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호 서울대 교수 “AI 판은 계속 뒤집혀, 과신은 금물”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2023. 5. 15.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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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호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 2023.5.9 [이승환기자]
“현재의 인공지능(AI) 반도체가 미래 대세가 될지 아직은 모릅니다. 과신은 금물입니다.”

지난 9일 서울대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난 안정호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사진)은 AI반도체 열풍에 대해서 이와 같이 밝혔다. 1978년생인 안 교수는 서울대에서 학사,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컴퓨터 구조 및 반도체 설계분야 전문가다.

권위자로 손꼽히는 안 교수는 현재의 AI반도체 열풍에 대해서 “아직 지켜봐야 한다”고 답했다. 두 가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제품 자체의 한계다.

국내 AI반도체 업체들은 너도나도 대세인 엔비디아 제품에 비해 성능이 뛰어남을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여러 제품군을 통해 굉장히 다양한 종류와 규모의 AI모델을 지원하기에, 설사 일부 기능에 한해 국산 AI반도체의 성능이 좋더라도 상용화 단계에서 쓰일지는 미지수다. 반도체는 설계와 시공(공정)이 모두 중요한데, 설계에서 얼마간의 우위가 있더라도 시공이 뒷받침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인 엔비디아는 TSMC의 주요 고객으로 고성능·고효율의 최신세대 공정까지 확보하고 있어 국내 업체들로서는 이러한 경제적 진입장벽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게 안 교수의 분석이다.

그는 “고객사 입장에선 엔비디아 제품을 써왔는데, 일부 성능이 좋더라도 기존 제품과 호환이 되지 않거나 범용성, 효율성이 떨어진다면 국산 AI반도체로 갈아타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더 큰 문제는 AI모델의 빠른 변화다.

AI모델은 합성곱신경망(CNN, 2010년대 초반), 순환신경망(RNN, 2010년대 중반), GPT로 대표되는 트랜스포머(현재) 순으로 각광받아왔고, 트랜스포머가 대세가 된 현재, 이전 단계인 순환신경망 모델은 후순위로 밀려난 상황이다. 트랜스포머란 구글이 2017년에 처음 발표한 논문에 등장하는 신경망 모델이다. 현재 유행하는 GPT는 용어 자체가 ‘Generative (생성하는) Pre-trained (사전 학습된) Transformer (트랜스포머)’일 정도로, 트랜스포머에 기반해 있다.

안 교수는 지금은 모델의 크기가 테라바이트에 이르는 트랜스포머 기반 초거대 AI가 각광받고 있으나, AI기술의 판이 뒤집혀 전혀 다른 AI모델이 5년 후 대세가 되어도 놀랍지 않다고 말했다. 한정된 자원으로 특정 AI모델(예:챗GPT)의 가속에 집중하는 국산 AI반도체는 이러한 판 자체의 변화에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비트코인 열풍이 시작될 당시 초반엔 비트코인 채굴을 위해서 엔비디아 GPU를 주로 활용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저변(시장의 규모)이 확대되고 기술적 성숙도가 높아지면서 현재는 더 저렴한 비트코인 채굴 특화반도체(ASIC)를 주로 사용하는 상황이다.

안 교수는 “트랜스포머 기반 AI모델이 AI기술 발전의 종착지라면 국산 AI반도체가 대박이 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전환되던 1990년대에 삼성전자가 소니를 앞지른 것과 같이, 챗GPT로 대변되는 트랜스포머 모델이 게임체인저가 된다는 것을 상정하고 정부와 국내기업이 AI반도체 육성에 배팅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안 교수는 AI기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AI반도체 생태계 전체의 실력 자체를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다양한 AI모델이 나올 수 있는 만큼, 우리는 AI반도체(하드웨어)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알고리즘, 시스템소프트웨어 등) 분야를 모두 이해하는 핵심인재를 긴 호흡을 가지고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현재 정부의 R&D(연구개발) 방향이 소프트웨어(인공지능)보다는 하드웨어(반도체)에 더 방점을 찍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30년까지 1조원을 투자해 세계 최고 AI반도체를 만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안 교수는 “반도체를 살리기 위해 AI를 끌어들이는 형국인데 선후가 뒤바뀌었다”며 “엔비디아는 하드웨어 기업이지만 소프트웨어 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이순신 장군의 명언인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를 인용하며 AI반도체(공급)를 위한 수요(AI모델)를 찾는 것이 아니라, 미래 AI기술의 변화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AI반도체 및 PIM(연산과 저장이 가능한 차세대 메모리반도체)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성공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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