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론직설] “국민연금 보험료 12%로 올리고 기초연금 개선해 노인 빈곤 해소를”

김능현 논설위원 2023. 5. 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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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섭 한국연금학회장(고려대 교수)
보험료율 큰 폭 올리면 자영업자·기업 부담 너무 커져
보험료 3%P 올리고 수급 개시 연령 68세로 늦춰야
국민연금만으론 노인 빈곤 해소 못해, 재정으로 보완
기금운용 전문가 확충·조직 개편으로 수익률 높여야
한국연금학회장인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나라 가구의 90%는 충분히 노후 준비를 하지 못했다"며 국민연금 개혁과 기초연금 강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서울경제]

1988년 도입된 우리나라 국민연금 제도는 1998년(김대중 정부)과 2007년(노무현 정부) 두 차례에 걸쳐 부분적 개혁이 이뤄진 뒤 전혀 손보지 못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개혁했으나 국민연금에는 손대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표심을 의식해 어떤 연금 개혁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면 국민연금은 2041년 적자로 전환되고 2055년에 고갈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교육과 함께 연금 개혁을 기치로 내걸었으나 출범 1년이 넘도록 개혁 논의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한국연금학회장인 김원섭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1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금보험료를 급격하게 높이기 어렵다면 일단 보험료율을 9%에서 12%로 올리고 연금 수급 시기도 늦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그 뒤 노인 빈곤 해소를 위해 기초연금 등 복지와 공적연금 지출을 어느 수준으로 할지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연금 개혁을 제시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다.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올해 4월까지 개혁안을 내놓을 계획이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10월까지 활동 기간을 연장했다.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모수 개혁에서 갑자기 기초연금·퇴직연금까지 더한 구조 개혁으로 논의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구조 개혁은 이해관계가 복잡해 실행하기 매우 어렵다. 여당인 국민의힘도 확고한 개혁 의지를 보여주지 않는 듯하다. 내년 4월 총선 이전에는 손을 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대다수 선진국들은 1970년대 이전에 연금제도를 정착시켜 노인의 소득 보장 문제를 해결했는데 우리는 아직까지 연금제도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노인 인구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노후 대비 부족에 대한 우려가 높다.

△우리나라에서 가구주가 은퇴한 가구 중 생활에 여유가 있는 가구는 10.3%에 불과하다. 나머지 가구의 노후 준비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상대적 빈곤율(중위 소득의 50% 이하 비율)은 2020년 기준 38.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현행 제도를 유지한다면 2045년에도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31.5%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노인 빈곤을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민연금·특수직역연금·기초연금을 모두 합한 공적연금의 총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4%에 불과하다. OECD 평균(9.2%)에 크게 못 미친다.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어 2040년에는 근로인구(20~64세) 대비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이 60%에 달할 것이고 연금 지출도 GDP 대비 8%가량으로 높아질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보험료 수준으로는 이런 지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결국 보험료를 어느 정도 인상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또 국민연금만으로는 노인 빈곤에 대처할 수 없으므로 보험료 인상과 함께 기초연금 재원 등에 국가 재정을 얼마나 투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하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노조와 상당수 국민들의 반대에도 연금 개혁을 밀어붙였다.

△프랑스의 사례는 연금 개혁이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다만 유럽과 우리는 사정이 좀 다르다. 유럽이 제2차 세계대전 종료 후 고성장을 구가하면서 당시 젊은 사람들은 고소득을 누린 반면 전쟁을 겪은 노인들은 가난했다. 당시 유럽의 노인 빈곤율은 30%가 넘을 정도였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당시 연금 수준을 인상하고 포괄 범위를 확대하는 개혁을 통해 노인 빈곤을 해결할 수 있었다. 지금 유럽의 문제는 성숙한 연금제도 덕분에 노인들은 잘 사는 반면 성장 정체로 젊은 사람들이 빈곤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개시 연령을 늦춘 것은 이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젊은 세대를 포함한 국민들은 연금 급여 삭감을 우려해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 노인 빈곤율이 4.4%에 불과한 프랑스와 노인 빈곤이 심각한 우리나라는 연금 개혁의 논의 배경 자체가 다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연금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가.

△연금보험료율을 어느 정도 올려야 한다. 1998년에 보험료율을 9%로 인상한 후 20년 넘게 손을 대지 못했다. 재정 안정화를 위해서는 보험료율을 17%까지 높여야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최대한 12% 정도까지 가능하다고 본다. 우리나라가 연금보험료를 획기적으로 높이기 어려운 것은 보험료 인상에 민감한 자영업자와 비정규직 근로자가 국민연금 가입자 중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과도한 부담 때문에 보험료 대폭 인상은 어렵다는 것인가.

△직장 가입자는 근로자와 회사가 절반씩 부담하는 반면 자영업자는 혼자 전액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보험료를 급격히 높이면 감당하기 힘들다. 독일 등 대부분의 선진국은 직장 가입자와 자영업자 연금을 따로 운용하는데 우리와 캐나다·미국은 두 직역이 통합돼 있다. 더구나 우리나라는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이 올해 초 기준 20.1%로 다른 나라에 비해 과도하게 높다. 게다가 최근에는 특수고용직이나 긱워커 등 직장 가입자로 분류하기 힘든 다양한 근로 형태까지 등장해 보험료를 더 높이기 어렵다.

-연금보험료를 크게 높이면 기업 부담이 너무 커질 수 있는데.

△문재인 정부 때 연금보험료를 높이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기업들의 반대였다. 당시 보험료율을 12%까지 높이려 했는데 경제 단체의 반대가 심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은 연금보험료 4.5%뿐 아니라 퇴직연금보험료 8.3%까지 총 12.8%를 부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보험료를 급격히 높이면 기업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연금보험료도 결국 인건비다. 대기업이 아니면 버텨내기 어렵다. 고용이 감소하는 역효과도 우려된다. 사실 우리나라처럼 근로자의 노후를 위해 기업에 많은 부담을 지우는 나라는 없다. 이런 문제들을 정리하지 못하다 보니 보험료를 올리기 힘든 것이다.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2034년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1969년생부터 수급 개시 연령이 65세가 된다. 이후 추가로 68세까지 단계적으로 늦추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다만 이는 정년 연장 또는 정년 폐지와 함께 논의돼야 한다. 개시 연령이 높아지면 당연히 정년도 연장돼야 한다.

-국민연금만으로는 노인 빈곤을 해결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국민연금의 소득 대체율은 40%다. 이는 평균 소득자가 40년간 보험료를 납부한 경우에 해당한다. 실질적 소득 대체율은 이보다 훨씬 낮다. 현재 국민연금 급여액 평균은 54만 원이고 연금 급여 수급자의 절반 이상인 57%가 40만 원 이하를 받는다. 연금이라기보다는 용돈에 가깝다. 국민연금만으로 노인 빈곤을 해결하지 못한다. 독일은 사회보험 방식의 연금제도를 운영하지만 보험료의 30%는 국가가 재정으로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일본도 보험료 기반의 기초연금을 실시하고 있지만 부족한 부분은 국가가 조세를 투입한다. 우리나라도 노인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민연금뿐 아니라 조세를 기반으로 하는 기초연금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재정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OECD 회원국들은 이미 평균적으로 GDP의 9.2%를 공적연금을 위해 지출한다. 심지어 프랑스는 GDP의 14%, 독일은 11%를 지출하고 있다. 그 결과 노인 빈곤율이 매우 낮다. 우리나라는 현재 연금 지출이 OECD 중 최하위 수준이고 2060년에도 OECD 평균인 GDP의 10% 정도를 연금을 위해 지출할 것으로 추정된다. 재정 건전성을 우려해 연금을 무조건 삭감하기보다는 미성숙한 상태인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모두 발전시켜야 한다. 또 보험료와 조세 부담을 어떻게 적절히 조합할지에 대해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야 한다.

-연금기금의 수익률이 너무 낮다는 지적도 많다.

△공적연금의 운용 기준은 수익률·안정성·공익성 등 세 가지다. 현재 우리나라는 안정성 중심으로 운용하는데 캐나다는 수익률을 보다 강조한다.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위험 투자를 늘릴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한 손실도 감내해야 한다. 향후 국민연금기금 투자에서도 안정성과 함께 투자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캐나다처럼 숙련된 전문가들이 운용을 책임질 수 있도록 인력과 조직을 점진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공무원연금·사학연금과 같은 직역연금과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는데.

△장기적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간 급여 수준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 하지만 공무원연금은 쌓인 기금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국민연금과 달리 그때그때 거둬들인 보험료로 급여를 준다. 만일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을 급격히 통합하면 신입 공무원은 국민연금에 보험료를 납부하게 되고 기존 공무원연금 수급자들의 급여 상당 부분을 국가 재정으로 충당해야 하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한다.

◆He is···

1966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고려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브레멘대 석사 과정을 거쳐 빌레펠트대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빌레펠트대 사회정책학과 연구교수, 국민연금관리공단 연금제도팀 팀장 등을 거쳐 2009년부터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민연금재정계산위원회 위원과 국민행복연금 자문위원을 지냈으며 올해 초 한국연금학회 회장에 취임했다.

김능현 논설위원 nhkimc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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