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의 전쟁, 승리란 무엇인가

한겨레 2023. 5. 1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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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열린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과 마약범죄 동향 및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당정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숨&결] 강병철 |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대통령이 거듭 ‘마약과의 전쟁’을 언급하자 정부 부처, 검찰과 경찰, 지자체까지 필승을 다짐한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마약 사용자는 늘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다크웹’을 통해 쉽게 구할 수 있는데다, 소규모 시설로 만들 수 있는 신종 마약이 점점 늘기 때문이다. 마약조직도 위험 부담이 큰 밀수보다 ‘화학자’ 파견을 선호한다고 한다. 관광객으로 위장해 입국한 뒤, 집이나 창고를 한채 빌려 수만명분의 마약을 제조하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마약을 쉽게 접할 수 있다니 대비해서 나쁠 것은 없겠다.

그런데 전개 양상을 보면 의구심이 든다. 단속과 처벌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 같아서다. “많이 잡아 강하게 처벌하겠다”는 법무부 장관, 충무공까지 소환한 검찰총장 등 결기 어린 선언만 난무할 뿐, 중독 희생자의 재활, 재발 방지, 사회통합을 위한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국민의 공감과 참여를 끌어내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는다. 중독자를 ‘악인’으로 몰아 잡아넣으면 문제가 해결될까?

마약 문제는 복잡하며, 해결책은 더욱 그렇다. 역사적으로 모든 효과적인 전략은 한가지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했다. 마약 중독이란 범죄임에 앞서 질병이란 점이다. 약을 끊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끊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사태가 오히려 악화하기 쉽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은 사람을 잡아 가두는 데 귀중한 국가자원을 낭비하고, 중독은 점점 심해진다. 대개 수감자는 억지로 마약을 끊어야 하는데, 이런 방법은 성공률이 낮다. 출소 뒤에는 전과자가 돼 사회에 발붙이기 힘들고, 그 결과 재투약 가능성이 커진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과 악의 대결로 몰고 간 1980년대 레이건 정권 이후 미국에서 수감자가 급증해 교도소 운영에 막대한 국가재정이 지출되고, 교도소에서 네트워크가 형성돼 마약 범죄가 걷잡을 수 없게 된 과정을 음미해보라.

중독자 중에는 처방약에서 시작해 마약 성분에 의존하게 됐거나, 진단받지 못한 정신질환이 겹쳐 있는 사람도 많다. 그러니 중독자 문제는 의료인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중독 치료와 재활 분야가 크게 발전한데다, 동반된 신체적 및 정서적 문제를 함께 치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활시스템이나 시설도 갖춰져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이런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의지나 능력이 있는지 의문이다. 단속과 처벌에는 자원을 쏟아부으면서, 의료적 지원은 싸게 해결하면 좋다는 태도로 임한다면 범죄자만 양산할 뿐 재활과 사회복귀는 구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무엇보다 마약 문제에 강경 대처한다는 기조가 누군가를 본보기로 삼아 정권의 능력을 입증하고, 사회 기강을 잡는 식으로 흘러서는 안 된다. 그런 태도는 도움을 받아야 할 환자와 가족에게 수치와 죄책감을 안기고, 사회적 낙인을 조장할 뿐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할 일은 무엇인가? 중독을 치료가 필요한 질환으로 공식 정의하고, 사법제도를 정비해 마약상과 단순 사용자를 정교하게 구분하고, 단순 사용자에게는 처벌보다 치료와 지원을 제공하고, 정치적 선전이나 도덕적 엄숙주의 색채가 느껴지지 않는 과학적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다.

청 제국에서 미국까지 역사적으로 ‘마약과의 전쟁’을 표방한 정부는 많다. 결과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미국은 실패했다. 싱가포르는 마약청정국임을 내세운다. 중독자를 도덕적으로 타락한 사람으로 본다면 이런 격리 정책을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중독자를 ‘고통받는 존재’로 본다면 평가는 달라진다. 싱가포르 내부에서도 장기수감으로 인한 범죄계급 양산과 주변화, 경제적 권리 박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중독자와 그 가족은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그러니 섣불리 전쟁에 나서기 전에 먼저 승리가 무엇이지 정의해보자. 마약의 덫에 걸린 사람을 낙인찍고 격리한 뒤 시치미를 떼고 사는 것인가, 우리 안에 존재하는 고통의 총량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힘을 모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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