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종신집권 땐 '베네수엘라式 경제 파탄' 우려
득표율 1위지만 2위와 격차 박빙
제3후보 표심이 '캐스팅보트'
에르도안 연임땐 포퓰리즘 폭주
시장 불안…증시 일시 거래중단
리라화 가치 2년 만에 최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지난 14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후보인 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를 앞섰다. 클르츠다로을루 대표의 승리를 점쳤던 대선 직전 여론조사와는 상반된 결과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득표율이 과반에 미치지 못해 오는 28일 결선투표에서 최종 승자가 가려진다.
반전 일으킨 에르도안…최종 승자는
15일 튀르키예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49.5%를 득표했다. 6개 야당 연합을 대표하는 클르츠다로을루 대표는 44.89%를 얻었다. 시난 오간 승리당 대표는 5.17% 득표하며 결선투표 진출에 실패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과반 득표에 실패하면서 그와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맞붙는 결선투표가 28일 치러진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높은 득표율은 ‘반전’이라는 평가다. 지난 한 달 동안 시행된 여론조사를 폴리트프로가 종합한 결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48.9%의 지지율로 에르도안 대통령(43.2%)을 앞서는 것으로 나오는 등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 보였기 때문이다. 외신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정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선거전을 치렀다”고 평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박빙의 대결을 벌이면서 최종 승자가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양측 모두 승리를 자신하고 있는 가운데, 득표율 3위인 오간 대표가 ‘킹메이커’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간 대표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인물로 알려졌다.
결선투표에서 승부가 가려지더라도 후보가 결과에 불복하지 않는 등 튀르키예의 혼란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란 우려도 나온다. 이미 양측의 신경전이 팽팽해서다. CHP 소속인 에크렘 이마모을루 이스탄불시장은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이 야당 우세 지역에서 의도적으로 개표를 지연해 초반 상황을 유리하게 보이도록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야당의 의혹 제기에 AKP는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결과는 투명하게 공개되고 방송된다”고 반박했다.
시장, 포퓰리즘 정책 연장 우려
에르도안 대통령의 연임 여부에 튀르키예 경제의 운명이 좌우될 전망이다. 가정용 천연가스 무상 공급, 공공 근로자 임금 인상 등 에르도안 대통령의 포퓰리즘 공약이 현실화하면 튀르키예 경제가 베네수엘라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튀르키예 대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이 예상밖에 선전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15일 튀르키예 증시의 개장 전 벤치마크 지수가 6.38% 하락, 서킷브레이커(거래 중단)가 발동된 뒤 30분 후 철회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연임할 경우 재정 지출이 급증해 리라화 가치 하락세가 가속화될 것이란 우려로 달러화 대비 리라화 가치는 2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경쟁 후보인 클르츠다로을루 대표가 물가 안정, 친서방 외교 복원 등의 공약으로 인기를 얻자 돈을 더 뿌리겠다는 공약으로 응수했다. 에르도안의 공약은 베네수엘라에서 2018년 최저임금을 60% 인상하고 식료품 보조금 쿠폰을 살포한 끝에 재선에 성공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후 베네수엘라의 경제난은 더 심해졌다.
튀르키예는 지난해 물가상승률(연간)이 72.3%에 달했고 지난달에도 물가상승률(전년 같은 달 대비)이 43.7%를 기록할 정도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하다. 지난 2월 5만여 명의 사상자를 낸 대지진이 발생한 뒤 에르도안 대통령이 ‘물가를 안정시키겠다’며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자 리라화 가치가 폭락해 수입 물가가 폭등한 탓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과거에도 미국 중앙은행(Fed)을 중심으로 글로벌 긴축 기조가 확산될 때마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기준금리를 내리고, 이에 반대하는 중앙은행장을 쫓아냈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동안 리라화 환율은 2013년 5월 리라당 0.54달러에서 이날 현재 0.051달러로 거의 10분의 1토막이 났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에서 “(에르도안은) 시골 이장처럼 국가를 운영하면서 외국 자본을 쫓아내 지난 10년간 튀르키예 경제의 거의 모든 지표를 악화시켰다”며 “정권만 바뀌면 튀르키예는 유럽에서 중국을 대체할 제조업 강국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인엽/이현일 기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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