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갈매기 호텔
‘갈매기 호텔’이 지난 3월 잉글랜드의 작은 항구도시인 로위스토프트에 문을 열었다. 3개 동에 430쌍이 머물 수 있다. 주 고객은 발이 검고 작은 세가락갈매기다. 한국에도 겨울 철새로 들르는데, 1970년대 이후 기후위기와 먹잇감 감소로 개체군이 40%나 줄어들어 2017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 ‘취약’ 등급으로 올라있다. 호텔은 이곳 해상에 풍력발전 설비를 지으려는 민간전력사들이 지었다. 절벽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세가락갈매기의 서식이 교란될 것에 대비했다고 한다. 호텔이라지만 사실상 이재민 시설인 셈이다.
신재생에너지인 해상풍력발전은 해안에서 1㎞쯤 떨어져 있어 육상풍력보다 경관 훼손이나 터빈으로 인한 소음 피해가 적고, 대규모 단지 조성이 가능하다. 2035년까지 전 세계 설치용량이 현재의 10배 규모인 최대 504GW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도 최근 해상풍력 비중 확대 방침을 ‘국가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에 포함시켰다. 문제는 바닷새들이 겪는 영향이다. 터빈에 충돌해 죽는 조류 치사율이 3만마리당 1마리꼴이라고 한다. 거대한 ‘터빈 떼’가 철새의 이동경로를 가로막는다는 주장도 있다. 세가락갈매기처럼 해상에서만 먹이를 얻는 새들의 생존에 풍력단지는 큰 위협이 된다.
유럽에선 취약한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종민감도지수’(SSI)를 활용하고 있다. 얼마나 높이 나는지, 장애물은 얼마나 잘 피할 수 있는지 조류 종별로 정보를 모아 풍력발전으로 받을 영향을 평가한다. 단지를 지을 때 민감한 서식지를 피하고, 터빈과 터빈 사이엔 충분한 비행 공간을 두도록 한다. 새들의 눈에 잘 띄도록 터빈을 기존 흰색이 아닌 보라색으로 칠하고, 강한 저주파 경고음을 내서 새들이 돌아가도록 유도하는 방법도 있다.
한반도는 도요물떼새를 비롯한 다양한 철새들이 오가는 길목이다. 지구를 살리는 탄소저감도 중요하지만 생태계 보호도 잊어선 안 된다. 인천 앞바다 배타적경제수역(EEZ)을 비롯해 해상풍력 발전계획이 난립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구 반대편의 ‘갈매기 호텔’이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일깨우는 촉발제가 됐으면 한다.
최민영 논설위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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