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日과 반도체 협력, 절호의 기회다

여론독자부 2023. 5. 1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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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재 세종대학교 교수·변호사
공급망·후공정 기술 확보 중요성 커져
日, 소재·장비·첨단 패키지분야 선도
반도체 패권전쟁서 살려면 우군 필요
日 맞손 삼성전자, 교두보 마련 기대
[서울경제]

삼성전자가 300억 엔(약 3000억 원) 이상을 투자해 일본에 반도체 연구개발(R&D) 시설을 짓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보도에 따르면 이 시설은 일본 요코하마에 들어서며 2025년 가동될 예정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7일 서울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 한국 반도체 제조 업체와 일본 소재·부품·장비 기업 간의 공조를 강화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기로 합의했다. 이 시설이 예정대로 가동되면 양국 정상의 합의 이후 나온 첫 가시적 결과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의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 대표 기업이 비록 국내 투자 대비 적은 금액이지만 일본에 투자하는 것에 대해 많은 고심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 우려의 목소리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필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포함한 정보기술(IT) 기업에서 변호사로 실무를 담당했고 퀄컴에 대한 1조 원이 넘은 과징금 소송에서 정부를 대리해 승소한 경험도 있다. 이런 실무 경험에 비춰보면 일본에 대한 반도체 투자는 반일 감정보다는 미래 반도체 패권 전쟁의 관점에서 결정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 반도체 산업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전례 없이 치열한 공급망 확보 경쟁과 미세공정 한계에 따른 공정 난도 증가로 소재·장비 후공정(패키지) 기술의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이 중에서도 강대국 간의 공급망 사슬(supply chain)을 둘러싼 각종 규제 증가는 우리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존을 위한 도전 과제가 되고 있다. 삼성이 공급망을 확보하면서 다른 한편 소재·장비·후공정(패키지) 기술의 혁신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 강자와의 연합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반도체 산업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거대한 변화 속에 삼성의 일본 투자는 미래 반도체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사항으로 판단된다. 반도체 산업은 과거 글로벌 분업화가 가장 잘 이뤄졌던 산업이다. 우리나라는 메모리, 미국은 장비와 팹리스(반도체 설계), 대만은 파운드리(시스템반도체, 후공정), 일본은 소재·장비 분야 등 각 국가 간 서로의 특장점을 살려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상태였다. 그러나 몇 년 전 일본의 수출 규제에 이어 반도체 공급망 문제로 미국의 첨단 IT제품·자동차·가전 등 수많은 산업이 멈추면서 반도체 산업은 경제안보의 핵심이 됐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국가별 독자 생태계 구축 체제로 변모하고 있으며 반도체 패권을 확보하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됐다.

우리나라는 선대 기업가들의 선견지명으로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생산 1위라는 위상을 갖추고 있지만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 구축 측면에서 소재·장비 분야는 주요 경쟁국에 비해 한참 뒤떨어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최근 반도체 시장은 미세공정의 기술적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새로운 융복합 패키지 기술이 각광받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러한 후공정 분야에서는 아직 일본이나 대만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를 조기에 극복하려면 우군을 확보해 협력해야 한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장비 측면에서 우리나라 대비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일본의 기업들은 이러한 강점을 살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첨단 패키지 분야의 소재·부품·장비 분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일본의 이비덴과 신코는 첨단 반도체 기판 분야에서 각각 세계 1·2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이비덴의 경우 3차원 적층 패키지 분야에서 가장 강력한 기술 경쟁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패키지 관련 소재 분야에서도 레조나크·아지노모토 등은 첨단 후공정 분야에서 사용되는 소재를 거의 독점하고 있다.

파운드리 분야에서 압도적인 1위인 TSMC가 일본 이바라키현에 패키지 연구개발센터를 개소한 것은 현지 일본 기업들과 교류 협력하며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메모리를 넘어 독자적인 반도체 공급망 생태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반도체 패키지 기술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군보다 동맹군이 많아야 유리하다.

삼성의 이번 일본 투자가 경쟁자이지만 여전히 배울 게 많은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삼성이 전후방 산업을 아우르는 반도체 종합 강자로 거듭날 수 있는 교두보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여론독자부 opinion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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