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등의 불’보다 뜨거운 여당 입김에…“원가 제대로 반영을”

박상영 기자 2023. 5. 15.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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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타는 한전·가스공사
냉방 수요 늘어나는 계절 정부가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조정안을 발표한 15일 서울 시내 한 건물 외벽에 에어컨 실외기가 설치돼 있다. 전기요금은 ㎾h(킬로와트시)당 8원, 가스요금은 MJ(메가줄)당 1.04원이 오른다. 조태형 기자
한전 수입 2조6606억 늘지만
1~3월 영업 손실만 6조 넘어
가스공사도 적자 해소 요원
산업부, 사실상 들러리 전락
전력 인프라 투자 등에 차질

정부가 약 한 달 반이나 미뤘던 2분기 전기·가스 요금 인상을 15일 단행했지만 한국전력과 한국가스공사의 적자를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근본적 해법은 전기·가스 요금을 연료비와 연동하는 것이지만, 여당이 요금 결정에 본격적으로 개입하면서 내년 총선 전까지 추가 인상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한전은 이번 요금 인상으로 전기판매 수입이 2조6606억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 1분기(1~3월)에만 6조1776억원의 영업 손실이 발생한 것을 고려하면 크게 부족한 규모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는 한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올해 전기요금을 kWh당 51.6원 올려야 한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1분기(kWh당 13.1원)에만 제때 요금을 인상했고 2분기에는 인상 시점이 늦어지면서 경영 정상화 시점도 늦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가스공사 역시 지난 겨울철 ‘난방비 대란’ 충격으로 1분기 요금을 동결한 데 이어 2분기(MJ당 1.04원)에는 소폭 인상하는 데 그쳐 적자난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부는 당초 가스요금을 올해 MJ당 2.6원씩 총 4차례에 걸쳐 올려야 가스공사의 경영 정상화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전은 지난 12일에 25조7000억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놨지만 전력 구입단가가 판매단가보다 높은 ‘역마진’ 구조 때문에 효과는 반감될 것으로 보인다. 올 1분기 kWh당 전력 구입단가와 판매단가는 각각 174.0원, 146.6원으로 여전히 역마진은 kWh당 27.4원에 달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최근 연료비 가격이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었음에도 여전히 평년보다 높아 2분기에도 2조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추가 요금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3분기와 4분기는 각각 냉방과 난방을 많이 쓰는 시기이고, 내년 1분기는 4월 총선 직전이기 때문에 향후 요금 인상은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이번 인상이 총선 전 마지막 요금 인상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이날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도 한전과 가스공사 재무상황을 고려하면 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면서도 “경제가 어렵고, 수출실적이 부진한 상황에서 향후 추가적인 요금 인상에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호현 산업부 전력혁신정책관은 올해 안 추가 인상 계획과 관련해 “현재로서는 예단하지 않고 있다. 국제 에너지 가격 동향, 에너지 공기업의 재무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요금 인상 결정에 여당이 주도권을 갖고, 산업부는 사실상 배제됐던 점을 고려하면 추가 인상은 어려워 보인다. 특히, 산업부는 요금 인상 지연 과정에서 박일준 제2차관 낙마에 이어 정승일 한전 사장까지 사퇴키로 하면서 내홍을 겪고 있다. 정부 부처 한 관계자는 “전기요금은 정부가 결정한다고 산업부 장관이 단언했지만 이미 체면을 구긴 상황”이라며 “전기요금 결정은 향후에도 당이 주도권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기요금에 연료비 등 원가가 반영되지 않는다면 전력망 운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데 비해 송전망 투자는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올봄 발전량을 강제로 줄이는 출력제어가 빈번히 이뤄지고 있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는 “한전 적자가 불어날수록 전력 인프라에 대한 투자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정전 등 전력망 운영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정치권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영 기자 s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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