% 급증한 150억달러(약 20조1000억원)에 달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같은 기간 이들 국가가 미국과 유럽연합(EU)에서 수입하는 상품의 총액도 146억달러(약 19조6000억원)에서 243억달러로 크게 늘었다. 이들 국가들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에 강력한 금수 조치를 취한 미국과 유럽 등 서방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해 러시아로 넘기는 중계무역이 활발해졌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난 1991년 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 연방의 일원이었던 이들 국가는 지리적으로 러시아 국경에 맞닿아있거나, 지리적으로 가깝다.

개별 상품의 무역 현황을 분석하면 금수 회피 목적의 수출입이라는 정황이 더욱 뚜렷해진다.

아르메니아는 지난해 미국과 EU로부터 850만달러 상당의 집적회로를 수입했는데, 이는 전년도인 2021년 집적회로 수입액은 53만달러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갑자기 집적회로 수입이 늘어난 셈이다.

아르메니아는 동시에 지난해 1300만달러 상당의 집적회로를 러시아에 판매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2021년에는 러시아에 대한 집적회로 수출이 사실상 전무했기에, 미국과 EU로부터 수입한 집적회로를 금수 제재를 당하고 있는 러시아에게 중계수익을 더해 판매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

WSJ는 비슷한 사례가 키르기스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도 발견된다고 전했다. 키르기스스탄은 지난해 미국과 EU로부터 레이저 관련 장비 수입이 급증했고, 우즈베키스탄은 전기 점검 장비 수입이 늘어났다. 이들 국가가 미국과 EU에서 수입한 뒤 러시아에 되파는 물품들은 전쟁에 사용되는 각종 장비 제조·보수·유지에 사용될 수 있다.

미국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는 러시아에 대한 국제사회의 금수조치가 준수되고 있는지 세심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경고성 발언을 했다. EU의 러시아 제재 분야를 총괄하는 데이비드 오설리번 특사도 최근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지목한 뒤 금수 회피 무역을 차단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