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 웃기고 더럽고 서글프네” 작년 황금종려상 받은 이 영화
‘헤어질 결심’을 누르고 작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이 영화는 웃기고 더럽고 서글프다. 이 영화처럼 모든 배역이 재수 없고 같잖은 영화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도 다들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사람들이다. 실제로 세상은 그런 사람들투성이이기 때문이다. 영화 ‘슬픔의 삼각형(17일 개봉)’은 그런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토사물과 분뇨밭을 뒹굴게 한다. 처음엔 통쾌하다가 이내 씁쓸해진다. 오물이 객석에 튀는 것 같다.
톱 모델이자 유명 블로거인 야야(샬비 딘)는 호화 유람선 여행을 협찬받아 남자 친구이자 무명 모델인 칼(해리스 디킨슨)과 함께 배에 오른다. 나머지 승객들은 모두 부자들이다. 선장(우디 해럴슨)이 초청한 최고급 저녁 식사는 풍랑 때문에 엉망진창이 된다. 설상가상으로 배는 해적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야야 커플을 비롯한 여덟 명만 살아남아 외딴 섬에 고립된다.
패션쇼 시작을 기다리는 객석 맨 앞줄 한가운데 누군가 와서 “한 칸씩 오른쪽으로 옮겨 앉아 달라”고 한다. 한 사람이 자리를 새치기하자 많은 사람이 한 칸씩 손해를 감수한다. 그런데 맨 끝에 있던 사람은 옮겨 앉을 좌석이 없다. 모든 것을 빼앗긴 그의 적은 새치기한 인간인가, 조금씩 빼앗기고 침묵한 다수인가. 곧이어 패션쇼 주제가 화면에 뜬다. ‘만인은 평등하다(Everyone’s Equal)’.
평등하다는 말이 얼마나 불평등하게 쓰이는지 영화는 반복해 묘사한다. 갑판 위 욕조에 몸을 담근 채 돔페리뇽을 마시던 여자는 일하느라 바쁜 승무원에게 욕조로 들어오라고 한다. 근무 시간이라 안 된다는 그녀에게 여자는 말한다. “감히 내 말을 거절해? 우리는 모두 평등하니까 너도 들어와. 내 남편이 이 배를 살 거야.”
이윽고 배가 흔들리며 최고급 요리와 와인을 대접받던 승객들이 구토를 시작한다. 바닥에 토하고 상 위에 토하고 그릇 뚜껑과 모자에도 토한다. 변기까지 역류하면서 유람선은 거대한 똥통으로 변한다. 그제야 관객은 만인이 평등하다는 말의 참뜻을 알게 되는 느낌이다.
영화가 부자만 조롱하는 건 아니다. 가진 게 없어 여자 친구에게 빌붙어 사는 남자 주인공이 배에서 읽는( 척하는) 책은 무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다. 러시아 부자와 이념 논쟁을 벌이는 선장의 책상엔 촘스키 책들이 있다. 그러나 그는 아비규환 토악질의 원인이 된 무책임한 몽상가일 뿐이다. 고립된 섬에서 일약 리더가 된 유람선 청소부는 안락한 잠자리를 제공하는 대가로 부자들의 시계를 챙긴다. 그녀가 손목에 시계 두 개를 차고 등장할 때, 관객은 영화가 또 다른 반전을 향해 가고 있음을 감지한다.
영화를 만든 스웨덴의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2017년에도 영화 ‘더 스퀘어’로 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슬픔의 삼각형(Triangle of Sadness)’은 미간 주름을 뜻하는 패션업계 은어라고 한다. 원제를 직역하지 말고 번안하는 게 나을 뻔했다. 한물간 멜로 영화 제목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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