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간호법 거부권 행사될까" 尹 결정에 의료계 촉각···어떤 경우건 혼란 불가피
의협 “거부권 환영···면허박탈법 거부 안해 유감"
간협 “정치책임 물을 것”···총궐기·면허반납 고려
복지부, 종합대책 이행 등 협의, 직무정비 계획
"결국은 밥그릇 싸움 아니겠느냐" 여론은 냉담
오늘(16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찬반 진영이 최종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간호협회 소속 간호사들이 사상 첫 단체행동을 예고했고 의사, 간호조무사 등 간호법 제정에 반대하는 의료직역 13개 단체는 거부권 행사 대상에 ‘의료인 면허 박탈법’으로 불리는 의료법 개정안이 빠진 데 대해 유감스럽다는 반응이다. 대통령실이 간호법과 관련해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사실상 의료현장 혼란이 불가피한 셈인데, 보건복지부는 단체행동에 대해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16일 의료계에따르면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대통령의 간호법 거부권 행사 여부에 따라 회원들에게 의료 공백 대응 지침을 안내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당초 의협을 필두로 간호조무사, 치과의사, 응급구조사 등 의료직역 13개 단체가 참여하는 13보건복지의료연대는 간호법 제정 강행 시 400만 회원이 참여하는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예고했다.
현행 의료법에 포함된 간호사 관련 규정을 따로 떼어 간호사의 업무범위와 권리 등이 담긴 단독법으로 만드는 간호법 제정안은 지난달 27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이달 4일 정부로 이송됐다. 대통령은 국회로부터 법안을 이송받으면 15일 이내에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는데 당정이 오늘(16일) 국무회의에서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예고하면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이다. 이날 회의 결과를 보고 총파업 강행 여부 등 단체행동의 향방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간호법에 대한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무게가 실리면서 대학병원 전공의(레지던트), 교수 등이 가세하는 총파업이 진행될 확률은 현저히 낮아졌다. 하지만 의료대란의 불씨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았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15일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건의를 공식화하자 간협은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김영경 간협 회장은 “모든 간호사들이 압도적으로 적극적인 단체행동을 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며 “간호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적극적인 단체행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간협이 8~14일 전 회원을 대상으로 의견 조사를 실시한 결과 참여 인원 10만 5191명(14일 자정 기준) 중 10만 3743명(98.6%)이 ‘적극적인 단체행동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간협에 가입되어 있는 전체 회원 수는 약 24만 명이다. 다만 그동안 의료계 총파업을 강도높게 비판해 온 만큼 파업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단체행동에 나설 것으로 알려져 현재로선 수위를 가늠하기 어렵다.
간협 내부에서도 고심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간협이 지난 11일 총선기획단을 꾸린 것도 국민의힘 등 정치권을 겨냥한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간협은 “간호법 제정이 대통령 공약인 만큼 허위 사실의 실체를 밝히고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며 “62만 간호인의 총궐기를 통해 치욕적인 누명을 바로잡고 발언의 책임자들은 반드시 단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협 등이 중범죄 의사 면허 취소법의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도 또다른 변수다. 간호법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의료법 개정안은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아 면허가 취소된 후 재교부 받았음에도 또다시 금고 이상의 실형을 받은 경우 의사 면허를 취소하고 10년간 재교부를 금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의료연대는 “당정의 간호법에 대한 거부권 행사 건의 결정을 환영한다”면서도 "의사면허 취소법이 거부권 행사 건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사실에 대해서는 날을 세웠다. 이들은 “면허 박탈법은 결과적으로 필수의료 분야 기피를 시작으로 보건의료 시스템 붕괴를 가속화시켜 국민 피해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며 “간호법과 면허 박탈법이 최종적으로 폐기될 때까지 투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의료직역이 국민 건강을 빌미로 각자의 명분을 내세우지만 정작 단체행동에 대한 여론은 차갑기만 하다. 익명을 요한 의료계 관계자는 “직역 간 밥그릇 싸움과 여야 갈등으로 번지면서 처음 두 법안이 제정된 취지가 무색해졌다"며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져야 하기에 안타깝다"고 말했다. 의료연대의 시위 현장을 지켜보던 한 시민은 “의사가 파업한다고 생명 볼모로 집단행동한다고 비판했던 간호사 아니냐”며 “걸핏하면 단체행동 운운하는 것을 보면 모두 국민 건강은 뒷전”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단체행동으로 의료 공백이 발생해선 안된다며 엄포를 놨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지난 15일 간호법 제정안 관련 브리핑을 열고 “간호 인력 지원 종합대책을 착실히 이행해나가고 의사 단체와는 의료법 개정안 등에 대해 계속 논의를 할 것”이라면서도 “단체행동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있을 수 없다. 정부는 관련 법과 관련 매뉴얼에 따라 상황을 정밀하게 모니터링하고 긴급상황반을 통해서 점검을 하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조했다. 의료법에 따르면 복지부 장관은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
안경진 기자 realglasses@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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