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1인분에 120g... 가격 안 올리는 대신 양을 줄였다
최근 서울 송파구 한 고깃집에서 친구와 저녁 식사를 한 회사원 김모(38)씨는 메뉴판을 보고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삼겹살과 목살은 1인분에 150g, 갈매기살은 1인분에 130g, 항정살은 1인분에 120g이라 적혀 있었다. 1인분의 가격은 모두 1만6000~1만7000원으로 비슷했지만, 중량은 제각각인 것이다. 김씨는 “비싼 고기라고 배가 더 부른 것도 아닌데, 1인분 중량이 다른 건 이해할 수 없다”며 “비싼 부위 고기를 싸게 보이게 하려는 꼼수 같았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이 고깃집의 ‘고무줄 1인분’ 때문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식당별로 내놓는 1인분이 천차만별인 것이다. 과거와 비교하면 최대 절반 이상으로 양이 줄다 보니,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선 ‘이게 과연 성인 한 사람이 먹는 양이 맞는 거냐’는 불평이 나온다. 최근 고기 가격이 오르자, 이런 현상은 더 극심해지고 있다. 반면 식당들은 “고깃값은 오르는데, 가격은 올리지 못해 결국 궁여지책으로 메뉴판의 ‘1인분 중량’을 조절하는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고물가에 계속 줄어드는 1인분
현재 정부나 공공기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1인분 중량’의 기준은 없다. 고기 1인분 가격과 ‘100g당 가격’을 병기하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식당별로 1인분이 다르고, 또 식당 안에서도 부위별로 1인분 양이 다른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문제는 갈수록 고깃집 메뉴판의 1인분 중량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보통 ‘200g=1인분’이 일반적이었지만, 5년여 전엔 150g, 최근엔 130g, 120g을 1인분이라고 써 붙이는 곳까지 생겨나고 있다.
고깃집들의 1인분 중량 줄이기는 사실상 ‘꼼수 가격 인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통계청의 가격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삼겹살 외식비 ‘1인분 가격’(표기용)은 2014년 1만1988원에서 올해 1만6026원으로 9년간 4038원 올랐다. 중량은 고려하지 않고 ‘1인분 가격’만 조사해 평균 낸 값이다.
식당별로 제각각인 1인분 중량을 200g으로 환산해 통일했더니, 같은 기간 가격은 1만3985원에서 1만9168원으로 5183원 올랐다. 메뉴판의 1인분 가격 인상 폭보다, 실질적인 인상 폭이 약 1000원 더 컸다.
고깃집의 1인분 중량 줄이기는 물가 상승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고깃집도 메뉴 가격을 크게 올리고 싶지만, 손님이 다 떨어져나갈까 싶어 그러지 못하고 1인분 중량을 줄여 ‘가격 인상’ 효과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20년 경력의 한 식당 업주는 “삼겹살처럼 서민들이 즐기는 고기는 ‘1인분에 2만원 이상은 못 낸다’는 생각이 사람들 머리에 강하게 박혀 있다”며 “고깃집 주인들이 적당한 가격을 먼저 정한 후에, 그에 맞춰 1인분 중량을 조절한다”고 했다.
◇부위별로도 1인분 양 제각각
일부 식당에선 부위별로 1인분 표기 중량을 달리하기도 한다. 소고기 등심은 1인분에 150g, 상대적으로 더 비싼 제비추리 등 특수부위는 120g을 1인분으로 정하는 식이다. 그렇게 해야 고객들이 비싼 부위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강동구 한 고깃집 사장은 “손님이 언뜻 보기엔 1인분 값이 비슷하니, 평소 잘 접하지 못한 비싼 부위를 시키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일종의 판매 전략”이라고 했다.
들쑥날쑥한 ‘1인분 중량’에 대해 고객과 식당 간에 갈등을 빚는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100g당 가격’을 1인분 표기 가격보다 먼저 표시하도록 하거나 더 눈에 잘 띄게 하는 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이성림 성균관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경우, 고기 양과 질을 그대로 유지하고 가격을 올린다고 공지해야 한다”며 “고객들에게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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