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문일답] "포격에도 목적지 도착한 기차처럼…우린 갈 길을 간다"
타임 '100인' 선정에 "영광 차지할 이들은 폭력·악에 저항하는 우크라인"
"기적 기다리지 말아라"…"남편과 처칠 비교할 수 없어, 자신만의 삶·결정"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부인 올레나 젤렌스카 여사는 16일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일상을 묻자 "헤르손 기차는 포격 당한 후에도 고작 14분 늦게 목적지에 다다랐다. 우리는 모두 이 기차처럼 살고 있다"고 묘사했다.
방한한 젤렌스카 여사는 이날 연합뉴스 서면 인터뷰에서 "무사히 잠에서 깨어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며 "이러한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일하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 그들(러시아)은 우리를 파괴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헤르손의 기차'처럼) 우리 갈 길을 간다"고 '전쟁을 견디는 법'을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난 15개월간 영부인으로서 "내 위치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9월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교육, 의료, 인도적 지원을 목표로 하는 '올레나 젤렌스카 재단'(Olena Zelenska Foundation)을 설립한 것도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우크라이나 위탁가정 주택 지원 프로젝트부터 부차 지역 식량을 보급하는 '공장식 주방' 설립, 무장애(Barrier Free) 프로젝트, '모든 우크라이나인의 정신건강 프로그램'(All-Ukrainian Mental Health Program) 등도 추진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 러시아의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훌쩍 넘었다. 그 사이 영부인의 역할에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그저 내 위치에서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모든 우크라이나인들이 그러하듯 마찬가지로 내 권한 안에 있는 모든 일을 하려고 한다.
나는 모든 기회를 활용해 러시아의 '전면 침공'에 대해 전세계에 알리고 있다. 목격자 한명 한명의 목소리가 중요하고 역사의 법정에서 증언이 갖는 힘을 믿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승리를 필요로 하는 건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전 세계라는 점을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침략과 공격, 폭력이 용인 가능한 생존의 규범이 되는 선례를 남겨선 안된다.
나는 도움이 되기 위한 새로운 방안도 항상 찾고 있다. 침공 초기 아픈 아이들을 신속히 해외로 보내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유치했던 구조 프로젝트는 해외 후원자들의 원조 통로인 '올레나 젤렌스카 재단'으로 거듭났다. 우크라이나 재건과 관련, 매일 겪어온 일들로부터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것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 우크라이나인 70% 이상이 불안 장애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징후에 시달린다.
전쟁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모든 이들에게 불안과 불확실성을 가져다줬다. 단독 해외 방문으로 미국을 찾은 작년 7월 이후 국제적인 대표로서 내 역할도 확실히 달라졌다. 그리고 지금은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인의 이익과 필요를 옹호하기 위해 한국을 찾게 됐다.
-- 지난달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지도자 부문에 올랐다.
▲ 한가지는 말할 수 있다. 이는 내가 순위에 오르기 위해 지불하고자 했던 비용이 아니다. 이런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순위 따위는 전혀 필요 없다. 이 상을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인에게 바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해야 할 이들은 바로 매일 폭력과 악에 저항하는 그들이다.
-- 러시아의 아동 납치 문제가 유엔 안보리에서도 다뤄졌는데.
▲ 이 문제는 유엔뿐 아니라 유럽평의회 의회협의체(PACE)에서도 최근 제기됐다. 가능한 모든 플랫폼에서 이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말할 것이다. 이러한 폭력은 현재 진행형이고 바로 지금 이순간에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가장 무방비한 어린이들을 상대로 자행되는 폭력이다.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엄마와 헤어진 뒤 구조됐지만 엄마는 아직 러시아 점령군들에게 붙잡혀 있는 12살 소년인 사슈코, 폭격으로 아빠를 잃은 뒤 도네츠크로 끌려갔다가 정부 등의 구조 노력 끝에 수개월 뒤 조부모 품에 안긴 12살 소녀 키라, 아빠 예우헨은 감옥에 끌려가고 고아원으로 보내졌다가 러시아인들에게 입양되기 하루 전 모스크바 인근 하숙집에서 발견된 아들 마트비, 딸 스뱌토슬라우와 올렉산드라 등 3남매 이야기 등 마리우풀에서 벌어진 사례들 소개.)
이러한 이야기들은 점령군이 어떻게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납치하는지, 그 끔찍한 '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 아이들의 부모를 죽이거나 그들의 가족으로부터 강제로 떼어내는 방식이다. 현재 361가지의 이러한 (돌아온 아이들의) 사연이 있다.
하지만 더욱 엄청난 숫자가 있다. 현재 여전히 러시아에 붙잡혀 있는 아이들이 1만9천396명에 달한다. 상상해 봐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사슈코 같은 아이들이 자신들이 버려졌다는 거짓말을 듣고 있다. 어떤 아이들은 바로 지금 자신들의 눈앞에서 죽임을 당한 부모들 때문에 울고 있다.
지금 바로 아이들을 풀어줘야 한다. 우리는 전세계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정의가 필요하다. 헤이그 법원(국제형사재판소·ICC)은 (아동) 불법이주 용의자로 2명을 지목했지만 실제로는 수천명이 연루돼 있다. 이는 한 개인의 우발적 범죄가 아닌 총체적인 정책과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노사이드(genocide·집단학살)의 징후도 있다.
-- 우크라이나 국민이 일상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상황인가. 전쟁을 견디는 우크라이나의 힘은 무엇인가.
▲ 많은 이들이 집과 사랑하는 이들을 그리워하면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우리 민간인들을 '사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안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그렇다. 그들이 거주지에서 무사히 잠에서 깨어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2주 전 러시아의 고층빌딩 폭격으로 사망한 우만 주민 23명(어린이 6명 포함)처럼 말이다. 슈퍼마켓에 갔다가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최근 러시아 폭격에 사망한 헤르손 주민 7명처럼 말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의 삶이다. 끊임없는 위협에 처해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모든 사람이 각자의 위치에서 일하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있다고 상상해봐라. 시설과 상점, 교통도 모두 가동되고 있다. 며칠 전 헤르손 기차역 포격 후 공격당한 기차가 겨우 14분 늦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는 모두 이 기차처럼 살고 있다. 그들(러시아)은 우리를 파괴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우리 갈 길을 간다.
-- 전쟁 장기화로 서방의 피로도가 높아진다는 지적도 있는데.
▲ 관심이 줄어드는 것에 대해 더 두려워해야 할 쪽은 우리가 아닌 세계다. 침략자가 승리하면 전세계가 패배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침략자가 처벌받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다. 그(침략자)가 이 순간 직접적으로 죽이고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를 멈추게 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당신이 있는 거리에까지 미치기 전에 범죄를 막아야 하는 것과 같다.
러시아의 전쟁은 우크라이나를 겨냥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와 국제법, 국제관계에 반하고 있다. 따라서 자기 보호를 위해 그 누구도 관심을 잃어선 안 된다고 충고하고 싶다. 그것은 당신 자신의 목숨과 전체 세계의 미래에 관심을 갖는 일이기 때문이다.
- 전쟁의 피로감을 극복하기 위한 본인만의 방법은.
▲ 색다른 비결을 소개하겠다. 이 레시피는 바로 당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기차'처럼 말이다. 당신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라. 기적이나 즉각적인 결과를 기다리지 말아라. 우리는 이를 두고 '눈은 두려워하지만, 손은 행동한다'고 말한다. 이게 우리가 삶을 살아내는 방식이고, 보다시피 효과가 있다.
-- 전쟁은 언제 끝날까. 휴전에 대한 입장은.
▲ 우리는 우리의 승리로 얻어진 평화에만 만족할 수 있다. 추상적인 휴전으로는 안 된다. 방금 당신의 친척과 이웃을 죽인 손과 악수하는 건 불가능하다. 뉘우치지 않는 살인자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순 없다. 단언컨대 평화는 러시아를 멈추게 함으로써 추구돼야 한다. 전 세계에 흩어진 우리 국민들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전쟁이 갈라놓은 가족들이 다시 하나가 돼야 한다.
-- 남편 젤렌스키 대통령은 한 가족의 가장이기도 하다. 전쟁이 난 뒤 가족과의 생활은 어떻게 바뀌었나. 젤렌스키는 국제사회에서 처칠에 견줘지기도 한다.
▲ 젤렌스키가 일국의 지도자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가족 안에서는 따로 지도자가 없다. 우리 가족은 민주주의를 실천한다.
처칠과 관련해선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삶을 살고 자신만의 결정을 내린다. 똑같은 상황이란 없으며 찾아볼 단서도 없다. 불행하게도 또는 운 좋게도 모든 이야기는 시작부터 쓰인다.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은 최고의 역사적 본보기들이 가르쳐주듯이 위엄 있게 이를 수행하고 있다.
-- 방한 기간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 먼저 한국이 보낸 모든 도움과 지원에 대해 한국민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 현대 세계에서 '다른 사람의 전쟁'이라는 건 없다는 점을 깨달은데 대해 감사하다. 물 어딘가에 돌멩이를 던지면 그 파장은 물결이 돼 전 세계로 퍼져나간다. 민간인이 죽임을 당했다면 이는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다. 여러분의 현명함과 다른 이들의 고통에 대한 연민에 감사드린다.
-- 윤석열 대통령과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우크라이나에 초청할 의사가 있나. 방한 기간 윤 대통령 부부를 만나나. 만난다면 어떤 메시지를 전할 건가.
▲ (초청 의사 관련) 당연하다. 우크라이나는 언제나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한 방문은 우크라이나에 매우 힘이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전쟁 중에도 개방적이고 아름다우며 환대하는 자세를 갖고 있다.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지지에 대한 감사다. 우크라이나인들에게 한국과 한국의 역사는 회복과 성장의 모델이기도 하다. 모범을 보이고 우리를 북돋워 준 데 대해 감사하다.
--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지원을 어떻게 평가하나. 윤 대통령은 최근 군사지원과 관련,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나 대량 학살 등을 전제로 "인도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언급했다.
▲ 대통령의 현명한 판단이고, 이러한 이해에 감사드린다. 집에 범인이 있다면 그 집주인은 당연히 이 범죄자를 몰아내기 위해 인도적 지원이나 음식, 의약품뿐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무언가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게 바로 우리가 전 세계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프로토콜(외교적 의례)도 깨고 모든 이에게 '자원을 달라, 그럼 우리는 범죄자를 우리의 집에서 내쫓겠다'고 말하고 있다.
-- '끊임없이 핵무기로 위협하는 이웃과 사는 것은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한국의 문제기도 하다'며 양국의 공통점을 언급한 바 있다. 한국 국민에게 전하고픈 말은.
▲ 친애하는 한국 국민 여러분 모두가 이미 해답이다. 위협에 직면한 가운데서도 당신들이 이뤄낸 놀라운 발전과 성장, 그리고 당신들의 바로 그 삶이, 이것이 올바른 경로임을 증명하고 있다. 당신들은 처한 상황에도 불구, 발전하고 있으며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그게 당신들이 이기는 방식이다.
-- 영국 찰스 3세 국왕 대관식에서 질 바이든 여사와 나란히 앉아 화제가 됐다. 바이든 여사와 손녀의 의상이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 의상을 보고 색상 선택을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지지와 연대는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적 사건들에 점점 익숙해진다는 소식을 간간이 접하는 와중에 전면전이 15개월이 된 지금도 이러한 지지를 보여준 데 대해 정말 감사하다.
acui721@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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