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저출생 해법이라고?
기어코 하겠다고 한다. 고용노동부가 ‘외국인 가사도우미 도입 시범사업’ 계획을 상반기 중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고용허가제(비전문취업 비자) 대상에 ‘가사근로자’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서울시 100가구를 대상으로 시범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
정부와 서울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이 저출생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제도를 운영 중인 홍콩은 한국과 함께 세계 최저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을 다투고 있다. 싱가포르도 대표적 저출생 국가다. 백보 양보해 미미하게라도 효과가 있다 치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최저임금 대상에서 배제하는 내용의 ‘가사근로자법 개정안’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고용허가제에 의한 노동자는 최저임금을 적용받는다지만, 돈만 주면 다른 문제는 눈감아도 되나.
이주노동자는 ‘을 중의 을’이다. 고용허가제 규정상 고용이 해지되면 체류자격 자체가 위험해진다. 더욱이 가사노동자의 일터는 ‘사적 공간’이다. 국가가 공적 부담을 약자인 외국인 여성에게 전가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돌봄노동의 가치 절하도 문제다. 저출생·고령화 시대에 돌봄노동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국가는 돌봄노동자 처우를 개선해 양질의 노동이 원활하게 공급되도록 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이는 외면하고 국내 인력보다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를 도입하겠다는 건 노동의 값을 후려치겠다는 거다. 출산과 양육이 중요하다면서, 왜 돌봄노동에 제값을 치를 생각은 하지 않나.
정책 입안자들의 뇌구조를 들여다본다. ‘2022년 합계출산율 0.78명, 전 세계 꼴찌. 큰일 났다! 생산은 누가 하고, 연금은 누가 내지? 아이는 낳게 해야 하는데, 노동시간 줄여주고 육아휴직 확대하면 기업들이 난리칠 거 아냐. 아! 출산은 외주가 불가능하지만 양육은 하청 줄 수 있지. 그러면 엄마 아빠가 밤낮으로 일하는 데 지장 없잖아. 빙고!’ ‘닥치고 출산’한 뒤, 돌봄은 외주로 돌리라는 발상은 무책임할 뿐 아니라 비윤리적이다. 아이든 어른이든 국가 존립을 위한 도구가 될 순 없다.
체중을 줄이고 싶으면? 식사량을 줄이고 운동량을 늘리라, 가 정답이다. 그런데 알면서 딴짓을 한다. 저출생 해법도 마찬가지다. 먼저 인구위기를 겪은 외국의 선례를 통해 ‘검증된’ 정답이 존재한다.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개선하고,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와 노동시간 단축으로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문화를 만드는 게 그것이다. 결혼하지 않더라도 원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다양한 관계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길도 있다. 결혼과 단순 동거의 중간 형태인 시민연대계약을 도입한 프랑스는 합계출산율이 1.8명(2021년)으로 한국의 두 배를 넘는다.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집중 조명해온 제이컵 펑크 키르케고르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세계에서 가장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들에게 가사노동과 양육을 전적으로 부담시키는 사회에서 출생률이 낮은 건 당연하다. 한국이 성평등을 이루기 전까지 출생률 반등은 어려울 것”(2022년 9월 한국일보)이라고 했다. 과거 인구위기에 직면한 서구 국가들은 남성의 양육 참여를 강조하며 출생률 반등에 성공했다. 스웨덴은 1995년 ‘아빠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했다. 한때 1.5명까지 떨어졌던 합계출산율은 2021년 현재 1.67명이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성의 어깨에서 생계부양자의 짐을 덜어주고 남성이 출산·양육 과정에 동등하게 주체로 들어와야 한다. ‘2인 소득·2인 돌봄’으로 가야 한다”(주간경향)고 말한다.
현실은 정반대다.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 정책과제’에선 ‘성평등’이란 말이 자취를 감췄다.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 지침을 따른 셈이다. 한술 더 떠, 정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연간 199시간 더 일하는 한국인에게 더 많이 일을 시키겠다고 한다. 시간빈곤에 시달리는 한국 부모들에게 더 오래 일하라면서 저출생 극복 운운하다니 낯도 두껍다.
‘외국인 이모님’을 1만명쯤 모셔온들, 저출생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성평등과 노동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인간의 존엄을 경시하고, 존엄한 인간을 양육하는 노동을 깎아내리는 사회에서 또 다른 인간을 낳아 노동자로 키워내라니, 뻔뻔하지 않나. 정답을 알면서 오답을 쓰면, 낙제 밖엔 길이 없다.
김민아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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