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피해지에 소나무가 우수? 국립산림과학원의 아전인수
[왜냐면] 홍석환 | 부산대 조경학과 교수
“산불 피해지에 조림한 수종의 초기 생존은 소나무가 우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배재수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장이 지난 3일 ‘산불 피해 지역 복원정책의 과학적 근거 및 절차’를 발표했다. 동해안 일대 산불 피해지는 척박하기 때문에 소나무 생존율은 높지만, 산불에 강한 활엽수의 생존율은 낮다는 내용이다. 산불 피해지에 소나무를 계속 심는 이유가 그들의 잘못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설명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언뜻 오랜 현장조사와 실험을 거친, 과학적 결과로 비치지만 이 발표는 그 전제가 잘못된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아니, 산림청 사업의 심각한 문제를 덮기 위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은 “소나무가 우수한 생존력”을 보인다는 결과가 아니라 그 전제에 숨어있다. 소나무의 생존력이 우수한 곳은 ‘산불 피해지’가 아니라 ‘산불 피해지에 조림한 곳’이다. 생존력이 우수한 소나무는 “조림된” 소나무일 뿐이고, 반대로 ‘생존력이 낮은 활엽수’ 또한 “조림된” 활엽수일 뿐이다. 결과를 수식하는 “조림한 곳”이 모든 의미를 바꿔버리기 때문에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발표였다.
우리나라 숲이 안정화된 시기는 불과 한 세대 전부터다. 이때부터 척박한 소나무숲에 양분이 아주 조금씩 쌓이게 되는데, 이것만으로도 소나무는 도태되고 활엽수가 번성하는 숲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산불이 발생하면 그 아주 조금 쌓인 양분에 더해, 최근 토양개량제로 널리 쓰이고 있는 ‘바이오차’와 동일한 구조를 갖춘 불탄 숯들이 토양에 남게 된다. 이들에 의해 거의 모든 산불 지역에서는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다시 발생하지 않고, 산불에 강한 낙엽 활엽수가 빠르게 고밀도로 자라게 된다. 산불은 한꺼번에 숲의 가치를 잃게 하지만, 또 다른 관점에서 과거보다 훨씬 건강한 숲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한다.
그런데 무조건적 모두베기와 조림방식을 전제로 한 산림청의 산불 피해지 복원방식 때문에 심각한 왜곡이 발생한다. 산림청은 “과학”이라는 단어를 내세워 자연복원과 인공조림을 조정한다고 주장하지만, 자연 스스로의 복원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단순히 피해도가 심하면 모두 베어내야 하고, 피해도가 낮으면 그대로 둔다는 이분법식 복원이다. 피해가 심하다고 해서 자연복원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 아님에도 말이다. 그대로 두면 숲은 스스로 산불에 강한 활엽수림으로 매우 빠르게 발달한다. 문제는 불탄 나무를 베어 숲 밖으로 옮기고, 조림하는 과정에서 표층에 쌓인 유기물이 거의 모두 유실된다는 점이다. 이렇게 양분이 씻긴 토양에 나무를 심으니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소나무밖에 적응하지 못하게 된다. 소나무만 자라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활엽수와 활착률을 비교하니 당연히 소나무가 높을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것은 이렇게 척박한 곳에 조림하더라도 대부분 지역은 활엽수가 자연 발생하지만, 소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활엽수는 또다시 잘려나간다. 결국 숲은 인위적 간섭으로 황폐화한다.
70년 넘게 숲의 관리를 산림청이라는 정부기관이 독점적으로 맡아왔는데 왜 우리 숲은 산불에 취약한 숲이 되었을까? 대형산불이 발생하면 언제나 건조와 강풍 때문이라는 두루뭉술한 이유를 대기 바쁘다. 산불이 왜 빠르게, 크게 확산했는가를 분석하지 않고, 오직 피해면적만 따지고 복구예산을 타내기 바쁘다. 이 예산은 정작 피해 주민에 돌아가지 않고, 산불 예방과 확산을 막지 못한 주무기관의 셀프사업에 쓰일 뿐이다.
우리는 산불에 대한 시각을 바꿔야만 한다. 기후적으로 우리나라는 산불에 절대 취약하지 않다. 산불에 강한 숲으로의 변화를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막은 결과가 대형산불로 이어질 뿐이다. 대형산불 수관화(나무 윗가지까지 타는 불) 지역 대부분은 이른바 숲을 건강하게 한다며 ‘숲 가꾸기’라는 이름의 간벌 사업을 진행한 소나무숲이다. 이번 강릉산불도 어김없이 ‘숲 가꾸기’를 진행한 곳이다. 현장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림청은 정반대로 간벌 사업이 산불 예방의 유일한 방법이라 홍보하고 있다. 산불에 취약한 숲으로 만들고 난 뒤, 대형산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또다시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숲을 세금을 들여 조성하는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형산불은 수십 년 동안 관행적으로 진행해 온 잘못된 산림정책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만 한다. 그리고 바꿔야만 한다. 전제를 바꾸면 이렇게 된다. “산불 피해지에서는 소나무가 아닌, 산불에 강한 활엽수가 자연적으로 빠르게 복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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