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K영화, 눈덩이 효과 생각할 때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2023. 5. 1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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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대중문화 평론가)

장대한 '어벤져스' 시리즈의 시작은 초라했다. 2008년 영화 '아이언맨'(Iron Man)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생소한 배우로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고 말썽꾼에 가까웠다. 따라서 배우의 티켓파워는 기대가 없었고 낯선 소재와 배우에 비해 익숙한 것은 영화에 PPL로 나오는 한국산 제품들이었다. 토니 스타크의 휴대폰은 LG 것이었고 대형 TV 같은 전자제품은 삼성이었다. 당시 마블의 상황은 매우 어려웠는데 한국 기업이 가뭄에 단비 역할을 했다. 이런 배경하에 미국보다 한국에서 먼저 개봉했지만 한국 방문 행사는 눈에 띄지 않아 흔한 레드카펫 행사도 없었다.

하지만 영화 '아이언맨'은 2008년 북미 흥행수익 2위를 기록했고 영화 '다크 나이트'의 417만명을 넘어 430만명으로 당시 국내 최고 외화 흥행작이 됐다. 매우 친숙한 흥행 캐릭터 배트맨을 낯선 아이언맨이 이겨버린 것이다. 이후 한국에서 '어벤져스' 시리즈는 계속 흥행 최고였고 마블은 한국 촬영을 추진해 보답했다. 그런데 '어벤져스' 시리즈는 그 뒤 다양한 캐릭터가 변주해 등장하는 마블유니버스를 구축했지만 처음 '아이언맨'을 제작할 당시에는 그럴 의도가 없었다. 심지어 여러 히어로 캐릭터 가운데 아이언맨을 주인공으로 삼은 이유는 단지 설문조사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마중물과 스노볼(snow ball) 효과에 관한 주목이다. 영화 '아이언맨' 제작진은 마블의 캐릭터를 장대하게 구성할 계획을 전제하고 투자금을 미리 유치하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은 영화 '아이언맨'의 성공이 마중물 역할을 했고 이를 바탕으로 확장된 세계관 구축이 가능하게 했다. 이른바 눈덩이 효과의 전형이 됐다. 작은 눈 씨앗이 점점 더 큰 눈덩이가 돼 가늠할 수 없는 규모가 됐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글로벌 콘텐츠업계에 산사태를 일으켰다. 사실 이런 방식은 최근 영화 '존윅4'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3'의 사례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스마트 모바일 환경이 일반화하면서 눈덩이 효과는 더욱 커졌다. 볼 만한 작품은 SNS나 OTT를 통해 얼마든지 입소문으로 팬덤을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러한 현상에 작용하는 원리를 간과한다. 어느새 한국은 원소스멀티유스를 당연히 전제하는데 성공을 예측할 수 없음에도 미리 재무전략을 구축한다. 달걀이 아직 병아리가 되지 않았는데 이미 고래등 같은 기와집을 올린다. '이순신' 3부작 시리즈는 물론 영화 '외계+인'은 1편과 2편을 한꺼번에 제작을 발표했다. '한산'은 선방했지만 '명량'에 비해 턱도 없었고 '외계+인'은 새로운 시도와 작품성과 관계없이 폭망했다. 여전히 스타감독에 인기배우, 흥행코드에 대규모 제작비, 마케팅 비용으로 처음부터 블록버스터영화를 통해 승자독점 방식을 취한다. 영화 '비상선언'의 사례도 전형적이었다. 이는 당연히 멀티플렉스 시스템과 불가분의 관련성이 있다. 멀티플렉스 블록버스터 공식 같은 공급자 방식의 제작·공급·소비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면서 무너졌다. 아무리 스타 캐스팅이라도 관객의 팬덤니즈에 맞지 않으면 찾지 않는다. 시각적 특수효과의 경험이라도 OTT만큼의 트렌디함이, 적나라함이 없다면 선택하지 않는다. 여기에 코로나19로 인한 영업손해를 관람료 인상에 반영한 결정은 관객의 반감을 샀다. '범죄도시3'도 한국 특유의 우려먹기 방식이 우려된다. 해법은 다양한 시도 속에 블록버스터 제작·유통·소비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육사오'처럼 신예배우, 감독, 작가들에게 기회를 주고 제작비를 손익분기점 관점에서 실질화해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콘텐츠는 깊이 보기와 넓이 보기를 동시에 수행하는 관객의 눈높이에 철저하게 서번트돼야 한다.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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