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이자 무역상이며 문화리더였던 ‘조선 역관’을 조명하다
- 내달 9일까지 유물 150점 전시
- 사행기·성장과정·유명 역관 등
- 4개 주제에 풍부한 해설 곁들여
- 큐레이터와 동행관람 이벤트도
조선 외교정책의 기조는 사대교린(事大交隣)이다. 큰 나라는 섬기고 다른 이웃 나라와는 친하게 지내는 것, 주변 강대국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숙명이다. 이러한 국제질서 속에서 그 나라 말을 잘하는 ‘역관(譯官)’은 중요한 외교의 한 축이었다. 세계를 누빈 이들 역관은 통역전문관이면서 실무외교관이었고, 훗날 무역 사무를 주도하며 무역상이자 문화인으로 성장했다.
부산박물관이 7월 9일까지 조선 시대 역관의 활동상을 다룬 특별기획전 ‘조선의 외교관, 역관’을 개최한다. 조선 사신단 행차에 동행했던 역관의 외교적 역할과 활동이 조선 사회에 미친 다양한 영향을 150여 점의 유물로 선보인다. 특히 부산의 역사와 정체성으로 이어지는 왜관 , 동래(부산) 현지 역관인 소통사(小通事)의 활약 등 관련 자료를 모았다.
전시는 조선 사신단 행렬 모습의 바닥 조명으로 시작한다. 이들을 따라 들어가면 ‘경진년 연행도첩’(1761년, 보물 제2084호)을 중심으로 4개의 주제별 전시를 자유롭게 오가며 관람할 수 있다. 국경을 넘나들며 활동한 역관의 특징을 살려 관람동선을 따로 짜지 않고 전시장을 들락날락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주황색과 남색으로 전시장을 꾸민 것도 이들의 역동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전시는 4개 주제로 진행된다. ‘이역만리, 사행을 떠나다’에서는 광활한 중국으로 가는 부경사행과, 바다 건너 대마도와 일본으로 이어지는 문위행·통신사행 관련 유물을 소개한다.
‘왜관과 부산의 역관’에서는 조선의 일본인 거주지 왜관과 조정에서 파견한 왜학역관의 집무소였던 성신당·빈일헌을 살펴본다. 현덕윤·현태익 등 왜학역관과 부산 출신이면서 일본어에 능통해 왜학역관을 보좌했던 소통사(小通事) 자료를 볼 수 있다. 박물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현덕윤 가문을 연구한 결과 소설가 현진건, 가수 현인 등이 그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됐다고 한다.
‘외교관으로 성장하다’에서는 역관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소개한다. 외국어에 능통한 역관이 되는 건 아주 힘든 일이었다. 역관은 세습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린 나이에 발탁돼 사역원(외국어 교육기관)에서 10년 이상 공부해도 역과(譯科)를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역원에서 가르친 외국어는 한학 왜학 청학 몽학. 제 1외국어는 단연 한학이었다. 지금의 영어마을처럼 하루내내 외국어로만 대화해야 하는 우어청도 있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선 당시 외국어 학습서인 ‘몽어노걸대(몽골어)’ ‘첩해신어(일본어)’ 등을 직접 볼 수 있다. 이때 외국어 공부는 ‘회화’ 중심이었는데, 외국어 문장 옆에 우리말로 독음을 적고 그 밑에 뜻을 쓴 학습 방식이 지금과 비슷하다. 역과 합격자 일람인 ‘역과방목’ 등을 함께 전시해 생도에서 역관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유물로 짐작할 수 있다.
‘역관 열전’에서는 부자로 이름난 역관, 문화를 선도한 역관사가, 조선 서화를 집대성한 마지막 역관 등을 조명한다. 사도세자의 친누이인 화협옹주 묘에서 출토된 명기, 사리구로 사용된 통도사 소장 일본 자기 등 역관을 통해 들여온 수입품도 소개된다. 특히 화협옹주 묘 출토 명기(화장품 용기)는 지난해 국립고궁박물관 등이 재해석한 ‘화협옹주 도자에디션’ 화장품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경진년 연행도첩’ ‘일본여도’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 궁중현판(영조 친필)’ 등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유물이 출품돼 주목할 만하다. 전시를 알차게 관람할 수 있도록 ‘큐레이터와의 역사나들이’ 행사도 오는 19일과 다음 달 23일 오후 4시부터 30분간 진행된다. 당일 현장 접수를 통해 누구나 무료로 참가할 수 있다.
정은우 부산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기획했다”며 “조선 시대 역관의 눈을 통해 드넓은 세계를 향해 도전했던 그들의 열정과 방대한 외교 성과를 되새겨 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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