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의 마음PT] 불면증 덕분에 바뀐 나의 생활습관들
# 영화 ‘시애틀의 잠 못이루는 밤’에서 연인들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잠 못이루는 밤은 로맨틱하다. 그러나 온갖 스트레스와 걱정으로 잠 못이루는 밤은 끔찍하다.
불안, 두려움, 분노, 우울 등 부정적 생각과 감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밤을 하얗게 지새게 되는데, 이런 사고 패턴을 의학적 용어로 ‘부정적 반추’ 또는 ‘우울증적 반추(depressive rumination)’ 현상이라고 한다.
요즘은 이런 부정적 반추로 인한 불면증 환자가 꽤 많다고 한다. 노인·젊은이·부자·가난뱅이 가리지 않고 전 연령, 전 계층에서 공평하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누적된 스트레스로 인해 부정적 생각을 끊임없이 떠올리는 정신습관은 사실 인간의 의지나 이성으로 제어하기가 쉽지 않다.
나 역시 십수년전 이런 연유로 지옥같은 불면의 밤을 수개월 보낸 적이 있기 때문에 심심치 않게 터지는 인기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들의 프로포폴(전신마취제) 스캔들을 보면 마냥 비난만을 하긴 어렵다.
불면증은 만병의 근원이다. 아니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질환이다. 인간을 포함 모든 유기체는 활동하면 반드시 휴식이 필요한데, 계속 쉬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에너지는 소진(burnout)되고, 면역계는 망가지고 신경계는 오작동되면서 온갖 병과 사고들을 초대하게 된다.
우울증, 공황발작, 불안장애, 분노조절 장애 등 신경질환은 불면증으로 지친 신경계의 항명(抗命)이자 자중지란의 대표적 케이스다.
# 불면증을 극복하려면 마음이 쉬어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다. 마음을 쉬려고 하면 할수록 스멀스멀 이런 저런 생각이 떠올라 마음은 다시 노동을 하게 되고 결국 불면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마음은 마음으로 다스려지지 않고, 몸으로 다스려야한다는 사실이다.
슬픈 마음을 ‘기쁜 마음으로 바꾸겠다’고 마음먹는다고 실제 기뻐지겠는가. 하지만 몸을 즐겁게 하면 마음도 따라서 즐거워진다.
예컨대 좋아하는 맛집에 가 먹는다든가, 좋아하는 운동을 한다든가, 목욕이나 마사지를 받는 등의 방법을 통해 몸을 즐겁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마음을 즐겁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마음은 매우 자유로운 속성을 가지고 있어 지시한다고 해서 잘 먹히지 않는다. 억압하거나 강요하면 오히려 반항한다.
# 인간은 유기체 생물인지라 몸을 편하게 하면 마음이 편해지며, 결과적으로 잠도 잘 자게 된다. 십수년전 내가 불면증을 극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얘기하자면 당시 나는 극도로 머리가 피곤해 신경계는 지쳐 있었고 오작동상황이었다. 공황발작, 우울증, 불안장애의 초기 증상을 보였다.
이럴 때는 약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배탈이 심하면 병원에 가 약을 처방받듯이, 그때 나는 병원에 가 수면제·진정제·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수면제를 먹고 잠을 푹 자면서 지쳐있던 자율신경계는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 나갔고, 고갈된 몸의 에너지도 보충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약에만 의존하면 영원히 ‘약의 노예’를 벗어나지 못한다. 몸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운동이 최고다. 운동을 해야 심장이 뛰고 혈액순환이 활발히 이뤄지며 근육이 움직이고 에너지의 소모-축적이 되풀이되면서 몸의 모든 기능이 강화된다. 또한 운동은 불안·절망 같은 부정적 감정 대신 기쁨·희망 같은 긍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당신의 체력이 좋다면 달리기를 비롯 땀도 나고 숨도 차는 고강도 운동을 권한다. 강도가 높을수록 몸은 강화되며 마음은 쉬기 마련이다. 당시 나는 새벽에 한시간씩 자전거를 탔다. 주말에는 5~6시간씩 자전거를 타거나 트래킹을 하면서 결사적으로 몸을 ‘단련’시켰다.
세 번째는 인지행동치료였다. 의식적으로 생활습관을 고쳐 몸을 편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부정적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대한 SNS를 줄이고 보도 뉴스와 거리를 두었다. 일상에서 사람 만나는 것을 줄이고 저녁에 집에 일찍 들어가는 등 생활을 단순화시켰다.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몸을 편하게 만든 것이다.
이 세 가지를 병행해 가니까 몸과 마음은 급속도로 회복됐고 결국 숙면으로 이어졌다. 처음에 한알 먹던 수면제는 한달 후 반알로 줄어들었고, 처음에 반알 먹던 진정제는 한달 후 복용을 중단했다. 결국 3개월만에 나는 모든 약을 끊고 정상적으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이후 십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단 한번도 수면제나 진정제를 먹지 않았다. .
다른 신경계 고장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부정적 반추로 인한 불면증이라면 내 방법을 통해 극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단 시간과 인내,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나는 불면증으로 고생했지만 대신 긍정적인 것들도 얻었다. 생활습관이 개선되고, 불안이나 걱정거리를 다루는 나만의 노하우가 생겼고, 때로 힘든 일이 닥쳐도 빨리 회복될 수 있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강화됐다. 이 모든 게 불면증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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