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부터 검은 점화까지…김환기의 화업 40년을 만난다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5. 15.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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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역대급 회고전 ‘한 점 하늘’
5월 18일~9월 10일 펼쳐
유화와 드로잉 등 120여점 전시
백자와 작가수첩 등 희귀 자료
50년대 스크랩북 등 최초 공개
점화를 그리는 김환기.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하늘과 달과 별과 점···.

수화 김환기(1913~1974)가 40여년을 바친 한편의 시(詩) 같은 그림들이 용인시 호암미술관에 걸렸다. 그가 표지를 그렸던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처럼 깊고 서정적이었다.

코로나19로 리움에서 2020년 예정됐다 취소된 김환기 역대 최대 규모 회고전 ‘한 점 하늘’이 3년 만에 18일 막을 올린다. 1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전시를 미리 만났다.

현대미술도 품는 ‘호암 미술관’
리노베이션된 호암미술관 로비 [호암미술관]
이건축연구소 이성란 건축가에 의해 1년반에 걸쳐 대규모 리노베이션을 거쳐 재개관한 호암미술관의 첫 전시다. 미술관의 외형은 보존하고 내부를 현대식으로 꾸미고 층고를 높게 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앞으로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은 시기를 구분하지 않고 고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아우르는 전시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화와 드로잉, 신문지작업, 조각 등 대표작 약 120점이 전시된다. 유화는 88점, 점화는 15점이 포함됐다. 특히 작가가 애장한 달항아리를 비롯한 도자기와 화구, 10대와 청년 시절의 사진, 작가 수첩, 편지, 50년대 스크랩북 등 100여 건의 자료는 최초 공개된다. 수화가 수십년간 애장했던 조르주 루오의 전시자료를 통해서는 그가 평생 천착했던 스승이 루오였음을 알 수 있다.

김환기의 기사 신문 스크랩북과 주르주 루오의 전시 자료는 처음 공개됐다.
1956년작 ‘항아리’는 김환기가 등에 지고와서 평생 애지중지했다는 선반과 전시를 통해 비교해볼 수 있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김환기가 애지중지했던 선반.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리움미술관 소장품연구실장은 “김환기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볼 전시가 필요했다”면서 “김환기의 딸인 윤형근 부부가 많은 자료를 맡겨줘 도미 전의 스크랩북과 작가가 아꼈던 선반과 목가구 등을 처음으로 공개한다. 새로 밝혀진 사실이 많아 김환기 연구의 미래를 위한 전시라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 설명했다.

이번 전시의 의미는 리움미술관 소장품과, 이건희컬렉션으로 기증된 국립현대미술관 등 국공립 미술관 소장품을 비롯해 알려지지 않은 소장가들의 희귀한 작품으로 40여년에 걸친 작가 인생을 총괄해 볼 수 있도록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한국을 넘어 세계적 작가가 된 수화의 21세기 최대 회고전이자, 아마 다시는 볼 수 없을 규모의 전시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다.

1930~60년대 다룬 1부 ‘달/항아리’
영원의 노래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김환기는 20세기 한국 미술사에 추상이라는 새로운 장을 연 선구자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 구축주의 등 당시의 전위미술인 추상미술사조를 익히고 1937년 귀국하여 명실상부 한국 최초의 추상화가가 됐다.

2층에서 시작되는 전시의 1부는 김환기의 예술이념과 추상형식이 성립된 1930년대 중반부터 1960년대 초까지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 시기에 작가는 한국의 자연과 전통을 동일시하며 작업의 기반을 다지고 발전시켜 갔다. 달과 달항아리, 산, 구름, 새 등의 모티프가 그림의 주요 주제로 자리잡으며 그의 전형적인 추상 스타일로 정착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점화의 표현법으로 그려진 ‘산’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첫 공개되는 ‘창’(1940)은 달항아리 등을 화폭에 조화롭게 그려넣은 기학적 구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1940년대 후반 작업으로 추정되는 ‘산’은 단풍에 물든 산세를 점을 찍어 그린 작품. 태 실장은 “한국에서도 점화적 기법을 실험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라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최대 크기 구상화 ‘여인들과 항아리’는 유족의 수첩을 통해 처음으로 1950년대가 아닌 1960년 작품임이 확인됐다. 태 실장은 “괴로워 죽겠다. 하루종일 그리고 지쳐서 잔다는 기록이 있어 대작을 그리는 심경을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여인들과 항아리’의 전시 전경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뉴욕 시대 품은 2부 ‘거대한 작은 점’
2부 ‘거대한 작은 점’ 전시 전경. 왼쪽 그림이 ‘우주’다.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1층에 마련된 2부는 김환기가 뉴욕 이주 이후 지속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며 한국적 이면서도 국제 무대에서 통할 새로운 추상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는 뉴욕 시기 초기까지 이어지던 풍경의 요소를 점과 선으로 흡수하여 추상성을 높이고 다채로운 점, 선, 면의 구성으로 수많은 작업을 시도한 끝에 점화에 확신을 얻고 1969년과 1970년 사이에 전면점화의 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뉴욕시대의 첫 인사를 맡은 ‘야상곡’(1964)는 일기에 기록된 뉴욕의 첫 작품으로 수화는 새로운 시도를 하려 붓 대신 나이프로 그림을 그렸다.

달과 산 등 풍경요소들이 선과 점, 색면으로 대체되는 ‘북서풍 30–Ⅷ–65’(1965), 김환기의 점화를 처음으로 알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16–IV–70 #166’(1970), ‘우주’라는 별칭으로 사랑받고 있는 ‘5–IV–71 #200’(1971) 등 넓은 전시장에서 별처럼 빛나는 대작 전면점화들의 향연을 만날 수 있다. 뉴욕타임스 일요판의 글이 적은 광고지면을 골라서 200여점 가량 그리며, 추상화를 연습했던 신문지 그림 6점도 만날 수 있다.

‘하늘과 땅24–Ⅸ–73 #320’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특히 동양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하늘과 땅 24–Ⅸ–73 #320’(1973)은 전면점화 중 처음으로 공간을 지칭하는 제목을 직접 붙인 작품이다. 태 실장은 “푸른점이 찍힌 하늘과 땅이, 화폭을 가로지르는 흰 선 하나로 능선을 통해 구분되고 안정감이 생겼다. 삶과 예술에 대한 사유를 깊이 있게 담은 작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시기 수화는 건강이 좋지 않았고 자녀들에게 도덕경을 보내달라고해 탐독하던 시기였다. 1973년 10월 8일의 뉴욕일기는 이렇게 적혀 있다. “미술은 철학도 미학도 아니다. 하늘 바다 산 바위처럼 그냥 있는거다.”

작고 한 달 전에 죽음을 예감하듯 그린 ‘17–VI–74 #337’(1974)로 전시는 마무리된다. 투병하며 그린 이 검은 점화는 보는 이를 먹먹하게 만든다. 눈물을 흘리듯 흰 점들이 세로로 화폭을 가로지른다. 몇해전까지 리듬감 있게 곡선을 그리던 점화는 이 시기 다시 수평적이고 고요하게 변모한 것이다. 전시는 9월 10일까지.

작고 한 달 전 그린 ‘17-VI-74 #337’ ©Whanki Foundation•Whanki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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