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공간정보 표준, 기술 선진국의 출발점
협력과 상생의 시대는 갔다. 이제 양육강식과 각자도생의 시대다. 제조업 시대에는 철이 산업의 쌀이었지만 첨단기술의 시대는 반도체가 산업의 쌀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 전쟁이 시작되면서 반도체는 중국에선 심장, 미국에선 안보로 격상됐다. 이로 인해 반도체는 돈만 주면 살 수 있는 경제 제품이 아니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 패권 전쟁의 전략 물자가 돼 버렸다.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머지않아 반도체 못지않은 기술 전쟁의 핵심 인프라로 공간정보가 대두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3차원 위치정보인 공간정보는 우리가 사용하는 데이터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모든 융·복합 데이터의 핵심 인프라다.
공간정보를 토대로 자율주행차, UAM(도심항공교통·Urban Air Mobility), 스마트시티 등 다양한 신산업과 서비스가 창출된다. 이말인즉슨 공간정보 없이는 어떤 기술전쟁에서도 승자가 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도시를 더 안전하게,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스마트시티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다. 이를 위해 3차원 위치정보가 당연히 필요해진다. 스마트시티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디지털트윈에서도 공간정보는 핵심 인프라다.
디지털트윈은 현실 공간을 가상에 똑같이 구현하여 시각화·모의실험·분석을 통해 결과를 예측하여 효율적 의사결정을 돕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화재 발생 시 안전한 대피로, 효율적 화재 진압을 위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 또 자율주행차는 주행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과 제어를 위해 도로정보·시설물 등 공간정보 기반의 정밀도로지도를 핵심 구성요소로 활용한다. 자율주행차의 열기를 이어받은 UAM도 안전한 하늘길 지도와 버티포트 설치, 이착륙 지점에 대한 공간정보가 필요하다. 이처럼 공간정보는 다양한 신산업의 공통분모이자 이들을 실현 가능하게 하는 핵심 인프라다.
그렇다면 공간정보가 우리 삶의 핵심 인프라로서 성공적으로 작동하게 하려면 어떤 작업이 필요할까. 공간정보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활용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공간정보가 누구나 쉽게 활용될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을 정립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표준이다. 공간정보 표준은 위치가 정의되는 좌표체계의 정의부터 위치의 표현 방법, 객체의 구조, 그리고 이들을 포함하는 응용 데이터에 이르기까지, 공간정보에 관한 넓은 범위의 기준을 제공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준의 과정이 쉽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모두가 검증에 나서고 수정과 검증, 재합의, 공유를 통해 공감대를 만들어간다. 이와 별개로 공간정보의 표준으로 인증되었다 하더라도 살아남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같은 분야에서도 대안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표준기술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술표준을 따르도록 동맹을 확보하는 것이 더 중요한 관건이 될 때가 많다. 표준 전쟁을 국가 간 총성 없는 전쟁이라고까지 부르는 이유다. ISO TC211 국제표준총회는 규모도 크고 역사도 가장 오래된 공간정보 분야의 국제표준화기구다. 때마침 지난해 ISO 차기 회장에 현대모비스 조성환 회장이 당선된 데 이어 현재 ISO TC211 국제표준총회에서는 참조모델을 다루는 워킹그룹1의 의장과 유비쿼터스 공간정보를 다루는 워킹그룹10의 의장이 한국인이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때마침 ISO TC211의 제56차 국제표준총회가 올해 5월 대한민국 전주에서 열리고 있다. 국토교통부와 LX한국국토정보공사, 우리나라의 공간정보 관련 주요 부처·기관들이 이번 행사에 많은 공을 들이는 이유일 것이다.
이 연장선에서 마련된 공간정보 표준발전포럼에서는 공간정보를 토대로 신산업 활성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어떤 개선점이 필요한지 국내·외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댈 예정이다.
반도체가 지금 한국을 지키는 최종병기이듯, 공간정보는 국가 명운을 좌우할 핵심 인프라가 될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투자 타이밍을 놓치면 한국의 반도체가 경쟁력을 잃게 되듯 공간정보산업도 융·복합 신산업의 쟁탈전에서 대체 불가한 인프라로 확고히 구축되어야 한다.
지금이 공간정보를 토대로 스마트시티, 자율주행, UAM, 디지털트윈 등을 포함한 신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주도권을 갖고 리더가 될 수 있는 최적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K-공간정보와 기술이 전 세계 신산업의 혁신 인프라로 거듭나고, 대한민국이 공간정보의 테스트 베드로 널리 회자될 수 있길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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