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70대인 아빠가 왜 맛집 인스타그램에?
어린이·노인, 무례해서 싫다고?
몰상식부터 용납하지 말아야
사진 찍어 SNS 올린 사장 고마워
동생이 보여준 사진 속에 아버지가 있었다. 한 식당에서 돈가스를 먹고 있는 할아버지 두 명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 아래엔 ‘Daddy’s favorite’라는 문장이 붙어있었다. “아버지도 좋아하는 맛” 정도의 뜻일 게다. 외출할 때마다 쓰는 모자 덕분에 할아버지 중 한 명이 아버지라는 것을 바로 알아봤다. 출처는 한 돈가스집의 인스타그램 계정. 아버지가 왜 인스타그램에 나타난 것일까.
아버지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친구와 1만~2만원짜리 한 끼를 파는 ‘맛집’에서 점심을 먹는다. 아버지에게 추천을 부탁받을 때마다 을지로나 종로 어디쯤 있는, 김치찌개나 국밥을 파는 노포를 알려줬다. 아버지 또래 남자들의 입맛은 거기서 거기니까, 기왕이면 익숙하고 찾아가기 쉬운 동네로 안내하자는 속셈이었다. 최근에는 보청기를 껴도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청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식당 종업원과 메뉴 얘기를 많이 할 필요가 없는 곳이 좋겠다는 배려도 있었다.
딸이 알려준 을지로 ‘은주정’이나 북창동 ‘애성회관’을 제쳐두고 아버지는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의 한 돈가스집을 다녀왔다. 도산공원 주변 식당이 어떤 곳인가. 절기마다 새 옷을 갈아입듯이 트렌드를 따라 새 식당이 들어서고, 그곳을 ‘핫플’이라고 치켜세우며 사진(심지어 동영상까지)을 찍어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 올리려고 ‘MZ세대’가 한두 시간씩 줄을 서는 동네다. 도산공원의 사정을 알 턱이 없는, 그저 맛있는 돈가스가 먹고 싶었던 아버지는 포털 사이트 검색으로 이 식당을 발견했고, 지도 앱에 의지해 찾아갔다. 20~30대 손님들 틈에 섞인 채 30분쯤 기다려 자신의 차례를 맞았다.
만약 아버지가 식당 문을 여는 순간 ‘노시니어존(No Senior Zone)’ 안내문이 붙어있었다면 어땠을까. 괜한 상상이 아니다. 지난주 온라인에선 한 카페가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 제한’이라는 설명과 함께 ‘노시니어존’ 팻말을 단 게 화제였다. 노시니어존뿐이 아니다. 애들은 가라 ‘노키즈존’, 학생은 안 받아요 ‘노중딩(혹은 교복)존’, 래퍼 흉내내면서 바닥에 침 뱉지 마라 ‘노래퍼존’, 학생들 노는 데 꼰대질 금지 ‘노프로페서존’까지, 노○○존 전성시대다. 이 현상은 지난주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기사까지 났다. 노○○존에는 나름대로 자영업 사장님들의 고충이 담겨 있다. 무례하다든가, 더럽게 이용한다든가, 다른 손님에게 폐를 끼친다거나. 앞서 언급한 노시니어존 카페도 단골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에 따르면 혼자 장사를 하는 여자 사장을 “마담”이라고 부르며 희롱하는 ‘시니어’들 때문에 이런 조치를 취했다.
늙은이와 어린이, 래퍼와 교수를 막는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남자 종업원을 “자기”라고 부르며 희롱을 하는 30대 여성이 있을 수 있고, 아이들 못지않게 시끄러운 50대 커플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마다 ‘노30대여성존’ ‘노50대커플존’이라고 팻말을 붙여야 한다면 먼 훗날 카페와 식당에 드나들 수 있는 사람이 남아날까. 사과에 자그만 흠집이 생길 때마다 사과를 통째로 버릴 수는 없다. 일단 흠집만 도려내야 한다. 차라리 공공장소에서 성희롱을 하는 파렴치한뿐만 아니라 아이를 통제하지 않는 보호자나 서비스를 달라고 생떼를 쓰는 막가파를 쫓아낼 권한을 자영업자에게 주는게 어떨까. 그런 자들이 벌금형이든 공공장소 출입 금지든 행정·법적 처분을 받는 것도 좋겠다.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노○○존을 만들어 불특정 다수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것보단 나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가 공공장소의 무례와 몰상식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게 우선이다.
아버지가 찾아간 돈가스집은 ‘노시니어존’이란 팻말 대신 일흔이 훌쩍 넘은 남자를 ‘아버지’라고 부르며 사진을 찍어주는 사장이 맞아줬다. 이 글을 절반쯤 썼을 때 아버지에게 전화해 그날 무엇을 먹었냐고, 맛이 어땠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로스 가스를 먹었고, 진짜 맛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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