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여성 교향악단의 전쟁터 [만물상]
러시아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로 불렸다. 2차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이 870여 일간 이 도시를 봉쇄해 시민 100여 만명이 굶어 죽었다. 시민들이 항전을 이어가자 이 도시 출신인 쇼스타코비치가 교향곡 7번 ‘레닌그라드’ 작곡을 시작했다. 레닌그라드 라디오교향악단이 곡이 완성되기를 기다려 연습을 시작했지만 아사자가 속출했다. 그 때마다 연주를 할 줄 아는 군인과 시민들이 대신 악기를 들었다. 1942년 8월 9일, 목숨과 맞바꾼 곡이 마침내 울려 퍼지자 시민들은 눈물을 쏟았고, 세계는 나치의 만행을 규탄했다.
▶예술가에게도 싸워 지켜야 할 조국이 있다. 자원 입대한 쇼스타코비치가 소방 부대에 배속되자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불타는 소련 도시를 배경으로 그가 소방 모자를 쓴 모습을 표지로 제작했다. 음악으로 전쟁의 불을 끄고 싶어 했던 대 작곡가의 염원을 그렇게 응원했다. 80년이 흐른 뒤, 이번엔 러시아가 침략자가 됐다. 우크라이나의 많은 예술가가 러시아에 맞서 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필하모니도 그중 하나다. 남성 단원 대부분이 전쟁터에 나가면서 여성만으로 교향악단이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이 여성들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부인 젤렌스카 여사와 함께 조선일보가 개최하는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15일 내한했다. 연주회는 17일 서울에서 열린다.
▶체르니우치 필하모니가 내한하기까지 여러 난관을 뚫어야 했다. 때론 목숨마저 위험했다. 우크라이나 서부 국경에 있는 체르니우치에서 서울에 오려면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를 거쳐야 했다. 평소 같으면 차로 7시간이면 도착할 바르샤바까지 폭격 위험이 덜한 시간을 골라 조금씩 이동하느라 이틀이 걸렸다. 수도 키이우 등 각지에 흩어져 있던 일부 단원도 “서울행에 동참하겠다”며 위험을 무릅썼다.
▶2차대전 당시 소련은 독일의 침략을 규탄하는 세계 여론을 일으키려 부심했다. 세계 주요 국가에 교향곡 ‘레닌그라드’ 악보를 내보낸 것도 그런 이유였다. 나치 독일이 훼방 놓자 마이크로필름으로 제작해 중동과 북아프리카 사막을 우회, 감시망을 뚫었다. 런던 초연에 이어 뉴욕과 보스턴 등 미국 주요 도시를 돌며 60회 넘게 연주되자 소련을 돕자는 여론이 크게 일었다. 음악은 부드럽지만 그 속에 담은 염원은 강철처럼 단단하다. 체르니우치 필하모니의 여성 음악인들이 온갖 난관을 뚫고 서울에 온 이유도 음악의 힘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소망이 이루어지길 두 손 모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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