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어제 일 같은 계엄 관련 ‘사실확인서’ 사건[손효주 기자의 국방이야기]
손효주 기자 2023. 5. 16. 03:02
“나는 항명한 적이 없다. 5년이 지났지만 항명이 아니라는 내 생각엔 조금도 변함이 없다.”
민병삼 전 100기무부대장(예비역 육군 대령)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15일 통화에서 “군 형법상 항명은 상관의 정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라며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했던 명령은 정당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이어 “내가 한 것이 항명이었다면 육군교도소에 갔겠지만 (나는) 정상 전역했다”며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라고도 했다.
민 전 부대장은 박근혜 정부 때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2018년 7월, 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섰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 문건을 촛불 시민을 무력진압하려는 계획으로 인식했다. 문 대통령은 헌정 중단을 노린 국기 문란 사건이라며 합동수사단 구성까지 지시했다. 이런 가운데 민 대령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송 장관이 ‘법조계 문의 결과 (그 문건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바로 반박했다.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국방부 당국자들이 참석하는 간담회에서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날 “36년째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의 명예를 걸고 답한다”는 민 대령과 “대장까지 마친 내가 거짓말을 하겠느냐”는 송 장관이 벌인 공개석상 진실 공방은 군 역사상 초유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에 앞서 한 언론에서 송 장관이 해당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송 장관은 “그런 적 없다”는 내용을 담은 사실관계확인서를 만들어 당시 간담회 참석자들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이때 유일하게 서명을 거부한 이가 민 대령이었다. 이런 기무사와 송 장관 측 갈등은 국회에서 ‘공개 폭발’했고, 일각에선 군이 바닥까지 추락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계엄령 검토 문건 폭로 사태와 그 2라운드 격인 송 장관 발언 등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다른 이슈들에 밀려 조금씩 잊혀졌다. 그해 9월 송 장관이 경질되고 사건에 관여한 이들이 하나둘 퇴장하면서는 지나간 일이 됐다.
그러나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송 전 장관을 피의자로 입건하면서 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송 전 장관에게 적용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허위 서명을 사실상 강요한 혐의다.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사실상 내란 음모 문건으로 규정한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되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 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서명을 강요한 것으로 공수처는 보고 있다.
당시 서명한 A 씨는 통화에서 “서명을 안 하는 건 자유지만 불이익은 책임 못 지겠다고 하는데 누가 서명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또 “계엄령 문건 사건이 내 업무가 아니어서 송 장관 발언을 당시 귀담아듣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냥 서명한 것”이라는 증언들도 나왔다. 송 전 장관과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이들이 뒤늦게 당시 하지 못한 말을 이제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민 대령은 “만시지탄일 따름”이라면서도 “누군가에겐 다 지난 일이겠지만 내겐 어제 일어난 일 같다. 항명 프레임에 묶여 억울했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항명이 아니라 장관의 부하 된 도리로 양심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직언했던 것”이라며 “(이 사실관계확인서는) 향후 장관님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말도 당시 했었다”고 떠올렸다.
직권남용죄의 공소시효는 7년. 세월이 조금만 더 흘렀다면 시효가 지날 뻔한 혐의였지만 이제 공수처는 자체 인지 수사로 송 전 장관을 정조준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12일 당시 상황이 담긴 증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내사 단계에서 상당한 진술과 증거를 확보해 혐의 입증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송 전 장관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진 모른다. 다만 일각에선 ‘친위 쿠데타 계획’으로까지 규정된 당시 문건을 두고 군 당국이 연 2회 이상 연습하는 합동참모본부의 기존 계엄시행계획을 재편집한 수준이란 말도 나온다. 하필 이를 ‘군홧발’의 업보를 짊어지고 있는 만큼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기무사(옛 보안사)가 만든 탓에 오해를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얘기다. 이 문건이 2017년 만들어진 ‘모종의 거사’ 계획으로 보기엔 허술하다는 점을 당시 송 장관이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텐데 장관직을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민 대령을 두고 어쩌면 5년 뒤를 내다보고 그를 살리려 했던 가장 충직한 부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민병삼 전 100기무부대장(예비역 육군 대령)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15일 통화에서 “군 형법상 항명은 상관의 정당한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라며 “당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했던 명령은 정당하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이어 “내가 한 것이 항명이었다면 육군교도소에 갔겠지만 (나는) 정상 전역했다”며 “나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라고도 했다.
민 전 부대장은 박근혜 정부 때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만든 ‘계엄령 검토 문건’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된 2018년 7월, 그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섰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이 문건을 촛불 시민을 무력진압하려는 계획으로 인식했다. 문 대통령은 헌정 중단을 노린 국기 문란 사건이라며 합동수사단 구성까지 지시했다. 이런 가운데 민 대령은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송 장관이 ‘법조계 문의 결과 (그 문건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송 장관은 바로 반박했다. “완벽한 거짓말”이라고. 국방부 당국자들이 참석하는 간담회에서 자신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이날 “36년째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의 명예를 걸고 답한다”는 민 대령과 “대장까지 마친 내가 거짓말을 하겠느냐”는 송 장관이 벌인 공개석상 진실 공방은 군 역사상 초유의 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에 앞서 한 언론에서 송 장관이 해당 발언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고 송 장관은 “그런 적 없다”는 내용을 담은 사실관계확인서를 만들어 당시 간담회 참석자들로부터 서명을 받았다. 이때 유일하게 서명을 거부한 이가 민 대령이었다. 이런 기무사와 송 장관 측 갈등은 국회에서 ‘공개 폭발’했고, 일각에선 군이 바닥까지 추락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당시 엄청난 파장을 일으킨 계엄령 검토 문건 폭로 사태와 그 2라운드 격인 송 장관 발언 등을 둘러싼 진실 공방은 다른 이슈들에 밀려 조금씩 잊혀졌다. 그해 9월 송 장관이 경질되고 사건에 관여한 이들이 하나둘 퇴장하면서는 지나간 일이 됐다.
그러나 최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송 전 장관을 피의자로 입건하면서 이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송 전 장관에게 적용된 혐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허위 서명을 사실상 강요한 혐의다. 당시 계엄령 검토 문건을 사실상 내란 음모 문건으로 규정한 문재인 정부와 정반대되는 발언을 했다는 보도 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서명을 강요한 것으로 공수처는 보고 있다.
당시 서명한 A 씨는 통화에서 “서명을 안 하는 건 자유지만 불이익은 책임 못 지겠다고 하는데 누가 서명하지 않을 수 있겠나”라고 했다. 또 “계엄령 문건 사건이 내 업무가 아니어서 송 장관 발언을 당시 귀담아듣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냥 서명한 것”이라는 증언들도 나왔다. 송 전 장관과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이들이 뒤늦게 당시 하지 못한 말을 이제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민 대령은 “만시지탄일 따름”이라면서도 “누군가에겐 다 지난 일이겠지만 내겐 어제 일어난 일 같다. 항명 프레임에 묶여 억울했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항명이 아니라 장관의 부하 된 도리로 양심을 포기하도록 강요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직언했던 것”이라며 “(이 사실관계확인서는) 향후 장관님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말도 당시 했었다”고 떠올렸다.
직권남용죄의 공소시효는 7년. 세월이 조금만 더 흘렀다면 시효가 지날 뻔한 혐의였지만 이제 공수처는 자체 인지 수사로 송 전 장관을 정조준하고 있다.
송 전 장관은 12일 당시 상황이 담긴 증거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휴대전화를 압수당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내사 단계에서 상당한 진술과 증거를 확보해 혐의 입증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송 전 장관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진 모른다. 다만 일각에선 ‘친위 쿠데타 계획’으로까지 규정된 당시 문건을 두고 군 당국이 연 2회 이상 연습하는 합동참모본부의 기존 계엄시행계획을 재편집한 수준이란 말도 나온다. 하필 이를 ‘군홧발’의 업보를 짊어지고 있는 만큼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기무사(옛 보안사)가 만든 탓에 오해를 눈덩이처럼 키웠다는 얘기다. 이 문건이 2017년 만들어진 ‘모종의 거사’ 계획으로 보기엔 허술하다는 점을 당시 송 장관이 누구보다 잘 알았을 텐데 장관직을 지키기 위해 무리수를 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민 대령을 두고 어쩌면 5년 뒤를 내다보고 그를 살리려 했던 가장 충직한 부하였을지도 모른다는 얘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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