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기사회생’…튀르키예 28일 결선

손우성 기자 2023. 5. 15.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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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49%로 1위…과반 실패

‘세기의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튀르키예 대통령 선거가 결선투표로 향하게 됐다. 대선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열세를 면치 못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예상보다 많은 득표율을 기록하며 기사회생했다. 반면 에르도안 대통령의 20년 장기 집권의 종식을 자신했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는 결선투표에서 대역전극을 노려야 하는 처지가 됐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인 최고선거위원회(YSK)는 15일 전날 치러진 대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49.40%,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44.96%의 득표율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제3후보인 시난 오안 승리당 대표는 5.20%를 얻었다. 튀르키예는 1차 투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으면 상위 1, 2위 후보를 놓고 결선투표를 진행한다. 결선투표는 오는 28일 열린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수도 앙카라 정의개발당(AKP) 당사에서 “튀르키예는 이번 선거로 또 한번의 민주주의 향연을 완성했다”며 “우리 조국이 두 번째 투표를 바란다면 이를 환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선은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에르도안 대통령 정치 인생 최대 위기로 꼽혔다. 25년 만에 인플레이션이 최대치를 찍는 등 경제 상황은 최악이었고, 지난 2월엔 규모 7.8 강진이 튀르키예를 강타하면서 안일한 행정력이 도마에 올랐다. 지진 발생 사흘 만에 처음으로 피해 지역을 찾아 “이렇게 큰 재난에 대비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해 뭇매를 맞았다. 여기에 2003년부터 무려 3차례나 총리직을 연임한 뒤 2014년 최초 직선 투표를 통해 대통령직에 오르고, 이후 개헌을 밀어붙여 최대 2033년까지 장기 집권의 길을 연 에르도안 대통령에 대한 염증이 폭발했다. 외신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평생 느껴 보지 못한 압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에르도안, 뚜껑 열자 예상 밖 선전…“야권, 수권능력 확신 못 줘”
14일(현지시간) 치러진 튀르키예 대선의 여야 후보인 정의개발당(AKP)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왼쪽 사진)과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가 수도 앙카라에 있는 당사에서 각각 지지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로이터UPI연합뉴스

20년 집권에 언론 등 친정부
지진 피해 컸던 ‘친야’ 지역
투표 못한 이재민들 속출
야권 “개표 불공정” 주장도

‘캐스팅보터’ 된 3위 오안
우파 성향으로 친에르도안

실제로 대선 직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은 줄곧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게 밀리는 양상이었다. 일부 조사에선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지지율이 50%를 넘겨 1차 투표에서 승패가 갈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에르도안 대통령은 과반에 가까운 득표율을 얻어내며 선전했다. 외신들은 그 이유로 야권이 신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현 야권은 너무 오랫동안 집권하지 못한 세력”이라며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권력을 잡았을 때 과연 어떤 통치가 이뤄질지에 대한 확신을 제공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대지진도 변수로 작용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애초 지진 피해가 컸던 동남부 지역에선 클르츠다로을루 대표 지지세가 뚜렷했지만, 실제 이들이 투표하지 못한 사례가 속출했다. 고향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대피한 이재민들이 선거 전 행정 주소를 옮기지 못해 사실상 투표권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20년 집권으로 방송과 신문, 정부 부처가 모두 친여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도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에겐 악재였다. 튀르키예 국영 TRT에 따르면 4월 한 달 에르도안 대통령의 방송 노출 시간은 32시간이었던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32분에 그쳤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선거 막판 가정용 천연가스 무료 제공, 조기 연금 수령, 석유 채굴 선언 등 선심성 공약을 대거 발표했는데, 이는 TV 전파를 타고 고스란히 유권자에게 전달됐다.

야권은 개표 과정이 불투명했다며 불복 가능성을 내비쳤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이날 공화인민당 당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 또한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했다”며 “우리는 결선투표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야당세가 강한 지역에서 개표가 의도적으로 지연됐고, 같은 투표용지가 11차례 개표되는 등 석연치 않은 일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가의 불확실성은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시선은 이날 3위로 고배를 마신 오안 대표에게 쏠리기 시작했다. 그를 지지했던 표심이 ‘캐스팅보트’가 됐기 때문이다. BBC에 따르면 오안 대표는 “며칠 안에 지지 후보를 결정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하지만 외신들은 그의 우파 성향을 고려할 때 대부분 표가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쏠릴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대선과 함께 이날 진행된 국회의원 총선거에선 정의개발당을 중심으로 한 집권 여당 연합이 49.6%의 지지를 얻어 324석 확보가 유력해졌다. 공화인민당이 이끄는 야권연합은 35.0%로, 211석 확보가 예상된다. 튀르키예 의회 전체 의석수는 600석이다.

한편 대선 결과가 혼전 양상을 보이며 튀르키예 리라화 가치는 급락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리라화 가치는 대선·총선 다음날인 15일 장중 한때 달러당 19.70리라를 기록했다. 이는 대지진 영향으로 달러당 19.80리라까지 떨어졌던 지난 3월 이후 최저치다. 이스탄불 증시도 요동쳤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탄불 증시는 개장과 동시에 6.38% 하락했고, 거래 중단을 위한 서킷 브레이커가 발동됐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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