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의 인물과 식물] 다이애나와 물망초
찰스 3세 시대가 막을 열었다. 영국의 국왕 대관식이 지난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됐다. 찰스 3세는 낮은 자세의 왕을 자처했지만, ‘21세기에 왕이 웬 말이냐’는 군주제 폐지 여론도 만만치 않다. 가족이 해체되기까지 하는 판국에 아직도 왕을 모셔야 한다니, 모두가 수긍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찰스 국왕 옆에 다이애나가 함께했다면? 그간 왕실에 대한 영국인의 긍정적 평가는 대부분 다이애나에 대한 신뢰와 지지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서민의 친구 같던 그의 성정과 풍격을 감안하면 군주제도 조금은 달리 생각되었을 것이다. 영국 작가 힐러리 맨텔은 “그 자체로 아이콘이었던 다이애나가 세상을 떠나면서 왕실에 새로운 현대식 군주제를 선물했다”라고 했다. 군주제 폐지의 위협으로부터 왕실을 구한 것도 그였다.
부끄러워 금방이라도 달아오를 듯한 그의 표정 속에 천진과 열정이 동시에 배어 나오는 듯하다. 수줍은 듯하면서도 속내를 분명히 밝히는 강건함이 숨어 있다. 다이애나는 에이즈 환자를 만나거나, 지뢰 폭발로 다리를 잃은 흑인 소녀를 무릎에 앉히는 등 사회적 약자를 진심으로 감싸 안았다. 가식이나 연출 없는 자연스러움 속에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던 그의 언행은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2021년 7월, 살아 있다면 환갑이 되었을 어머니를 위해 윌리엄과 해리는 가족들이 살았던 켄싱턴 궁전의 선큰 가든에 그의 동상을 세우고 작은 정원을 조성했다. 3명의 어린아이를 품 안에 거느린 그의 동상은 ‘서민들의 왕세자빈’이었던 그의 심상(心相)을 보여준다. 정원에는 그가 평소 가장 사랑했던 물망초를 중심으로, 장미·튤립·달리아·라벤더 등으로 꽃밭을 장식했다.
물망초는 꽃잎이나 잎사귀가 매우 작고 앙증스럽다. 쉽게 눈에 띄지 않고 유심히 살펴야 자신을 드러낸다. 마음속에 온기가 없는 사람은 사랑하기 쉽지 않은 꽃이다. 햇빛이 직접 비추는 곳보다 반그늘과 다소 서늘하고 촉촉한 땅을 좋아한다. 물망초의 생태도 그의 성품을 닮았다. 진실한 사랑과 존경을 상징하는 물망초. 누군가가 이 작은 꽃을 선물할 때는, 당신이 항상 그것을 기억하고 간직하라는 메시지이다.
다이애나는 자신의 운명을 알았던 걸까. 물망초의 영어 이름은 ‘forget me not(나를 잊지 마세요)’. 그의 물망초에 대한 화답으로, 아직도 많은 영국인은 외치고 있다.
“우리의 여왕은 다이애나.”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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