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광 대반전’ 쓴 이우현…반도체·배터리 소재 확 키운다
신사업 날개 달고 영업익 1조 클럽 목전
[비즈니스 포커스]
“OCI는 현재 창사 이후 가장 큰 변화와 도전을 앞두고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기업을 만들겠다.”
OCI가 지주회사를 정식 출범시키며 3세 경영인인 이우현 회장 체제로 본격 전환했다. OCI의 인적 분할을 통해 지주회사 OCI홀딩스와 화학회사 OCI가 5월 2일 정식 출범했다. 이 회장은 OCI홀딩스 회장으로 승진했다.
앞으로 존속법인 OCI홀딩스는 태양광용 폴리실리콘과 에너지솔루션 등 태양광 사업과 도시 개발 사업을, 신설 법인 OCI는 반도체와 배터리 소재 등 첨단 화학 소재 사업을 전담한다.
석유화학 한 우물에서…첨단 소재로 ‘제2 창업’
이 회장은 마지막 개성상인으로 알려진 고 송암 이회림 동양제철화학(현 OCI) 창업자의 손자이자 고 이수영 OCI 선대 회장의 장남이다. 이 창업자는 개성에서 태어나 신용·검소·성실 3대 덕목을 중시하는 개성상인의 길을 걸으며 화학 산업의 기초 재료인 소다회를 국산화해 한국 화학 산업의 기초를 닦았다.
1970년대부터 석탄 화학 업체로 한 우물만 파 온 OCI그룹은 이 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뒤부터 사업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주력인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사업의 실적 변동성을 해소하기 위해 화학·에너지·바이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
이 회장은 OCI의 핵심 사업을 석탄 화학에서 태양광으로 전환하는 등 성공적인 체질 개선을 이뤄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목할 것은 중국이 장악한 태양광 시장에서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OCI는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판매 가격 상승과 판매량 증가에 힘입어 2022년 1조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거뒀다. 2012년 이후 역대 최대 실적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중국의 저가 공세에 못 이겨 860억원의 영업 손실을 내며 군산 공장을 가동 중단하고 인력 구조 조정에 나섰던 OCI였다. OCI는 중국의 공세에 밀려 2018년 4분기부터 2020년 2분기까지 7개 분기 연속 영업 손실을 냈다.
태양광용 폴리실리콘 주력 생산 기지를 군산에서 원가 경쟁력이 높은 말레이시아로 옮기며 버틴 결과 분위기가 180도 반전된 것이다. 2023년 전망도 밝다. 2023년 1분기에는 매출액 7195억원, 영업이익 203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9%, 80% 급증했다. 올해 ‘영업익 1조 클럽’ 재진입도 유력한 것으로 평가된다.
미래 먹거리 발굴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첨단 소재와 바이오 등 신사업 육성에 공들이고 있다. 2022년 2월 부광약품에 약 1461억원을 투자해 제약·바이오 사업에 진출했고 반도체·배터리 소재 등 첨단 화학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OCI는 그동안 전체 매출의 약 22%에 불과한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을 중심으로 기업 가치가 평가돼 다른 사업이 상대적으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 회장은 인적 분할을 통해 ‘제2 창업’을 한다는 각오로 화학 사업 가치 높이기에 주력할 방침이다.
IRA로 새로운 기회 찾아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이후 OCI는 비중국산 폴리실리콘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고 있다. IRA 발효와 유럽연합(EU)의 핵심 원자재법(CRMA) 도입으로 비중국산 폴리실리콘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비중국산 폴리실리콘 생산 기업은 한국의 OCI와 독일의 바커가 유일하다.
중국 업체들은 미국의 ‘위구르 강제 노동 방지법(UFLPA)’을 회피해 미국 내 판매를 확대하기 위해선 비중국 폴리실리콘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비중국산 폴리실리콘 생산 비율은 2020년 17.0%에서 2025년 6.6%까지 하락할 것으로 보여 업계에선 OCI가 비중국산 폴리실리콘 수요 증가의 최대 수혜주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OCI는 말레이시아 추가 증설을 통해 비중국산 폴리실리콘 공급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말레이시아 폴리실리콘 공장과 관련해 2024년부터 1만 톤씩 증설할 계획”이라면서 “미국 IRA 발표 및 유럽 공급망 실사법 도입 등으로 비중국산 폴리실리콘 수요 증가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OCI는 IRA를 기회 삼아 미국 내 모듈 생산 및 태양광 발전 사업 등 미국 태양광 다운스트림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현지 생산 설비 투자에는 신중한 모습이다. 이 회장은 최근 태양광용 폴리실리콘과 관련해 미국 투자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IRA 보조금만으로는 미국에서 공장을 새로 짓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13년째 IR 직접 챙겨
이 회장은 서강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금융·마케팅 분야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5년 OCI에 합류해 전략기획본부·사업총괄부사장(CMO)·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동양제철화학그룹이 OCI그룹으로 이름을 바꾼 뒤 OCI 사업총괄부사장과 사장을 지냈고 부회장을 거쳐 2023년 5월 OCI홀딩스 회장에 취임했다.
미국 인터내셔널 로 머티리얼, BT울펜숀, 홍콩 CSFB, 서울Z파트너스 등 외국계 금융회사에서 근무하며 인수·합병(M&A) 분야에서도 전문성을 쌓았다. 한국중공업(두산에너빌리티)의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 발전부문 인수, 브리지스톤의 금호타이어 중국 공장 M&A 등에도 관여했다.
재무 전문가로 기업 설명회(IR) 때마다 직접 나서 경영 상황 등을 설명하며 주주들과 소통한다. 언론과 투자자의 질문을 피하는 법이 없다. 재계 총수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2011년에는 IR 활동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베스트 IRO’ 상을 받기도 했다.
낮은 지분율은 해결 과제
이 회장은 OCI 지분 5.04%를 보유하고 있는 3대 주주다. 숙부인 이화영 유니드 회장(5.43%), 이복영 SGC에너지 회장(5.40%)보다 지분이 적다. 별세한 이수영 회장의 지분(10.92%)을 상속받았던 2018년만 해도 이 회장은 6.12%의 지분으로 최대 주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지만 상속세를 납부하는 과정에서 1.08%를 현금화하느라 보유 지분이 줄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이번 인적 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출범의 진짜 목적이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와 계열 분리에 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인적 분할을 하면 기존 보유 지분만큼 존속 법인과 신설 법인의 지분을 배분받게 돼 이 회장이 낮은 지분율을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OCI그룹은 공정거래법상 하나의 그룹으로 묶여 있지만 실제로는 2세 이수영·이복영·이화영 삼형제가 계열 분리해 독자 경영을 벌여 왔다. 이 가운데 이복영 회장이 이끌던 삼광글라스가 2020년 SGC에너지로 재탄생하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OCI·SGC에너지·유니드 계열사들은 사실상 별개의 독립 경영 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공정거래법상으로는 계열 분리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유는 OCI 기업집단 소속 기업들 간 내부 거래 관계 때문으로 추정된다.
첫 외국인 총수…조현준·허용수 등과 절친
이 회장은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OCI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됐다. 이 회장은 미국 국적이 뒤늦게 확인되면서 2023년 한국 대기업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총수로 지정됐다. 1968년 미국에서 태어난 이 회장은 이중 국적자로 지내 왔지만 2000년 한국 국적을 상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군대는 만기 전역했다.
이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허용수 GS에너지 사장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식 한국앤컴퍼니그룹 고문과도 ‘절친’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1968년생 동갑내기 3세 경영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최태원 SK 회장과는 OCI머티리얼즈(현 SK머티리얼즈)를 SK그룹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인연을 맺었다. 이 회장은 2018년 부친인 이수영 전 회장의 지분 상속에 따른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OCI 지분 일부를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는데 당시 처분한 지분을 SK실트론이 사들였다.
웨이퍼 제조 업체인 SK실트론은 OCI와의 사업 협력 강화를 위해 지분을 인수했다고 밝혔지만 재계에선 SK실트론의 지분 취득이 사업적으로 협력 관계를 강화하는 것 이상으로 우호 지분으로서 ‘백기사’ 역할을 할 것으로 봤다. OCI는 SK실트론과 2028년까지 약 6000억원 규모의 반도체용 폴리실리콘 장기 공급 계약도 체결했다.
재벌가와만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소탈한 성격에 예술에 조예가 깊어 사진작가로도 활동하며 의사·광고인 등 일반인들과 함께 아마추어 사진전을 종종 열고 있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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