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금 더 낮춰드릴게요" 집주인들이 착해졌다? [현장]

김서온 2023. 5. 16.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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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보증금 낮춘 거래 비중 늘어…일부선 갱신계약 후 보증금 일부 반환 제안까지
고금리 속 보증금 레버리지 풀기 위한 '고육지책'…대도시·신축일수록 역전세 위험↑

[아이뉴스24 김서온 기자] "보증금을 더 낮춰주겠다는 제안이 나오기도 하고, 심지어 갱신계약 이후 보증금 일부를 반환해주겠다는 집주인까지 있을 정도에요."

임대차법 시행으로 급등했던 전셋값이 2년 전보다 크게 떨어지면서,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이 계속되고 해법도 각양각색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최근엔 아파트 시장까지 역전세 현상이 확산함에 따라 주택수요가 풍부한 대도시 수도권과 주거 선호도가 높은 신축 주택의 전세계약에서도 주의가 요구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6일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통해 올해 지난달 26일까지 전세 거래된 전국 아파트 18만9천485건 가운데 동일단지와 동일면적 전세계약이 2년 전 같은 기간 중 1건 이상 체결된 3만2천22건의 최고 거래가격을 비교한 결과 2년 전 대비 전세 최고가격이 낮아진 하락거래는 62%(1만9천928건)로 조사됐다.

권역별로 하락거래는 수도권 66%(1만9천543건 중 1만2천846건), 지방 57%(1만2천479건 중 7천82건)으로 수도권의 비중이 높았다. 시도별로는 대구(87.0%), 세종(78.4%), 대전(70.8%), 인천(70.5%), 부산(69.6%), 울산(68.2%) 경기(66.0%), 서울(64.2%) 순으로 조사됐다. 수도권 등 주택수요가 많은 대도시에서 전세 하락거래가 늘었다. 이는 전셋값이 꾸준히 하락했고, 내림세에 따라 낮은 가격으로 신규 계약이 속속 체결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역전세난 우려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자금이 부족한 일부 집주인들은 기존 임차인을 잡기 위해 전세보증금 시세 하락분에 대해 연 4~5%대 이자를 지급하는 '역월세'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세는 통상 2년 단위로 계약이 이뤄지는데, 임대차법 시행 이후 2년이 더 보장되면서 전셋값 등락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보통 임대인들이 전세보증금을 그대로 금고에 넣어두는 일은 없다. 기존 계약보다 전셋값이 뚝뚝 떨어지면서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이 같은 역월세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용산 드래곤시티 호텔에서 바라본 아파트 전경. [사진=아이뉴스24DB]

상황이 이렇자 실제 임대차 시장에서는 임대인들이 향후 역전세난으로 인한 곤경에 처할 사태를 막기 위해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집주인이 먼저 나서 재계약임에도 불구하고 5% 인상은커녕 전세금을 오히려 크게 낮춰 임차인에게 재계약을 제안하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3년 전 입주를 시작한 관악구 일원 대단지에서는 올해 직전 계약금보다 수억이 낮아진 가격대에 전세계약이 대거 이뤄졌다. 이달 이 단지의 전용 84㎡ 전세매물은 올해 8월 계약만료를 앞두고 종전 전세보증금인 8억4천만원보다 1억6천만원 낮춘 6억8천만원에 갱신계약이 이뤄졌다. 앞서 지난 3월에는 동일단지, 동일면적대 전세매물이 8억5천만원에서 1억3천만원 보증금을 낮춘 7억2천만원에 오는 2025년 3월까지 재계약이 완료됐다.

관악구 봉천동 일원 J부동산 대표는 "최근 갱신계약 중 1~2억 하락은 기본이다. 크게는 3~4억원이 더 떨어진 가격대에 재계약이 이뤄지는 일도 있다"며 "새 세입자를 구하는 게 여전히 어렵다 보니 집주인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는 보증금을 돌려주고 재계약을 맺길 선호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특히, 일부 임대인들은 이미 맺은 계약임에도 보증금을 더 낮춰 조건을 변경해 6개월~1년 계약 기간을 더 늘려달라고 임차인에게 요구하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21년 2월 전고점에서 전세로 서울 동작구 한 신축 아파트에 들어간 40대 부부 A씨는 올해 2월 임대료 인상 없이 같은 보증금 8억5천만원 2년 갱신계약을 맺었다. 양호한 학군에 출퇴근도 쉬워 같은 보증금에 2년 더 살기로 했다. 그러나 지난달 집주인 B씨가 돌연 연락이 와 보증금 2억원을 돌려주고 6억원에 2025년 2월 만기에서 1년을 더 살아줄 수 있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세입자 A씨는 "고점에 첫 전세계약을 맺었다는 생각이 늘 들긴 했지만, 대출도 거의 다 갚아나가던 시기였고 무엇보다 입지 만족도가 커 같은 보증금의 재계약에 나섰다"며 "그러나 갱신계약 두 달만인 지난달 집주인이 연락와 보증금 일부를 돌려주고 1년 더 계약을 연장할 수 없냐고 물어온 터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관악구 일대 신축 대단지에 거주하는 30대 C씨도 비슷한 제안을 집주인으로부터 받았다. 내년 2월 전세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두고 있는데 C씨는 지난해 2월 해당 단지 전세금 최고가인 9억3천만원에 계약을 맺었다. 현재 동일단지, 동일면적대 전셋값은 5억 중반대에서 6억 중반대에 형성돼 있다.

C씨는 "어쩌다 보니 고점에 전세 계약을 맺어 억울하던 차였는데, 임대인이 연락이 와 현재 시세대로 전세금을 낮출 테니 계약 기간 연장을 고려해달라고 했다"며 "9개월 정도 남은 계약 기간에 1년 6개월을 더 요청해왔는데 이달 말까지 결정을 내릴 참"이라고 했다.

동작구 사당동 일대에서 20년 넘게 부동산을 운영해온 공인중개사 D씨는 "전셋값은 떨어지는데 새 임차인을 들이기가 어려워 갱신계약에서 집주인들이 2~3억원 보증금을 낮추고 기존 세입자를 어떻게든 잡으려고 한다"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세입자가 무턱대고 빠지면 기존 전세금을 온전히 돌려줘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수억은 떨어진 가격에 새 계약을 맺어야 하고, 자금 유동이 좋지 않으면 임차권 등기에 걸리면 곤경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R114 리서치팀 관계자는 "최근 전세수요가 많은 대도시나 주거 선호도가 높은 신축에서도 역전세 우려가 커지고 있어 거래당사자들의 주의가 필요하다"며 "전셋값 약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가격 고점이었던 지난 2021년~2022년 초까지 계약한 임차인들의 전세 만료 시점이 속속 도래하면서 역전세 이슈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김서온 기자(summer@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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