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넘어서, 손을 잡아봐…그게 다 너의 세계가 될 테니까[김유진의 구체적인 어린이]
초연결 시대, 오히려 개인은 흩어지고 고립되는 ‘외로운 세기’…날 때부터 그랬던 세대의 관계 맺기는 생소할 수밖에
온라인·오프라인 두 세상에서 ‘무엇이 진짜 친구의 모습인가’ 구분짓지 말고 더 많은 사람과 이어지기를
오해·편견 걷어내고 서로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을 찾아낸다면, 사회는 더 단단하고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
저명한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는 <고립의 시대>(웅진지식하우스, 2021)에서 초연결 시대인 현재를 ‘외로운 세기’라고 진단한다. 그가 명명한 ‘외로운 세기’는 물리적(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 했던 코로나 상황에 국한되지 않는다. “‘외로운 세기’는 2020년 1분기에 갑자기 시작되지 않았”으며 “코로나19가 닥칠 즈음 우리 대다수는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외롭고 고립되고 원자화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12면)고 말한다. 이 책에서 그는 우리가 외로워진 이유를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라는 특정한 정치 기획”(366면)으로 분석하고, 이와 다른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로운 세기의 해독제는 궁극적으로 우리가 서로를 위해 있어 주는 것일 수밖에 없다. 상대가 누구라도 상관없이 말이다. 흩어져 가는 사회에서 우리가 하나가 되고자 한다면 이것은 최소한의 요구이다”(394면)라고 전망한다.
코로나19 이후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을 모색하는 동화와 청소년소설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하는 듯 보인다. 코로나19 시기 고립됐던 어린이와 청소년을 돌아보며 문학 작품 안에 담아내는 일 그리고 그들에게 다시 주어져야 할 세계와의 연결을 섬세히 짚어보는 일. 고립에서 연결로 나아가는 길을 탐색하는 최근 아동문학의 작업은 노리나 허츠가 ‘외로운 세기’를 넘어서자고 하는 시대적 요청과도 같다. 그러므로 아동문학이 연결이라는 주제를 모색하는 건 코로나19 상황에서 발생한 한시적 고립만이 아닌 ‘고립의 시대’를 살아가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삶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요즘 어린이나 청소년이 타인이나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을 사회성이 떨어진다거나 온라인 세계에 매달려 있다는 등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시선은 여기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나무라고 교육하려 들 게 아니라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지 제대로 보는 게 먼저다. 기성세대와 달리 어린 시절부터 ‘외로운 세기’를 살아온 그들이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단절 혹은 연결되는 걸 알고 이해하는 게 우선이다. 원자화된 채 떠도는 세계에서 서로 끌어당기는 힘의 가능성을 찾아낼 때 코로나19의 단절과 이후의 연결도 더욱 단단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소설 <우리의 정원>(사계절, 2022)에는 열일곱 살 정원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양쪽에서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만 하나둘 생겨난 관계들로 세계를 확장해가는 모습이 잘 담겨 있다. 청소년들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세계에서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과 연결되는 과정이 면밀하면서도 섬세하게 그려진다. 여느 작품에서 그랬듯 온라인 세계를 두고, 왜곡되고 이중적인 자아로 변하는 공간이나 온갖 해프닝이 현실 세계로까지 번지는 골칫덩이로 접근하지 않는다.
정원은 반 친구 혜수와 함께 점심을 먹지만 혜수를 다른 아이들보다 잘 알지도 못하고 “서로에 대한 어색한 배려심으로만 삐거덕삐거덕 나아가는 관계”(29면)라고 느낀다. 이에 비해 트위터 친구 달이와는 아이돌 그룹 에이세븐의 ‘덕질 메이트’로 친밀감을 갖는데 어느 날 달이의 계정이 사라지고 달이가 팬카페에도 들어오지 않자 관계가 허무하게 끝나고 만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세계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관계의 결핍을 겪게 할 뿐이다.
게다가 두 세계를 오가며 관계의 갈등과 균열은 더욱 심해진다. 정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검색해 혜수의 계정을 찾아내고 혜수가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이 있단 걸 알게 되자 서로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관계는 더욱 허울뿐이라 여긴다.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들, 감정을 가장 많이 건드리는 것들”(112면)이 담겨 있는 SNS에서의 자신이 진짜 자신이라고 생각하기에 더욱 그렇다.
정원은 SNS에서 친구가 되지 못한 두 사람이 오프라인에서 친구로 지낼 수 있을지 의문하며 학교 상담 선생님께 말한다. “좋아하는 게 같아야 금방 친해지고, 다르면 친해지기 어렵잖아요. 각자가 몰두하는 것들로 서로 구분 짓고 서열까지 만들어요. 뭘 좋아하는지, 취미랑 관심사가 뭔지, 그런 게 그 사람을 결정짓고 알려준다고 생각해요.”(113면) 타인에게서 공통점을 발견하며 느끼는 친밀감으로 관계를 시작해야 유지하기 쉽다는 것과 좀 다른 뜻이다. ‘취향공동체’에 자신을 투영하고 규정하기까지 하는 문화를 간명히 정리하는 동시에 성찰하는 여지를 남겨둔다. 좋아하는 게 같아야 한다고 하는 정원의 말에는 그 말을 스스로 배반하는 어감이 비친다.
그러던 정원은 “혜수가 트위터에서 보여 주는 모습은 혜수의 가장 내밀한 한 부분일 뿐, 혜수의 전부는 아니다”(169면)라고 생각하며 온라인과 오프라인 두 세계에서 일어나는 균열을 통합한다. 오직 하나의 정체성으로 상대를 규정하지 않는 관계는 혜수를 포함해 다른 또래 친구들, 학교 상담 선생님, 지역 사회의 어른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에이세븐 ‘덕질’로 아이돌이 읽는 책을 따라 읽던 친구들과는 이제 각자 흥미 있어 하는 책을 읽고 공유하는 독서모임 멤버가 되었다. 학생들이 흘리지 못한 눈물까지 눈여겨보는 상담 선생님은 반려동물 고양이 때문에 엘리베이터에서 훌쩍거리는 이웃 주민이다. 쿠쿠 책방 부부는 책과 고양이를 나란히 아끼고 돌보며 이 사랑을 주변과 나눈다. 독서모임 친구인 지은이가 “책 속에는 미운 사람들이 없어” “뭘 해도 밉진 않아. 그래서 좋아. 마음이 편안해져”(100면)라고 말하는 바로 그 사람들 같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계가 겹치며 삐걱대는 가운데서도 결국 또렷이 마주하게 된 혜수, 아이돌 ‘덕질’이라는 취향공동체로 시작했지만 교집합에만 머무르지 않은 친구들, 이웃 청소년에게 동등한 친구로 다가와 새로운 세계를 보여준 어른들…. 정원은 이들과 만나며 비로소 관계의 두려움을 벗고 관계에서만 가능한 희망을 꿈꾸기 시작한다.
“글과 이야기, 동물과 환경, 그런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세상을 그려 보았다. 서로를 단정 짓고 구분하는 게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이어지기 위한 세상,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잔잔해졌다.”(180면)
청소년소설 앤솔러지 <하면 좀 어떤 사이>(낮은산, 2023) 역시 청소년이 타인과 관계 맺고 세계와 연결되는 다양한 모습을 주제로 묶었다. ‘효리와 유진 사이’ ‘헤어질 수 있는 사이’ ‘우리가 안 본 사이’ 등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한다. 표제작인 허진희의 ‘하면 좀 어떤 사이’는 모든 관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부정적 감정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태도를 알려준다. “좋아하다가 부러워하고, 그러다가 질투하고, 이런 감정들 사실 다 한 끗 차이 같지 않아?”(167면) ‘질투 좀 하면 어때, 친구끼리 질투할 수도 있고 그런 거지, 그래도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김중미의 ‘프렌드와 시스터 사이’는 ‘프렌드’와 ‘시스터’라는 단어를 빌려와 조금씩 다른 색깔로도 이어지는 관계를 모색한다. ‘프렌드’로 매이지 않아도 ‘시스터’로 함께하는 관계는 개인 사이의 연결 너머 사회적 연대의 상상력을 부른다. ‘느린 학습자’인 아영이 학교폭력을 당하는 걸 목격하고 가해자와 맞선 하율은 자기한테 왜 잘해 주냐는 아영의 질문에 “정의를 실현한 것뿐”(85면)이라고 대답한다. ‘정의’는 사회적 약자인 아영에게 연대로 확장될 가능성을 지닌다. 하율은 아영과 ‘프렌드’가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너는 내 마음을 모르니까. 티키타카가 안 돼서 재미가 없어”(91면)라며 서운하리만치 분명하게 규정한다. 하지만 “우리는 프렌드든, 시스터든 그냥 같이 살아갈 거”(93면)라는 하율의 말은 올바름을 지향하는 작품 의도까지 지나오며 ‘프렌드’보다 더 든든하고 진심 어린 약속으로 들린다.
청소년소설 <저희는 이 행성을 떠납니다>(비룡소, 2023)는 연결과 연대에 필요한 돌봄의 감수성을 청소년 독자에게 전한다. 10대에 부모가 된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TV 프로그램처럼 작품 속 원호와 나래는 길 잃은 외계인 아기 보보의 집을 찾아주려고 종횡무진 하면서 잠시 아기의 보호자가 된다. 보호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면서 생존하는 아기라는 존재는 마찬가지로 취약한 존재인 인간이 상호 의존하는 관계에서만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작품 내내 일깨운다. 여전히 돌봄을 받는 존재로 그려져 온 청소년들이 난생처음 해 보는 아기띠를 둘러 안아주고, 패딩 점퍼로 감싸 찬 바람을 막아주고, 자장가를 불러주는 걸 보고 있으면 내가 그들과 함께 보보를 돌보는 듯 따듯해진다.
아기를 돌보는 원호와 나래에게서, 도덕 발달 연구로 저명한 캐럴 길리건이 <담대한 목소리>(생각정원, 2018)에서 소개한 ‘공감의 뿌리’(Roots of Empathy) 프로그램이 떠오른다. 캐나다에서 시작해 전 세계로 퍼진 이 프로그램은 아기가 방문하는 수업 이후 어린이들의 변화상을 보고한다. 아기 엄마가 생후 2개월에서 4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유치원부터 7학년 교실에 매달 세 차례 40분간 방문한다. 전문 강사가 동석한 자리에서 어린이들은 아기를 보며 아기의 기분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이는 나아가 자신과 타인의 기분을 이해하려는 발판이 된다. 아기 방문 수업 이후 거친 어린이가 웃고, 산만한 어린이가 집중하고, 수줍음 타는 어린이가 마음을 연다. 학교폭력이 현저히 줄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캐럴 길리건은 돌봄의 윤리가 “아이들의 복지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하는 진화적 필요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에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우리의 능력을 장려하는 한편, 인간성을 위험에 빠뜨리는 여러 관행에 대해 경고한다”(289~290면)고 말한다. 우리는 돌봄으로 쇠잔되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힘을 기를 수 있다.
이 작품에서 아기라는 존재가 불러낸 공감과 돌봄의 감수성은 그 아기가 외계인이라는 데서 감수성이 향하는 자리를 분명히 가리킨다. 민아가 외톨이인 나래를 두고 “세상에 윤나래와 비슷한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아이는 너무 달랐다. 마치 외계인처럼”(135면)이라고 회상하고, 외계인 거주 지역 관리인 할아버지가 “가까이서 지내 보면 알게 된단다. 외계인이나 지구인이나 결국 다 똑같고 사는 모습도 다 비슷하다는 걸 말이지. 하지만 다들 자기랑 조금만 달라도 거부감부터 가지니까…”(64면)라고 말하듯 외계인은 이 땅에서 소외되고 차별받는 이들을 함의한다. ‘프렌드’에서 ‘시스터’까지. 자매애라고 불러도 좋을 공감과 돌봄의 윤리가 청소년이 성장하는 가능성의 자리라고 말한다.
■김유진
아동문학평론가·동시인. 동시집 <나는 보라> <뽀뽀의 힘>, 청소년시집 <그때부터 사랑>, 아동문학평론집 <언젠가는 어린이가 되겠지>를 출간했고, ‘토닥토닥 잠자리 그림책’ 시리즈를 썼다.
아동문학 작품 속에서 어른과 어린이가 좀 더 자주 만나고, 좀 더 가깝게 이어지는 날이 올 수 있기를 바란다.
김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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