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덕의우리건축톺아보기] 경복궁과 창덕궁
정형화된 위엄·왕실 권위 ‘모범생’
창덕궁, 산세·지형에 맞춘 ‘개성파’
베일 벗은 고려궁궐 만월대와 닮아
현재 서울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궁궐은 경복궁과 창덕궁이다. 경복궁과 창덕궁은 불국사 석가탑과 다보탑만큼이나 동시대 작품이면서 대조적이다. 흔히 석가탑의 간결함을 남성미에, 다보탑의 섬세함을 여성미에 빗대는데 경복궁의 정형성과 창덕궁의 자유분방함도 이에 못지않다.
창덕궁은 제3대 임금인 태종 이방원이 1405년 개경에서 한양으로 다시 서울을 옮기면서 세운 궁궐이다. 실록에서 창덕궁을 이궁(離宮), 즉 유사시에 사용하는 궁이라고 했다. 이방원은 왕자의 난을 일으켜 실권을 잡은 후 둘째 형을 제2대 왕인 정종으로 추대했고 정종은 한양의 지세가 좋지 않다며 다시 개경으로 수도를 옮겼다. 이후 이방원은 왕권을 노리던 바로 위 형 방간을 몰아내고 정종으로부터 양위받아 왕위에 올랐다.
조선에서 공식적으로 법궁은 경복궁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창덕궁이 주로 사용되었다. 태종은 왕자의 난으로 골육상쟁을 겪은 경복궁에 아예 가지를 않았고 다른 임금들도 경복궁보다는 창덕궁을 선호했다. 정형화된 경복궁이 위엄을 갖춘 관복과 같다면 산림이 우거지고 곳곳에 계곡물이 흐르는 창덕궁은 편안한 일상복과 같아 살기 편했기 때문이다. 1592년 임진왜란으로 서울의 모든 궁궐이 불탄 후 광해군 때 궁궐을 복구하면서 경복궁은 버려두고 창덕궁을 택했는데 규모를 고려한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정서적인 면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의 70% 이상이 산으로 되어 있어 조상 대대로 산과 인연을 맺으며 살아왔기에 산자락에 집을 짓고 생활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유교적 법식에 따른 경복궁은 평지인 데다 정형화된 긴장감이 있어 산에서 사는 데 익숙한 유전인자를 가졌던 조선 사람에게 편치 않았다. 기록이 없어 알 수는 없지만 태종이 한양으로 수도를 다시 옮기면서 창덕궁을 세웠을 때 개경에 있었던 고려 궁궐터 만월대를 염두에 두었을 법하다.
나는 2005년 1월부터 2006년 12월까지 창덕궁에서 근무하는 행운을 누렸는데 경복궁과 너무나 대조적인 창덕궁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늘 궁금했다. 그러던 차에 2007년 나는 개성 만월대를 방문하고 무르팍을 쳤다. 만월대에서 창덕궁의 뿌리를 발견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 문화재청 국제교류과를 맡고 있어 만월대에 대한 남북공동 발굴을 협의하러 그곳에 갈 기회가 있었다. 만월대는 고려의 궁궐이 있던 자리를 일컫는 이름인데, 개성 송악산 남쪽 산비탈에 넓게 펼쳐져 있어 꼭 창덕궁이 앉은 자리와 닮았다. 고려 궁궐은 고려 태조 2년(919) 창건된 후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침입으로 불타 폐허가 되고 만월대만 남겼다.
2007년부터 남북이 공동으로 고려 궁궐의 모습을 밝히기 위해 만월대에 대한 고고학적 발굴을 시작했다가 2015년 남북 관계가 경색되어 남북공동 발굴이 중단되었다. 문재인정부 초기 소위 ‘한반도의 봄’ 기운을 타고 다시 발굴을 재개하였으나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가 경색되자 또다시 발굴이 중단되고 말았다.
만월대가 발굴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고려 궁궐의 모습이 조금씩 드러났다. 아직 조금밖에 그 모습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것만으로도 고려 궁궐이 산비탈에 자리 잡은 ‘산중 궁궐’ 창덕궁의 원조라는 것이 확실해 보인다.
최종덕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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