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디지털 전환 `골든타임` 놓쳐선 안돼
'디지털 전환'(Digital Transformation·DX)이라는 용어가 회자된 지도 꽤 세월이 흐른 거 같다. 한때 국내에서는 정치권 사정과 맞물려 '4차 산업혁명'이 수년간 혼용되기도 했다. 빠른 인터넷·모바일 보급으로 전산화에선 비교적 앞섰던 것도 그 이유가 될 수 있겠다. 거기서 구분하기에 혁명이 더 자극적·직관적인 용어이니까.
지금에 이르러선 글로벌 트렌드에 발맞춰 '디지털 전환'으로 표현이 정리된 분위기다. 기존 아날로그의 디지털화를 넘어,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제품·서비스 혁신뿐 아니라 조직체계·업무방식 개선도 꾀하는 것을 뜻한다. 주로 클라우드 도입이나 데이터 분석이 그 예시로 꼽혀왔다.
디지털 전환의 핵심영역은 예나 지금이나 SW(소프트웨어)다. 글로벌 IT시장조사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IT 지출에서 SW 부문은 경기침체 여파에도 전년보다 두 자릿수(12.3%) 성장이 기대된다.
생산성 향상과 자동화 등을 통한 경쟁우위 확보가 그 요인이다. IT 서비스 부문 또한 30% 이상 커질 것으로 보이는 클라우드 서비스형 인프라 시장 덕분에 9.1% 성장이 점쳐진다. 이들과 디바이스 등까지 포함한 전체 IT 지출 예상 성장률은 올해 5.5% 수준이다.
디지털 전환뿐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이 거론되기 이전부터도 국내에선 SW산업 육성을 외치는 목소리는 드높았다. 새로운 먹거리로 고부가가치 산업을 키우는 데 주안점을 두지만 핵심기술 종속에 따른 기술식민지화를 막자는 측면도 존재한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기술패권 다툼과 세계경제 블록화가 본격화되고, 대내적으로는 저출산 등에 따른 인구절벽이 가시화된 현재로선 그 절실함이 배가되고 있다.
그동안 SW 중심 전략과 디지털 뉴딜, 윤석열 정부의 디지털플랫폼 정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정책이 펼쳐지고 있으나, 아직 산업계의 체감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국내 IT시장조사기관 KRG에 따르면 올해 국내 IT서비스 시장은 전년 대비 4.7%, 기업용 SW 및 솔루션 시장은 6.5%의 성장이 전망된다.
낮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글로벌에 비해 둔화된 것은 사실이다. 무엇보다 디지털 강국을 노리는 곳에서 'SW 제값받기'가 여전히 이슈인 것부터 뭔가 잘못된 것 이 아닐까 싶다. 정부 예산에서 SW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외려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적 지원만 시급한 게 아니다. 지난해 스위스 IMD(국제경영개발대학원)의 '2022년 세계 디지털 경쟁력 평가' 결과에서 한국은 평가대상 63개국 중 8위를 기록한 바 있다. 신기술 적응도(1위)와 사업 능력(2위)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였지만 규제 여건(23위)과 인재(33위)가 발목을 잡았다.
인재 확보 문제야 교육 환경부터 급여·근무조건 등 현실적 요소까지 복합적인 측면이 있겠다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권을 막론하고 쭉 이어져온 디지털 전환 구호에 비해 규제가 걸림돌로 남아있는 것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이는 SW 분야에서 요즘 가장 각광받으며 디지털 전환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AI(인공지능) 분야의 앞길에도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다. 최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AI 인증 체계를 하반기부터 시범 운영하겠다는 계획을 밝히자 적잖은 AI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물론 신뢰할 수 있는 AI를 위한 '적정 규제' 필요성은 세계적으로 제기되고 있고, 산업 진흥만을 외치는 이들이 향후 개인정보 유출 사고 등 문제가 터졌을 때 책임져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왜 이런 반응이 나오는지에 대해선 생각해볼만하다. 솥뚜껑 보고도 놀라게 된 것이다.
지난 15일 열린 '국회 MWC 2023' 행사에서 ICT 관련해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모처럼 여야간 정쟁이 없는 분야"라고 말했다. 나아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기업들의 자유로운 기술개발과 혁신, 수출과 시장 개척에 정치권이 도움은 못 될망정 규제로 장애가 된다는 말을 들으니 안타깝다"고 했다.
디지털 전환과 SW산업 육성은 더 이상 구호에 그칠 게 아니다. 정치권이 진심이라면 정책적·재정적 지원부터 변화가 있어야겠다. 갈수록 빨라지는 기술 발전과 글로벌 경쟁 격화로 '골든타임'이 이제 얼마 안 남았을 수 있다. 이대로는 나중에 'AI 제값받기' 같은 말이 나와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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