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벌 제대로 알리려고” 전국 누비는 벌 덕후들
탐사활동 하며 시민 대상 강의
애니 ‘라바’ 등 묘사 오류 지적도
“먼저 공격 안 하면, 벌침 안 쏴요”
국내에는 4390종(2021년 기준)의 야생벌이 존재하는데, 돌보는 사람이 있는 꿀벌을 제외한 나머지 벌을 야생벌이라고 분류한다.
‘벌볼일있는사람들’(벌볼사)은 전국 곳곳에 있는 다양한 야생벌을 찾아다니는 ‘벌’ 덕후들의 모임이다. 벌을 연구하는 학자부터 곤충을 좋아하는 대학생 등 8명이 벌을 관찰하고 기록한다.
서울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서 지난 13일 벌볼사 구성원인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이자 꽃벌 연구가 이흥식 박사(55)와 10년 이상 벌을 관찰해온 시민과학자 조수정씨(49), 곤충 생태 전문가이자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강의영씨(67)와 오흥윤씨(69)를 만났다.
이들은 2017년 전문가와 함께하는 한 시민 생태체험에서 처음 만났다. 벌이라는 공통 관심사로 금세 가까워진 이들은 2018년 9월 ‘함께 벌을 보러 가자’며 모임을 결성했다. 이후 2019년부터 매달 전국 곳곳의 수목원과 산 등으로 벌 탐사를 다니고 있다. 조씨는 “평생 벌과 곤충을 무서워했는데 자기 일을 하느라 바쁜 벌의 모습에 관심이 생겨 관찰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벌의 생태를 관찰하고 사진과 문서로 기록을 남긴다. 수집한 자료는 각자의 분야에서 연구자료로 활용하거나 필요한 연구자에게 제공하기도 한다. 강씨는 “모임에 벌 전문가부터 식물 전문가, 사진작가까지 있으니 모르는 건 서로 물어볼 수 있어 좋다”며 “벌을 조사할 때도 각자 잘하는 분야를 맡아서 기록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벌 관찰 외에도 지난해에는 사회적협동조합 한강의 ‘샛강놀자’ 공모사업에 선정돼 시민들을 대상으로 ‘벌’ 관련 강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도심에 야생벌들의 집을 만들어주자는 ‘비하우징(Bee-Housing)’ 활동도 하고 있다. 샛강생태공원 내에 벽돌과 대나무를 활용해 벌집을 설치하고 이를 정기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서울환경연합과 함께 이달부터 시작하는 ‘야생벌 시민조사단’ 역시 벌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시민들을 돕자는 취지에서다. 이들이 시민 대상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는 이유는 막연하게 ‘벌이 무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함이다. 미디어에서 공격적이고 위험한 모습으로만 노출되는 벌을 제대로 알려주고 싶어서다.
각종 곤충 관련 다큐멘터리 자문을 맡으며 가까이에서 벌을 촬영해온 강씨와 오씨는 “사람이 먼저 공격하거나 그들의 주거지를 침범하지 않으면 벌이 먼저 쏘는 일은 없다”고 했다.
강씨는 최근 수리산자연학교에서 곤충 수업을 하던 중 한 초등학생이 손바닥에 벌을 올려놓고 놀던 모습을 떠올렸다. “무섭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수컷 벌은 침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생태나 특징을 조금만 알아도 벌을 보는 시각이 달라질 수 있어요.”
조씨는 아이들 대상 강의에서 애니메이션 속 벌과 관련해 잘못된 묘사를 지적하며 사실을 바로잡곤 한다.
“<곰돌이 푸>에서 푸가 꿀을 먹기 위해 나무에 매달린 벌집을 따오는데 그 형태를 보면 말벌집이에요. <라바>에 등장하는 꿀벌집 역시 말벌이나 쌍살벌 집 형태로 그려져 있어요. 말벌은 꿀을 모으지 않는데 전형적인 벌집 이미지만 생각해서 잘못 표현된 거죠. <꿀벌 대소동>에는 꿀벌 세계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수컷 꿀벌이 등장하는데 꿀벌 세계에선 암컷만 일해요.”
벌볼사 자체 프로젝트도 있다. 현재 벌목 중에서 유일하게 멸종위기2급으로 지정된 ‘참호박뒤영벌’을 찾아 관찰·기록한다. 이들은 앞으로도 꾸준히 벌을 조사해 의미 있는 자료를 구축하고 각자 또는 함께 논문과 학술활동, 벌 도감 등을 출간할 계획이다.
이 박사는 “도시에 꽃은 많지만 벌을 보기 어려운 건 개발로 벌이 살 만한 환경이 사라지고, 아파트나 공원 등에 벌레 잡는 약을 수시로 뿌리기 때문”이라며 “주변에서 벌을 봤다면 농약 대신 벌들이 해충을 사냥해서 식물들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벌을 너무 무서워하지 마시라”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진주 기자 jinj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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