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집권 에르도안의 굴욕…결선 치닫는 튀르키예 대선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14일(이하 현지시각) 치러진 튀르키예(터키) 대통령 선거 개표에서 20년 장기 집권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야당 대표 케말 클르츠다로을루와 박빙의 대결을 펼치며 과반 득표에 실패할 것으로 보여 28일 결선 투표가 유력시 된다.
15일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인 최고선거위원회(YSK) 아흐멧 예네르 위원장은 개표가 99.4% 완료된 상황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49.4%를 득표해 선두를 달리고 있다고 밝혔다. 경쟁자인 제1야당 공화인민당(CHP)의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44.9%를 득표했고 민족주의 성향 시난 오안 후보가 5.2%를 득표해 뒤를 이었다. 개표 막바지까지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는 가운데 오는 28일 1,2위 후보 간 결선 투표가 치러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한 상황이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이미 결선 투표가 실시될 경우 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결선 투표가 확정되면 3위 오안 후보가 캐스팅보트가 될 전망이다. 영국 BBC 방송에 따르면 오안 후보는 앞으로 며칠 간 자신의 지지자들의 의사를 파악한 뒤 결선에서 두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할지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최종 승자가 가려지진 않았지만 야당 후보와 박빙의 대결을 펼친 것 자체가 헌법을 손질해 가며 20년 간 장기 집권한 에르도안 대통령에겐 굴욕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 2018년 대선에선 2위 후보를 20%포인트(p)가 넘는 격차로 여유롭게 따돌리며 결선 투표 없이 승리했다. 그는 2003년 총리직에 오른 뒤 2007년, 2011년 총선을 거치면서도 총리직을 유지했고 2014년엔 첫 직선제 대통령에 올랐다. 2017년엔 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 중심제로 바꾸는 개헌을 단행하며 중임 규정을 손질해 장기 집권의 길을 열었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승리를 위태롭게 한 배경엔 높은 물가상승률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전세계 물가가 고공상승한 지난해 10월 튀르키예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85.51%에 달했다. 올해 4월엔 이 수치가 43.68%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인 2021년 12월 및 2020년 12월 물가상승률도 각 36.08%, 14.6%로 결코 안정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물가를 잡기 위해 앞다퉈 금리를 인상하던 지난해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오히려 금리를 인하하며 물가상승에 대응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저금리를 통한 경기 부양을 선호하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2019년 7월부터 2021년 3월까지 2년이 못 미치는 기간 동안 물가에 대응하기 위해 금리 인상을 시도한 중앙은행 총재들을 세 번이나 교체한 뒤다. 그 사이 튀르키예 리라화 가치는 폭락했다.
여기에 지난 2월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덮친 지진이 민심을 다시 한 번 흔드는 계기가 됐다. 튀르키예에서만 5만 명 이상이 사망한 지진과 관련, 정부의 초기 대응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다.
이 가운데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에르도안 대통령과는 정반대 이미지로 승부수를 띄웠다. 헌법을 바꿔 가며 장기 집권을 길을 연 에르도안 대통령과는 달리 그는 튀르키예 민주주의 강화를 외치며 당선 땐 5년 단임을 약속했다. 퇴임 뒤엔 손자녀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며 부드러운 이미지를 강조한 그는 주방에서 양파를 손에 든 채 물가를 잡겠다고 선언하는 홍보 영상을 배포하며 강인한 이미지의 에르도안 대통령과는 차별화된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재무 부문 공무원 출신인 그는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결과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을 근소하게 앞서며 전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이번 튀르키예 선거는 서방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전쟁 중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길을 여는 흑해곡물협정을 중재하는 등 우크라이나전 중재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지만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 데다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러시아와 경제적 관계를 유지하겠지만 제재 관련해 서방의 결정에 따를 의향이 있다고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인터뷰에서 "튀르키예는 서방 동맹과 나토의 일원이고 푸틴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며 "튀르키예는 나토의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주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나토 확장을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물론이다"라고 답하며 당선 땐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지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다만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튀르키예 내 난민 혐오 정서가 커지는 가운데 360만 명에 이르는 시리아 난민을 집권 뒤 2년 안에 모두 시리아로 돌려보내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난민의 "자발적 귀환"을 장려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보다도 강경한 태도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지난주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관련 질문을 받고 난민을 돌려보내는 것이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집권 땐 시리아의 합법적 정부와 논의해 해결책을 찾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인권 탄압으로 아랍연맹(AL)에서 퇴출됐던 시리아는 최근 12년 만에 회원국 지위를 회복했다.
한편 14일 대선과 함께 치러진 튀르키예 총선 개표가 99% 이상 완료된 가운데 에르도안 대통령의 정의개발당(AKP)이 35.49%를 득표해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공화인민당이 25.37%를 득표해 뒤를 이었다. 정의개발당이 이끄는 연합이 총 600석 중 321석을 점해 의석 과반을 차지할 전망이며 공화인민당이 이끄는 연합은 213석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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