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형 "젊을 때도, 지금도 꿈…연극은 제 연기의 근본"[문화人터뷰]

강진아 기자 2023. 5. 16.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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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7년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오는 원로 배우 박근형이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5.16. mangusta@newsis.com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무대는 젊었을 땐 꿈이었죠. 노년이 된 지금은 희망이에요.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꿈을 가져야 하잖아요. 이 꿈을 꽉 붙들고 매달려야죠."

올해 연기 인생 60주년을 맞은 배우 박근형(83)이 7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오른다. 오는 21일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개막하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묵직한 연기를 선사한다.

15일 서울 종로구 이화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항상 연극을 향한 향수와 그리움이 있었다"며 "지금까지 쌓아온 연기 역량을 이번 무대에서 다 발휘해 보자는 생각으로 용감하게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3시간이나 되는 극을 혼신의 힘을 다해 뛸 수 있을까, 체력적으로 걱정했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아직 괜찮아요. 활발하게 뛰어다니고 있죠."

1963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고 수많은 드라마, 영화로 친숙한 그의 토대는 사실 연극이다. 1958년부터 연극 무대에 오롯이 선 건 7~8년 정도이지만, 그때의 열정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휘문고 연극부와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시작으로 무대에 뛰어들었고, 1964년부터 3년간 국립극단 간판 배우로 활동했다. 그 시절을 '배우 인생의 꽃'으로 여전히 꼽는 그는 "모든 연기의 근본은 무대 연기"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7년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오는 원로 배우 박근형이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5.16. mangusta@newsis.com

"다른 극단 연습에 기웃거리며 역할을 얻기도 하고, 여러 장르의 연극을 많이 했어요. 한 해에 연극을 11편까지 한 적도 있죠. 그때 한 연극 편수는 굉장할 거예요. 그렇게 열정적으로 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방송으로 옮기게 됐죠.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1968년엔 영화에 데뷔했고 1974년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어요. 하지만 이 모든 건 연극에서 비롯됐죠."

재벌이나 기업 회장을 주로 맡아 '회장님 전문 배우'로도 불리는 그가 이번엔 평범한 회사원의 얼굴을 한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 경제 대공황의 급격한 변화 속에 30년간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가장 '윌리 로먼'의 이야기를 다룬다. 직업을 잃고 혼란을 겪으며 무너져 가는 윌리와 이를 지켜보는 가족의 심리를 세밀하게 그린다.

그는 "사실 회장 역보다는 소외돼 가는 인간상이나 문학 작품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바로 이 희곡에 끌린 이유다.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작품이었어요. 소멸해 가는 인간상을 그리는데, 인간의 내적인 면을 깊숙이 다루는 게 표현하기엔 어렵지만 매우 흥미롭죠. 한 인간과 가족이 무너져 가는 현상과 사회 구조, 빈부 격차와 인간성 회복 등 다양한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에요."

박근형은 극에서 나이를 넘나든다. 현실과 스무살 가량 차이 나는 60대 윌리로 분하는 건 물론, 그의 망상을 통해 과거와 현실을 오간다.

"세 가지 목소리로 구분했어요. 망상하며 중얼거릴 땐 늙은이처럼 표현하고, 머릿속 과거로 흘러가면 30대 후반 젊은이가 돼죠. 그리고 현실세계로 돌아오면 60대의 윌리가 돼요. 2016년에 한 연극 '아버지'에서 치매를 앓는 아버지 역을 연기했는데,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과거에 집착하는 면이 비슷하기도 해요. 걸음걸이도 변화를 줬죠."

[서울=뉴시스]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 출연하는 배우 박근형. (사진=쇼앤텔플레이, 와이엠스토리 제공) 2023.05.16.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배우 생활 초창기 연극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도 사람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다. 국립극장 희곡 공모 당선작인 천승세 작가의 '만선'(1964년), 이재현 작가의 '바꼬지'(1965년), 윤조병 작가의 '이끼 낀 고향에 돌아오다'(1967년) 등을 꼽았다.(당시 국립극단은 국립극장 전속단체였다)

"창작극을 좋아해요. '바꼬지'는 작고한 여운계 배우와 함께했는데, 곧 헐리는 집을 갖고 있는 노부부가 이상향을 찾아가는 이야기죠. '만선'도 마음에 와닿아요. 웅장한 사건보다는 사람을 표현한 작품들이라 좋아요."

그는 창작극 개발과 인재 육성 등 국립극단의 역할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냈다. "K드라마, K팝을 내세우며 우리 것이 세계적이라고 하는데, 밑바탕이 탄탄하지 않다. (연극 분야 정부 지원이) 너무 인색하다"고 지적했다.

"이 작품만 봐도 알 수 있죠. 현대 희곡의 거장 아서 밀러가 탄생하고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잖아요. 우리는 이런 창작극이 나오질 않아 아쉬워요. 상금도 많이 내걸고, 문학인 희곡을 크게 키웠으면 좋겠어요. 국립극단을 활성화해서 창작극을 제대로 보여주고, 인재를 더 많이 양성해야죠. 단기간 비정규직이 아니라, 단원을 60여명씩 뽑아서 장기간 키워 밑거름을 만들어야죠. 연극계에 나오는 수많은 청년들이 갈 길을 넓혀줘야 하지 않겠어요?"

[서울=뉴시스] 김선웅 기자 =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7년만에 연극 무대에 돌아오는 원로 배우 박근형이 1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갖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2023.05.16. mangusta@newsis.com


여든이 넘은 현재도 '도전정신'이 뛰어나다고 자신한 그는 "수십 가지 역할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고 빙긋이 웃었다.

TV 속 주연부터 단역까지 다른 배우들의 역할을 보면서 '내가 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해보며 역할을 창조해낸다. 그런 그가 지금 욕심나는 작품은 희극이라고 했다. 최근 나문희·김영옥과 함께 찍은 영화 '소풍'(가제)에선 감초 역할을 했다고 자랑했다. 연극 작품은 그리스(희랍) 비극을 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젊었을 땐 그저 열심히 했는데, 이번에 연극을 하며 느꼈어요. 풍부한 인생 경험이 필요한 역할들이 많더라고요. 연극은 나이 들어서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잘 마치고 자신감이 붙으면 욕심을 더 내보려고요. 저를 부르지 않는 날까지 연기할 생각이에요."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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