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 센터 박지수의 ‘나의 공황장애 극복 일지’[창간특집]
여자 농구 국가대표 센터 박지수(25·KB)가 환한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박지수는 다음달 호주 시드니에서 열리는 2023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 아시아컵에 출전할 최종 엔트리 12인에 들어 15일부터 진천선수촌에 들어가 훈련을 소화했다. 2022~2023 여자프로농구(WKBL)에서 공황장애로 전력에서 이탈했던 박지수가 부진을 털고 국보 센터로서 위용을 되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3월 막을 내린 2022~2023시즌이 김단비(33·우리은행)의 시즌이었다면 지난 시즌은 박지수의 것이었다. 골밑 싸움은 물론 탁월한 시야를 바탕으로 한 박지수의 플레이는 탈 WKBL급이었다. 박지수는 팀의 정규리그, 챔피언결정전 통합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MVP)에 뽑혔다. 다음 시즌에도 좋은 활약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뜻하지 않은 공황장애의 벽에 부딪혔다. 지난해 FIBA 여자 월드컵 출전 명단에서도 제외됐다.
박지수는 시즌 중후반 다시 경기에 투입돼 봄농구의 희망을 살리려 했지만, 중지 골절로 시즌 아웃되는 불운을 겪었다. 팀은 5위로 처지며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냈을 박지수를 대표팀 소집 전인 지난 8일 서울 중구 정동공원에서 만났다. 밝게 웃는 모습에서 공황장애의 그늘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동안 어떻게 공황장애를 극복하며 경기력을 끌어올렸는지 물었다.
박지수는 지난해 7월 공황장애가 왔을 때의 느낌을 자세히 설명했다. 여느 때처럼 강원도 태백의 태릉선수촌 태백분촌에서 훈련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스마트워치로 보니 심박수가 엄청나게 올라 있어 덜컥 겁이 났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체육관 밖으로 나가 누워 있는데 팔다리까지 저리고 전기 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온 몸이 마비되듯이 얼어붙고 손가락이 구부려지지도 않더라고요. 계속 쉴 수는 없어서 다시 운동을 해보겠다고 했는데 들어가자마자 다시 그 느낌이 온 거예요. 그 이후로 119 앰뷸런스에 실려갔죠.”
그 다음부터는 식당 등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공간에 들어가는 데 두려움이 생기면서 집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게 됐다. 공황장애 치료 초기 의사의 조언에 따라 운동을 쉬고 휴식을 취하며 산책을 하던 중 길가에 쓰러지는 일도 벌어졌다.
최고의 순간에 찾아온 불행이었다. 박지수는 “어쨌든 제 몸 상태가 프로 데뷔 첫 시즌 때만큼 좋았는데 그렇게 돼서 무척 속상했다”면서 “운동을 조금이라도 쉬면 근육 상태가 가라앉는 것에 대한 부담이 컸고,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공황장애가 잘 낫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참고 경기를 뛰어보려고 했지만 의사가 말렸다. 초기에 잡지 않으면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여자 월드컵 출전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공황장애를 정신력이 나약한 사람에게나 찾아오는 병 정도로 생각하는 바깥의 시선은 그를 더욱 힘들게 했다. 공황장애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길항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과호흡 등 증상이 나타나는 병이다. 자율신경계의 오작동으로 벌어지는 문제로 의지 박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는 것을 제어하기 위해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운동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근육 부상 같은 건 쉬면 되지만 자율신경계는 제가 의식하지 않아도 계속 일을 하는 장기인 거고요. 제가 너희들 일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게 아니잖아요. 신체를 이완시키는 약을 쓰다보니 운동하기가 쉽지 않고, 이전 만큼의 경기력을 보여줄 수 없던 거죠.”
박지수는 더 과거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는 “돌이켜 생각해보니 2022년 4월에 통합우승하고 휴가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식은 땀을 흘리면서 숨이 안 쉬어졌는데 그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버스 바닥에 털썩 주저 앉다가 첫 번째 정류장에서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살면서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혹시 우승에 대한 부담감이나 스트레스가 원인이었을까. 박지수는 “원인은 없다. 자율신경계 오작동이고, 언제 증세가 발현될지 모르는 데다가 운동할 때마다 통증이 느껴져서 힘들다”고 말했다.
박지수는 통증이 느껴질 때마다 KB 김완수 감독에게 정확한 몸상태를 설명하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공황장애 증상이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전까지는 욕심때문에 경기를 뛰겠다고 했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경기력이 나오지 않았고, 팀도 부진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실의에 빠져 있던 박지수를 일으켜 세운 건 팀원들과 사랑하는 가족들의 변함없는 애정이었다. 그는 “벤치에 앉아 있는 게 너무 힘들었다”면서 “내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다쳐서 미안하다고 팀원들에게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히려 팀원들은 그의 정신력을 칭찬하며 북돋았다. 그는 “나는 내 멘털이 약하다고 생각했는데 (강)이슬 언니가 ‘넌 절대 멘털이 약하지 않아. 넌 너를 너무 몰라’라고 말해줬는데, 그러면서 내가 약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어머니는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다. 박지수는 월드컵 출전 선수 명단에서 빠지게 됐을 때 어머니 친구가 기사를 보고 어머니에게 통화해 “대표팀에서 일부러 빠지려고 그런 것 아니냐”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그는 “그때 어머니가 ‘절대 그런 거 아니다. 그런 식으로 말할 거면 전화 끊어라’라고 말하는 걸 봤어요”라고 전했다. 박지수의 어머니는 딸이 공황장애로 식사도 어려워 체중이 10㎏까지 빠졌을 때도 어린 아이를 돌보듯 쫓아다니며 밥을 먹였다. 박지수는 지금은 정상 체중을 회복했고, 근육도 더 붙어 운동하기 좋은 상태라고 말하며 웃었다.
팀원과 가족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지만 박지수를 구한 건 자기 자신이다. 박지수는 체육관에서 뛰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언젠가 배구장을 찾았는데, 그곳에서 자기가 농구를 정말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찾은 배구장에서 희망을 본 것이다.
“어머니 친구 아들이 뛰는 경기를 봤는데, 그 친구 경기를 보면서 빨리 농구가 하고 싶더라고요. 갑자기 그냥 나 빨리 팬분들 앞에서 시합하고 싶고, 환호도 듣고 싶고 세리머니도 하고 싶고. 그래서 그때 경험이 어떤 말보다 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박지수는 아시아컵에서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에는 올림픽 오륜기가 손목에 새겨진 그림이 있다. 국가대표로 뛴다는 것은 언제나 그를 설레게 하는 일이다. 그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여자농구 결승전에서 중국에 65-71로 져 은메달을 따냈다. 이번 아시아컵에서는 꼭 중국을 이겨보고 싶다.
다른 선수들과의 호흡도 기대했다. 박지수는 “안혜지 언니랑은 청소년 대표 때말고는 대표팀에서 뛰어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며 “혜지 언니가 워낙 시야도 좋고 패스도 잘해주니까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아시아컵을 계기로 경기력을 끌어올리고 새 시즌에는 다시 미국여자프로농구(WNBA)에 도전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밝혔다. 박지수는 지난해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와 계약기간 1년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WNBA를 한 시즌 쉬겠다고 발표했다.
박효재 기자 mann6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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