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포럼] 전세사기, 숨기는 자가 범인이다

박휘영(법무법인 휘명) 변호사 2023. 5. 1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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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특별법 발목잡는 정부여당 규탄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사망한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뉴스1

(부산ㆍ경남=뉴스1) 박휘영(법무법인 휘명) 변호사 = 전세사기, 역전세, 깡통전세로 인한 피해가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인천 미추홀구 '건축왕', 서울 양천구 '빌라왕' 사건에 이어 부산 서면, 구리, 화성 동탄 등 전국 각지에서 전세보증금을 잃고 기존 집에서 내쫓길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에 정부와 국회에서도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로 일하다 보니,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피해경위와 현재 처한 어려움을 듣게 된다. 전세사기로 인해 나와 내 가족의 가장 기본적인 주거생활이 뒤흔들리고, '전세보증금'으로 대변되는 전 재산이 빼앗겼다는 사실에 피해자들은 크게 절망하고 분노한다. 피해자들이 하루 빨리 주거와 피해금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지만, 주어진 법 제도를 활용하여 구제받는 일은 오랜 시간과 고통감내가 필요한 것이라 안타까움이 크다.

전세사기는 케이스가 다양해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어 보인다(부동산 호경기에 소위 갭 투자로 수 개의 임대주택을 매입하였다가 부동산 불경기를 맞아 역전세를 맞이한 케이스는 제외한다).

첫째는 건축물 공급단계(토지를 매입하고 그 토지 위에 직접 건물을 지어 분양 임대하는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발생한 유형이다. 부동산개발사업을 하면서 무리한 사업 수행과 엉성한 자금 조달로 손해가 예상될 때, 개발업자는 사업 비용(토지매입비, 공사비, 필수사업비 등)을 어떻게든 마련하려 애쓰게 된다. 그 과정에서 각종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기도 하지만, 결국엔 수분양자의 분양대금,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으로 들어간 사업비용을 메꾸려 한다.

그래서 '선납할인'이라며 정해진 계좌가 아닌 다른 계좌로 분양대금을 납입받고, 허위 과장 광고하여 분양하고, 해지한 물건의 분양대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이중분양을 하여 두 번 분양대금을 지급받기도 한다. 회사 임직원 명의로 가짜 수분양자를 만든 뒤 담보대출을 받아 사업자금으로 사용하고 부도를 내는 경우도 있다(소위 '직원자서' 문제).

이렇게 공급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쌓인 건축물이 '분양시장'에 나오면 '분양사기'가 되고, '전세시장'에 나오면 '전세사기'가 되는 것이다. 앞서 예로 든 '직원자서' 부동산을 생각해보자. 부동산개발회사가 꾸역꾸역 준공을 내 임직원 앞으로 소유권 이전등기를 한 뒤 임차인에게 전세를 주고 부도 폐업을 맞게 되면, 임직원 역시 자력이 없기에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임직원 대신 신용불량자, 분양대행업자를 수분양자 내지 가짜 소유자로 내세워 전세보증금을 받으면 인천 미추홀구의 건축왕 사례가 된다.

두 번째 유형은, 소위 부동산 컨설팅업체가 조직적, 계획적으로 사기를 친 케이스다. 공급단계에서 부실은 없지만, 처음부터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을 노리고 신축빌라의 시세와 같거나 높은 전세보증금을 속여 받거나 다가구주택의 담보가치를 오인토록 하여 돌려주지 못할 보증금을 받고 잠적하는 것이다.

유형이 어떠하건 전세사기 피해로 고통받는 피해자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의 부동산 공급과 유통시스템을 정비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수중에 있는 현금만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기에, 부동산 공급과 유통시스템은 부동산과 연계된 금융시스템도 함께 정비해야 한다. 수분양자는 중도금과 잔금대출을 받아 분양대금을 마련하고, 임차인은 전세보증금대출을 받고 대출받은 전세보증금을 다시 임대인에게 빌려준다는 점에서 부동산 공급과 유통은 금융시스템과도 맞닿아 있다.

그런 관점에서 금융시장처럼 부동산 공급, 유통시장도 '중요한 정보의 완전한 공시'를 목표로 시스템을 정비했으면 한다. 사기죄는 사기꾼이 가진 중요한 정보를 모르고 오인할 때 피해를 입는다. 따라서 부동산개발업자(건설회사와 시행사 측)와 금융업자(대출기관) 및 유통자(매도인, 임대인)가 독점하고 있는 정보 중 부동산거래에 있어 중요한 사항들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도록 공개하고, 불완전하게 공개하거나 허위로 공개할 경우 엄중한 법적 규제를 가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부동산 거래에 있어 흔히 발생하고 피해가 큰 사기적 행위 내지 불공정 거래 유형을 정하여 이러한 거래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까지 동원해 엄단한다면 부동산 분양사기, 전세사기로 고통받는 피해는 크게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전세사기 발생원인을 두고 옥신각신하지만, 전세사기는 '숨기는 자가 범인'이다. 부동산 공급과 유통시장에 있어 거래 과정이 투명해지고, 중요한 정보가 완전히 공개된다면, 우리의 '주거생활'을 두고 사기치는 자가 누구인지, 누가 책임져야 할지는 더욱 분명해 질 수 있을 것이다.

박휘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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