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목 칼럼] 인·태 전략, 무엇보다 조화가 필요하다
지난 4월 27일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 70주년을 기념하며 워싱턴선언이 채택됐다.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한 확장억제의 강화에 합의했으며, "양국이 인도-태평양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하며, "양국이 함께 취하는 조치들이 이러한 근본적인 목표를 더욱 발전시킬 것"임도 선언했다.
양국 관계가 군사관계를 넘어 포괄적 글로벌 파트너쉽으로 바뀐 것을 의미한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골드버그 주한 미국대사도 지난 12일 강연에서 동일한 설명으로 화답했다.
이러한 외교적 수사(rhetoric)를 넘어 한미 양국이 정말로 글로벌 파트너쉽을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높다. 양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간 공통분모는 물론이고 그 한계가 명확히 정립돼야 한다.
미국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는 바이든 행정부가 인·태 지역을 거대한 경제·기술 플랫폼으로 묶어내어 중국의 역내 영향력 확장을 차단하려는 노력이다. 구체적으로는 비관세장벽 분야에서 미국 기업의 '경제적 자주권'(CEA)을 확보할만한 국제표준을 수립해 이를 충족하지 못하는 중국 기업과 정부를 자연스럽게 공급망에서 배제시켜 버리는 근거로 삼기 위한 것이다.
작년 말 발표된 한국의 인·태 전략은 '포용, 신뢰, 호혜'의 3대 원칙을 수립했다. '포용과 호혜' 원칙에 따라 공급망, 디지털, 광물자원 등 분야에서 중국과도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려는 한국의 시도는 미국의 중국 봉쇄 목표와 배치될 운명이다.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한국 외교 최선의 길은 치밀한 선린·실용 외교를 일관되게 펼쳐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미중 체제경쟁 속에서 미국 편에 서는 길만이 살길이라는 목소리와 압력은 슬기롭게 극복해야할 대상이다.
한국은 경제, 안보, 문화 등 모든 측면에서 중국과 디커플링할 수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한국의 IPEF 참여는 단순히 미중 체제경쟁 속에서 미국 편에 서는 차원이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의 인·태 전략이 목표로 하고 있는 "21세기 인도-태평양 시대를 맞아 자유, 평화, 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실현"은 결국 한국이 어느 한 블록에 속해 다른 블록의 공식적 견제에 직면하는 상황에서는 달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외교는 '한미 가치동맹'을 공언하고 워싱턴선언에서도 이것을 강조했다. 물론 양국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러한 '가치의 공유'를 넘어 '가치 동맹'을 결성하겠다고 공식화하는 일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중국과 러시아를 고립시키고 전체주의 체제에 대항하는 배타적 블록에 우리가 동참하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아랍에미리트(UAE)의 적은 이란"이라고 언급했고, 국제인권법 차원에서 우리가 우크라이나에 대해 군사적 지원을 할 가능성도 시사한 바도 있다. 진정한 가치외교를 하려거든 그걸 대놓고 선언해서 주변 전체주의 국가들의 반발부터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앞으로 한국판 인·태 전략의 추상적 원칙들을 구체적 정책으로 구현해내는 과정은 진정한 의미의 선린·실용 외교가 발휘되는 시험대가 아닐 수 없다. 골드버그 대사는 한국 국민이 우려하는 IRA·반도체법 문제가 앞으로 1~2년 내 해결된다고 했다. 미국내 전기자동차와 반도체 조립라인이 가동되면 한국 업체들이 이익을 볼 것이라는 논리다.
이런 식의 장밋빛 일색의 가치동맹 외교에 대응하려면 우리도 한국 글로벌 기업의 CEA 개념부터 치밀하게 마련해야 한다. 한국 기업의 글로벌 공급망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사고가 IPEF 협상 및 인·태 전략 추진과정에 적극 반영돼야 한다. '호혜'의 원칙이 한미동맹의 기본이 되어야 함도 대미 통상외교의 원칙으로 정립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 주변의 국가들에 대해 영향력을 발휘해 스스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모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다. 이제라도 하나하나 스스로 갖추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이를 세계가 인정하게 되는 과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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