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선 약속도 중재도 무산된 간호법, 책임정치 위반이다
보건복지부가 15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공식 건의했다. 간호법 제정안은 16일 국무회의에 상정된다고 한다. 간호사의 근무환경·처우 개선을 위한 간호법 제정안은 국민의힘의 21대 총선 공약이자, 윤 대통령의 대선 약속이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책임정치 위반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오늘 대통령에게 재의요구 건의 계획을 보고드렸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월 간호사들과의 간담회에서 간호법 제정을 위해 힘쓰겠다고 언급했고, 원희룡 당시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간호법이 조속히 입법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후보가 직접 약속했다”고 확인했다. 대선 중에 중요한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한다. 이행이 어려울 경우 국민과 당사자들에게 자초지종을 밝히고 정중하게 사과해야 한다. 그게 정치인의 책임있는 자세다.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면서 공약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정부·여당은 대안 없이 갈등을 방치한 데 대해 깊은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간호법 제정안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인 지난해 5월1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이해당사자 간 갈등을 중재·조정할 시간은 충분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뒷짐만 지고 있다가 지난달 중재안을 내놨다. 그마저도 의사협회 이해만 대변한 것이어서 직역 간 갈등만 키웠다. 중재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스럽다. 내용적으로 봐도 ‘답정너’식으로 밀어붙이고 대립할 일이 아니다. 간호법에 규정된 간호사 업무는 현행 의료법에 규정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의사협회는 간호사 활동 영역에 지역사회가 포함돼 간호사의 단독 개원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하지만, 간호사 단독 개원은 의료법 개정 없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견강부회에 가깝다. 다만, 간호사의 노동조건에 대한 규정이 모호한 부분, 특성화고·간호학원에서 육성하는 간호조무사 자격의 고졸 제한 등은 보완 대책이 필요하다.
의료 현장은 일촉즉발 상황이다. 간호계는 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 진료지원간호사(PA) 업무 거부, 면허 반납 등의 단체행동을 예고했다. 의사협회 등 13개 의료단체는 간호법이 공포될 경우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국민 건강이 위협받는 의료대란이 벌어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최종 중재자로 남아야 한다. 16일 국무회의에서 책임정치에 중대 오점이 될 간호법 처리를 보류하고, 의료 직역 간 합의점을 찾는 노력을 포기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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