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규제 풀어주면 고위험상품 팔아먹을 궁리만 하는 증권사들

정현진 기자 2023. 5.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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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증권 발 주가 폭락 사태로 파생상품인 차액결제거래(CFD)와 전문투자자 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금융당국은 국내 증권사 13곳과 외국계 증권사 5곳이 보유한 약 3400개 CFD계좌 전수조사에 나섰다. 고위험 파생상품인 CFD는 전문투자자만 가입할 수 있는데, 전문투자자 요건이 너무 완화된 까닭에 CFD 등 고위험 상품 판매가 늘었다는 지적이 이어지자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전문투자자 요건 개선도 검토하겠다고 했다.

실제 주식을 보유하지 않아도 사실상 주식을 매매하는 것과 같은 거래가 가능한 CFD 상품의 구조가 시세조종과 부정거래에 활용될 여지가 큰 데다, 개인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이 일부 투자자의 투기 과열을 부추긴다는 지적은 합리적이다. CFD는 최고 2.5배의 레버리지 투자가 가능한 위험도가 매우 높은 금융투자상품인데, 개인전문투자자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최근 5년 중 1년 이상 금융투자상품 잔고가 5000만원 이상이고 연 소득이 1억원 이상이기만 하면 기초 요건을 충족한다. 사실상 돈으로 자격을 사는 셈이다. 2019년 전문투자자 자격 요건을 대폭 완화한 금융당국의 안일함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상품의 구조와 느슨한 제도만이 문제일까. 고객과 직접 대면해 전문투자자 자격을 취득하길 먼저 권하고 CFD를 적극적으로 영업한 증권사는 어떨까. 규정대로 자격을 지닌 사람에게 정식 출시된 상품을 팔았으니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번 사태에 엮인 개인투자자 중에는 수십억원대의 레버리지를 일으킨 의사, 연예인 등 일반인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하나 같이 ‘본인은 본 적도 없는 계좌에서, 알지도 못하는 종목에 수년간 수억원이 투입됐다’면서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증권사가 고객에 충분한 투자 정보를 제공했는지, 또 주기적으로 이들의 투자 리스크를 점검했는지를 의심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CFD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내 증권사들은 CFD 계좌 개설 고객이 전문투자자이기 때문에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상 일반투자자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책임 소재를 돌리는 모습이다. 하지만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이 규정하는 금융투자회사 표준내부통제기준은 금융사(증권사)의 파생상품 영업에 대한 내부통제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이는 상품 권유 단계부터 판매, 판매 이후까지 전 과정에 걸쳐 주기적으로 리스크 점검을 해야 할 의무를 포함한다.

증권사들이 전문투자자 제도 도입 취지에 맞게 제도를 활용했는지도 의심스럽다. 2019년 1월 금융위는 개인 전문투자자 진입요건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위험 감내 능력이 있는 전문투자자의 육성이 필요한 이유로 ‘비상장 혁신기업 등 투자 위험이 높은 모험자본 활성화를 위해서’라고 밝혔다. ‘고위험투자 활성화를 위해서’가 아니다.

이어 금융위는 완화된 전문투자자 요건이 이번 사태처럼 고위험 투자 수요 급증으로 이어질 것을 예상해, ‘증권회사의 부적절한 전문투자자 요건 심사를 불건전 영업행위로 규정해 위반 시 엄격하게 제재’할 것이라고 명시했다. 불건전 영업행위의 예시로는 ‘전문투자자 전환을 전제로 고위험 상품 등을 투자권유 준칙을 준수하지 않고 판매하는 행위’를 들었다. 즉 고수익이 가능한 고위험 투자를 권유하면서 전문 고객의 전문투자자 자격 획득을 부추기는 것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지난 2011년 주식워런트증권(ELW) 관련 불공정 거래 혐의로 검찰은 국내 12개 증권사 대표들을 줄줄이 구속한 적이 있다. 당시 피고 쪽 변호사는 “국제적 기준에 맞는 고객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지 부정한 거래가 아니었다”는 뜻을 피력했으나, 당시 노정남 대신증권 사장 등은 실형을 구형받았다. 1심과 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고 대법원이 상고를 기각하면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파생상품 판매 과정에서 투자권유절차 등 증권사의 내부통제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사건이었다.

금융사의 내부통제 개선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로, 금융위는 중대한 금융사고 발생 시 대표(CEO)에게 직접 책임을 묻게 하는 방안 도입을 적극 고려해 왔다. 금융사의 업무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금융상품의 구조는 더욱 복잡해진다. 금융 범죄는 기술의 발달과 함께 끝도 없이 지능화되면서 금융사고의 사전 예방은 갈수록 요원하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사의 내부통제가 중요하다. 외부 통제만으로 금융회사를 규율하고 사고를 예방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가 제도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이번 사태에 대한 대대적인 검사에 나선 금융위가 증권사가 스스로 꼼꼼한 내부통제 규정을 마련하고 이를 철저히 준수했는지 제대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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